찬 "경영권승계 사실상 봉쇄…편법상속 부작용"

반 "먼저 재계의 잘못된 관행부터 고쳐야"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이 한승수 총리와의 첫 만남에서 상속세를 폐지하고 대신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로 전환해달라고 건의하면서 상속세 문제가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상속세 부담을 완화해달라는 그동안의 재계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계 대표가 상속세를 아예 폐지해달라고 주문하면서 논란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다.

손 회장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선 상속받은 주식이나 부동산을 처분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일부 학계에서는 "실제로 재벌그룹은 상속세를 제대로 납부도 하지 않고 편법을 동원해 부의 대물림을 추진하고 있다"며 상속세 폐지 건의는 터무니없는 짓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물론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대폭 완화하는 추세다.

편법 상속의 유인을 줄이는 한편 기업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것임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소득세를 부담하면서 축적한 부에 다시 상속세를 매기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도 상속세 폐지 및 완화와 다양한 납부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떳떳한 기업승계를 유도해야 한다는 논리가 과연 설득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 재계 측, "기업의 경영권 유지 및 승계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재계에서는 지나치게 높은 현행 상속세율이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사회적 역기능을 키운다고 주장한다.

특히 상속세는 기업경영권 유지, 혹은 승계를 사실상 봉쇄함으로써 각종 편법 상속을 불러오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행 최고세율 50%에 할증률 10∼30%를 감안하면 상속세를 내고 제대로 기업 경영권을 유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율의 상속세는 재산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납세자에 대한 응징이라는 편견을 낳아 결국 세금을 적게 내거나 아예 안내는 것이 더 당당하다는 식의 가치 전도를 부를 소지가 농후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비상장 계열사를 통한 편법승계 논란의 근원도 결국은 과도한 상속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재계는 또 상속세제를 강화하기 위해 2004년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했지만 상속요인 발생 대상자 중 0.7%만 납부할 정도로 세수효과는 미미한 데서도 그대로 드러났듯, 현행 상속세제는 실패한 정책이라고 강조한다.

⊙ 시민단체 측, "각종 편법을 동원한 재벌의 부 대물림 차단해야"

시민단체에서는 "재벌그룹은 각종 편법을 동원해 부를 대물림하고 있다"며 상속세에 문제가 많다는 재계의 주장은 부질없을 뿐더러 염치도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재계는 그동안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한 사건이 터질 때면 투명 경영과 정도 경영을 다짐하곤 했지만 실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1회용 약속이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최고 상속세율 50%를 적용하면 정상적으로 기업 경영권을 승계할 수 없다는 주장 또한 그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꼬집는다.

재벌 총수의 2세라면 경영능력이 있건 없건 경영권을 무조건 넘겨받아야 한다면 오히려 기업에는 재앙이 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상속세 폐지가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것도 사실의 과장이거나 의도적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각국의 조세 제도는 나름의 체계를 갖추고 있어 평면적인 비교가 힘들거니와 최근 상속세를 폐지한 국가들도 자본이득세 등 다른 형태로 세금을 걷고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지금은 불필요한 상속세 논란으로 소모전을 벌일 것이 아니라 재계의 잘못된 경영 관행을 확실하게 뜯어고치는 일에 보다 힘을 쏟아부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 상속세부담 단계적으로 완화한 다음 자본이득세로 전환해야

현재 우리나라는 창업 1세대가 60세를 넘어 은퇴 연령에 이른 중소기업이 전체의 10%를 넘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상속ㆍ증여세율(과표 30억원 이상 기업)은 1994년 10%에서 96년 45%,2000년 50% 등으로 상승하면서 이로 인한 부담 때문에 가업승계를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창업 못지 않게 기존 기업의 경영권이 후계자에게 원활하게 승계돼 사업의 연속성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그런 점에서 정부 당국이 상속세 부담 완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상속세율을 내리는 것만으로는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느냐는 점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아직 자본이득 과세를 실행할 만한 조세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있어 일시에 상속과세제도를 폐지하기는 쉽지 않은 형편이다.

따라서 경제 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조세 인프라를 우선적으로 구축하는 한편,상속세 부담을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전환해나갈 필요가 있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 용어풀이 >

▶상속세 = 사망으로 인해 무상으로 이전되는 재산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

피상속인의 유산 전체를 과세대상으로 하는 재산세적 성격의 유산세방식과 각 상속인이 상속받는 재산을 과세대상으로 하는 수익세적 성격의 유산취득세 방식이 있다.

우리는 유산세방식을 취하고 있다.

▶자본이득세 = 자본자산의 매각에서 발생하는 이득과 손실에 대한 조세다.

자본자산은 1년 이상 보유하는 주식과 채권,부동산,기업 매각,파트너 지분,특허권 등을 포함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토지 건물의 양도로 인한 소득과 부동산에 대한 권리, 기타 자산의 양도에 의해 발생한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양도소득세가 있다.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 법률에 별도 규정을 두지 않는 한 상속·증여로 볼 수 있는 모든 거래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제도로, 2004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상속·증여세를 피해가는 편법은 막을 수 있지만 헌법의 조세법률주의에 위반되며 그런 만큼 과세권 남용의 소지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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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 4월16일자 A1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5조원이 넘는 세계잉여금이 생긴 것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것"이라며 "(과도한 세계잉여금은) 정부가 과도하게 민간부문을 위축시킨 것이기 때문에 이를 수정하겠다"고 15일 밝혔다.

이를 위해 법인세율 인하는 물론 소득세율을 낮추고 상속세율도 소득세율(8~35%)보다 높지 않은 수준으로 재조정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은 5%대 후반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2분기 이후부터 성장률이 떨어질 것"이라며 "한나라당과 추경예산 편성을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재정투입 이외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감세"라며 "법인세를 오는 6월 임시국회에서 인하하고 나머지 세금도 조기에 인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소득세를 아예 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소득세 면세점을 상향조정하기보다는 세율을 낮추는 쪽으로 근로소득세 부담을 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상속세 인하와 관련해서는 "상속세를 두는 나라에서 자본도피가 발생해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이 경고했다"며 "소득세율 이상으로 상속세를 매기는 것은 경제정책으로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속세 폐지에 대해서는 "세금을 거두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수준으로 받고 민간이 원활히 활동하고 자본도피도 하지 않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세금에 대해서는 "세금을 낼 능력이 없는 개인들과 과도한 종부세를 납부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경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골프장의 그린피가 제주도보다 싸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라며 "환율이나 세금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으며, 그런 관점에서 기업용 부동산에 대한 세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