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동아일보 객원大記者

▶동아일보 4월3일자

평양 정권이 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대북정책에 맹렬한 비난을 퍼붓고 나섰다.

놀랄 일은 못된다.

오히려 그건 햇볕정책에 현혹돼 북한의 실상과 한반도 현실에 색맹이 됐던 인사들을 위해선 눈에 씐 콩깍지를 벗겨주는 치유적 교육적 효과도 있다.

무릇 '실용주의' 정책이란 환상 아닌 현실,있었으면 하는 현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바로 현실의 '실상'에 접근함으로써 출발한다.

다만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일상 현실이란 가정이나 직장의 인간관계며 근린의 생활환경 등 극히 제한된 개인의 활동반경을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에 대해 안다는 것은 대부분 남의 말을 듣고,나의 직접 경험이 아니라 남을 통한 간접 경험에 의해 알게 된 것들이다.

소문과 신문,라디오와 TV 그리고 잡지나 책자 등을 귀동냥 눈동냥함으로써….

그러나 사람은 그처럼 제한된,단편적인 현실의 인식에 만족하지 않는다.

특히 젊은이와 이른바 지식인은 부분적,파편적인 현실이 아니라 전체적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바란다.

그뿐만 아니라 그러한 현실의 총체성에 대해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까지 하고자 한다.

바로 현실의 전체성을 지향하는 세계상(像)과 세계관(觀)에 대한 추구이다.

과거엔 종교가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켜주었다면 근래에 와선 이념(이데올로기)이 그 구실을 맡아주고 있다.

스피노자 투로 말하면 종교가 대중의 이념이라면 이념은 지식인의 종교다.

세계를 설명하고 세계를 이해시켜 주려는 종교나 이념이 점차 독단화하는 것은 바로 그 교리가 세계의 실제적인 현실과 접촉을 상실한 도그마가 되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몰락은 현실과의 접촉을 잃어버린 교조적 이념의 종말을 시위해준 역사적 예증이었다.

'친북' 정권이 들어선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들 하는 모양인데 적어도 대북관계에선 그것은 북의 실상,한반도의 '리얼리티'와의 접촉을 잃어버린 10년이라 해서 빗나간 말이 아닐 듯하다.

우리는 하나가 아닌데 하나라 했고,통일을 가장 두려워하는 북의 영주 앞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봉창(奉唱)했다. 저들은 핵무기를 밀조하면서 평화통일을 구가하고,수틀리면 남쪽을 이젠 불바다가 아니라 잿더미로 만들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다.

그러한 북과 남이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운 지난 10년,그건 분명 북의 실상에 눈을 가리고 한반도의 현실에 대한 접촉을 잃어버린 10년임에 틀림없다.

도대체 500만표 차라는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얻고 당선된 대통령을 '매국역적'이라 한다면 장차 평양이 상대할 남한의 지도자는 누구라 믿고 있는 것일까.

그 반면에 아비로부터 세습된 권력을 북녘 민족을 대표하는 참된 지도자라고 믿어주는 '애국지사'들이 남한에는 널려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는 것일까.

협박을 안 해도 알아서 기어오기 때문에 협박을 안 했을 뿐,그 사이 로켓포를 쏘아 올리고 핵폭탄을 실험해서 가일층 협박수단을 챙겨둔 평양이 이제 와 새삼 협박한다고 호들갑을 떨 것은 없다.

필요에 따라 평양과 협상을 하는 것을 두려워할 건 없지만 두려움 앞에서 협상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남북관계의 험난한 실상이 오랜만에 있는 대로 드러난 상황에 당황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남북관계가 겉모양만 화기애애했던 지난날의 환영에 미련을 가질 필요도 물론 없다.

과거 분단 상황에서 서독의 통독성은 1차적으로 동독의 현실에 대한 연구에 주력하고 그러한 연구를 권장하며 그 결과의 계몽에 주력했다.

우리의 통일부는 북한의 실상을 연구 계몽하는 데 무슨 기여를 했는지.

혹여 평양의 실체보다 그에 관한 환상을 퍼뜨리는 데 일조하진 않았는지….

그러한 지난날을 돌아본다면 새 정부의 대북정책 출발은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도 든다.

북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의 바탕 위에 남북관계가 정립돼야 참된 진전이 있을 것이다.

결국 남쪽에서 못한 반공교육을 평양이 나서 이번엔 해준 셈이다.

4·9총선에 대한 영향도 괜찮을 것이다.

여당은 대선에서 지지해준 국민의 참뜻을 이해하고 야당은 친북 환상에서 깨어나는데 다 같이 도움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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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북한정권은 분명히 구분해야

해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같은 민족의 국가인가,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적국인가?.

최근 수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논쟁거리의 하나이다.

과거 10년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같은 민족에 큰 비중을 두며 대북정책을 펴왔다면 현재의 이명박 정부는 민족의 비중이 그 이전의 정부 수준으로 낮아진 정책을 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정책이 성공했느냐는 앞으로 역사가들이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남북 분단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적어도 '북한'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정책을 접할 때도 혼선을 빚지 않는다.

흔히 북한이라고 하면 국가 개념의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정권(김정일정권), 주민을 주로 지칭하는 북한 중 하나를 가리킨다.

UN 같은 국제기구가 북한을 이야기하면 국가를 말하고, 세계식량기구가 북한에 구호식량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면 북한 주민을 염두에 둘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끼리 이야기 할 때 민족이 들어가면 의미가 혼동스럽게 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친북 반북도 따지고 보면 의미를 명확히 하지 않은데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우리가 민족을 이야기할 때 북한은 북한정권이 아닌 북한주민이어야 한다.

북한주민들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걸고 북한 땅을 탈출하고 있고 따라서 북한정권은 더 이상 북한 주민을 위한 정권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방 후 남북한 정부로 각각 출발해서 60년이 지난 지금 남한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반면 북한은 식량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이념,즉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폐쇄 경제에서 찾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이를 인정하고 있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은 아예 남한의 경제모델을 배워 자기 나라에 적용까지 하고 있다.

최정호 교수는 이 글에서 이념과 종교는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관점이라면서 이념이 독단에 빠지지 않으려면 현실 세계를 폭넓게 접촉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세계 현실과 동떨어진 민족중심의 친북정책을 편 과거 정부와 북한정권을 모두 비판하고 있다.

햇볕정책의 성공여부는 시간이 지나면 명확해지겠지만 적어도 정책시행 후 북한이 기대한 대로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오히려 북한은 체제 붕괴의 위험을 의식해서 개혁 개방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며 남쪽을 비방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 국가들은 체제 붕괴 위험을 떠안으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러시아의 고르바초프는 개혁 개방을 추진했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 지도자의 자리를 옐친에게 넘겨 주어야 했다.

중국 베트남은 각각 마오쩌둥,호찌민이라는 지도자가 물러난 뒤 독단에 빠지지 않은 다른 지도자의 개혁 정책이 시행되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할 수 있었다.

북한정권은 체제 안정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개혁 개방으로 하루 빨리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해서 대한민국과의 경제력 차이를 좁혀야 한다.

그래야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남북한 통일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