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규정 3단계 걸쳐 대폭 완화
[Focus] 금융규제 풀어 금융산업 덩치 키운다
새 정부의 금융 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업무 보고를 했다.

가장 주목받은 대목은 산업 자본,특히 대규모 기업집단이 은행을 가질 수 없도록 법으로 제한하고 있던 '금산(金産)분리 규정'을 대폭 완화한다는 부분이었다.

금산분리 규정으로 대표적인 것은 금융을 주력 사업으로 하지 않는 산업 자본이 은행의 지분을 직접 소유할 수 있는 한도를 4%로 제한한 것이다.

이 같은 규정을 둔 것은 대기업이 은행에 예치된 고객의 돈을 제멋대로 대출해 쓰거나 또는 은행의 풍부한 자금을 이용해 경영권을 굳건히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4% 정도의 지분으로는 결코 은행을 좌지우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도를 정한 것이다.

⊙ 금산분리 3단계에 걸쳐 완화

하지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산업 자본이 직접은 아닐지라도 사모펀드(PEF·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사사로이 자금을 모아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에 출자하는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은행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아울러 그동안 산업 자본으로 분류되던 연기금도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여기까지가 금융위가 제시한 1단계 금산분리 완화다.

은행 지분을 갖고 있는 PEF에 산업 자본은 10% 이하로만 출자가 가능했다.

이것을 '15~20% 이하'까지 확대해 산업 자본이 충분히 금융 시장에 흘러들어올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다.

금융위는 아울러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산업 자본의 은행 지분 직접 소유 한도를 확대하는 2단계 조치로 나아갈 생각이다.

중간에 PEF라는 완충 장치를 두지 않고 직접 은행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겠다는 얘기다.

현재 산업 자본은 은행 지분을 4% 이상 가질 수 없다.

이것을 10%까지 확대하면 전체 지분이 여러 곳에 분산된 은행의 경우 대기업이 최대주주 지위를 획득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신 은행이 산업 자본의 '사(私)금고'로 잘못 쓰여지는 일을 막기 위해 대주주 자격 심사를 철저히 하고 사후 감독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산업 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규제 자체를 아예 없애는 3단계 조치도 여건을 봐서 추진된다.

소유 지분을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로 각각의 산업 자본을 개별 심사해 은행을 가질 수 있게 할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 규제 왜 풀어 주나

정부가 이처럼 엄격한 금산분리 원칙을 조금씩 깨 나가기로 한 것은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금융 공기업의 민영화를 위해서다.

현재 정부가 팔아야 하는 은행은 크게 세 곳이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원래 고유의 공적 목적(정책금융 중소기업금융 등)을 갖고 만들어진 국책 은행이지만 효율성을 높인다는 이유에서 민영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그리고 우리금융지주는 외환위기 때 어려워진 것을 예금보험공사가 공적 자금을 투입해 살려내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정부가 최대주주 위치에 올라 있다.

따라서 언젠가는 민간 은행으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들 민영화 대상 은행은 워낙 덩치가 커져서 외국계 자본과 국내 산업 자본을 제외하고는 선뜻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데가 없는 실정이다.

그동안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 외환은행 등이 외국인 소유로 넘어가면서 토종 은행을 더 이상 외국 자본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높다.

산업 자본의 경우엔 앞서 얘기한 엄격한 소유 규제로 인해 대주주를 찾지 못했다.

민영화는 해야겠는데 사 줄 사람은 없고,정부는 이런 고민을 해결할 방법으로 단계적인 금산분리 완화 카드를 빼든 것이다.

이 같은 조치로 삼성 LG 현대 SK 등 국내 주요 기업들 가운데 은행 경영권 인수 의사를 보이는 곳이 조만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PEF를 통한 재무적 투자(경영권 확보가 아니라 순수하게 배당 수익과 시세 차익을 노리고 하는 투자)만 가능한 상황이지만 은행 경영책임자에게 간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직접 소유가 허용되면 PEF가 확보한 주식을 손쉽게 인수할 수도 있다.

간접 투자를 통해 미리 사 두는 '입도선매'의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 증권·보험과 산업의 분리는 완전 철폐

금융위는 아울러 금산 분리의 또 하나의 축으로 작용했던 한 그룹 내 증권·보험사와 제조업 계열사의 공존 제한도 완전히 없애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금융-산업의 분리'라는 뜻을 가진 '금산 분리'의 영역에서 증권사 보험사 등은 완전히 빼 내고 순수하게 '은행-산업의 분리(은산 분리)'만 남기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금융위는 증권 보험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금융지주회사는 그 아래 제조업 자회사를 둘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키로 했다.

또한 일반 지주회사 밑에 은행을 제외한 다른 금융 자회사를 보유토록 허용했다.

이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대기업 집단이 그룹 내에서 금융사와 제조회사를 분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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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분리 필요한가

새 정부의 규제완화 방침에도 불구하고 1982년 도입된 금산분리 원칙은 여전히 남겨 둬야 하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라는 주장도 있다.

논술과 구술 시험에 대비해 이와 관련된 찬반 논란을 정리하고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정립해 놓자.

⊙ YES "유지 또는 강화해야"

대기업 등 산업 자본이 자기 자본이 아닌 고객 예금으로 방만 경영을 일삼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게 주된 논리다.

특히 은행은 수표 발행 등 자기의 신용으로 통화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특정 대기업 경영주가 사적인 이익을 위해 남용하기 시작하면 해당 은행뿐 아니라 경제 전체가 멍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모기업의 필요에 따라 금융회사 자금을 무리하게 빌려다 쓰게 되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이 훼손되고 금융회사의 간판을 믿고 자산을 맡긴 고객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금산분리 원칙은 최소한 지금처럼 유지되거나 더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 NO "완화 또는 폐지해야"

금산분리 폐지론자들은 금융과 산업 사이의 벽을 낮추거나 허물어 주면 남는 산업 자본을 금융에 투자해 자본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외국계 자본으로부터 국내 금융업을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산업 자본의 사금고화 등 부작용은 법적 장치를 만들고 감독을 철저히 하면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울러 국내 자본을 역차별하는 규정이라는 논거도 편다.

외국 자본의 국내 금융산업 장악에 도움을 줄 뿐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