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4.9 총선 때 왜 번거롭게 투표용지 두 장씩 받으면서 굳이 비례대표를 뽑지?
당신이 4월9일 치러지는 18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장에 들어섰다고 가정하자.

투표장에서는 당신의 신분을 확인하고 투표용지 두 장을 내어 줄 것이다.

한 장에는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들의 이름이 나열돼 있고, 다른 한 장에는 이번 총선에서 후보자를 낸 정당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준비가 되었는가?

천으로 사방을 가린 기표소에서 당신은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 옆에 각각 기표도장을 찍고 투표함에 넣는다.

후보의 이름이 적힌 투표용지는 모아져 당신이 사는 지역구 의원을 결정하게 되고, 정당이 적힌 투표용지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정하게 된다.

해당 지역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사람이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비례대표는 어떻게 구성되는 걸까.

왜 번거롭게 투표용지를 두 장씩 받으면서 굳이 비례대표를 뽑는 걸까.

한 번 알아보자.

⊙ 비례대표가 만들어지기까지

[Focus] 4.9 총선 때 왜 번거롭게 투표용지 두 장씩 받으면서 굳이 비례대표를 뽑지?
자, 다시 기표소에서 지지정당에 한 표를 찍던 순간으로 돌아가자.

투표용지에는 당신이 사는 지역에 국회의원 후보를 내지 않은 정당의 이름도 적혀 있다는 점을 유의하자.

이것은 가령 '생글'당에서 당신 동네에 후보를 공천하지 못했더라도 당신이 생글당을 지지한다면 그 당에 한 표를 던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비례대표 투표방식을 각 당의 이름이 나열된 별도의 기표용지라는 뜻으로 '정당명부제'라고 한다.

이처럼 각 투표소에서 정당명부를 모으면 각 정당의 전국 득표율을 구할 수 있다.

만약 생글당이 전국적으로 20%의 지지를 얻었다면 국회에서 할당된 전체 비례대표 의석 중 20%를 차지할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할당된 의석은 54석.

생글당은 54의 20%인 10.8이 반올림된 11석을 비례대표 의석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은 40명, 한나라당은 50명까지 순위를 매긴 비례대표 후보를 선관위에 등록시켰는데 각 정당이 가져갈 비례대표 의석 수가 확정되면 이 순위에 따라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결정된다.

지난 대선의 득표율을 기준으로 한나라당은 순위 25번까지,민주당은 15번까지가 안정권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변수는 있다.

현재 국회법은 정당이 정당명부에서 3% 이상을 득표했거나 지역구 의원을 5명 이상 배출했을 경우에만 비례대표 의석을 배정받을 수 있는 권리를 준다.

만약 '생각'당이 정당명부에서 2.5%를 득표했다면 산술적으로는 한 석을 가져갈 수 있었겠지만 이 조건에 걸려 의석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7대 총선에서 자민련(자유민주연합)이 2.8%의 득표로 이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해 당시 비례대표 1번이었던 김종필 전 총리가 사실상 정치계를 떠나는 사건이 생기기도 했다.

이처럼 비례대표 의석 부여 자격을 얻지 못한 정당의 득표를 제외하고 다시 배분을 하게 되면 비율을 계산하는 분모가 줄어들어 생글당의 의석은 더 늘어날 수 있다.

⊙ 더 나은 대의(代議)를 위한 비용

비례대표 제도의 존재는 민주주의 대의제 정치체제의 복잡성에 기인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을 대변할 일꾼을 뽑는 장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정치세력이 많은 의석을 얻고 국회를 장악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성격도 가진다.

만약 지역구 의원만으로 국회가 구성된다면 명망가와 지역색에 기반을 둔 정당이 국회를 장악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총선에서 14%를 득표한 민주노동당의 지역구 의석은 2석으로, 2.8%의 전국 지지를 기록했지만 4곳의 지역에서 승리한 자민련의 절반에 머물렀다.

비례대표 제도가 아니었다면 14%의 국민이 지지한 정당이 전체 299석의 국회 의석 중 2석만 차지하는 불합리한 결과가 나타났을 것이다.

민노당은 비례대표에서 8석을 배정받으며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이어 제3당에 올라설 수 있었다.

비례대표제는 또 1위 후보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에서 2위 이하 후보자를 지지한 사표(死票)를 줄이는 역할도 한다.

아울러 군소정당에 던진 표도 비례대표 의석에 기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정치적 기반이 약한 신생, 군소정당이 원내에 진출하는 데도 기여한다.

노경목 한국경제신문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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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를 둘러싼 힘겨루기

8년 전만 해도 비례대표제도는 우리가 공부한 ‘정당명부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유권자들은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자를 대상으로 한 번만 투표했고, 각 후보의 소속 정당 득표를 합산해 전국 득표율을 구하고 이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정하는 방식이었다.

예컨대 당신이 생글당을 지지하더라도 생글당에서 해당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못했다면 총선을 통해 당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시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때문에 당시 정당들은 당선 가능성이 없거나 자질이 부족하더라도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지역구에 후보를 출마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 같은 제도가 바뀐 것은 2001년 7월 헌법재판소(헌재)가 당시 선거법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부터다.

헌재는 당시 비례대표 제도가 군소정당의 원내 진출을 가로막고 사표를 늘려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제한한다는 이유를 들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비례대표제도 개선이 정치권 스스로의 합의가 아닌 헌재의 위헌 판결로 가능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를 무대로 세력을 나눠 가지고 있는 기존 정당들은 필연적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선거제도 개선이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침해할 경우에는 이에 저항하게 된다.

군소정당의 원내 진출은 기존 정당이 국회에서 차지하고 있던 파이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용인할 수 없다.

독일의 경우 전체 의석의 50%, 네덜란드와 이스라엘은 100%가 비례대표로 구성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비례대표 의석수가 전체 299석 중 54석에 불과한 점도 이같은 힘겨루기의 결과로 볼 수 있다.

18대 총선 의석 배분 과정에서도 지역구 의석이 2석 늘어나고 그만큼 비례대표 의석이 줄어든 선거구 획정안 결정 과정도 다른 군소정당이 배제된 가운데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합의 하에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