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연세대 교수·경제학

▶ 2008년 3월19일 A39면

경제논리라 하면 흔히 돈이나 황금만능주의를 떠올린다.

경제적 이익 추구를 위해 인간애를 포함한 다른 어떠한 가치도 희생할 수 있다는 식의 도그마와 동일시된다.

가령 교육단체가 여론몰이에 가장 성공하는 방법인, 즉 '교육을 경제논리로 풀려는 무지의 소치' 운운 몇 마디이다.

교육 대신 환경,노동,여성,복지 어느 것을 끼워 넣어도 여전히 통한다.

하지만 오해다.

경제논리의 핵심은 이것이다.

목적이 아무리 숭고하고 목표가 아무리 뚜렷하더라도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경우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오히려 원래 의도나 목표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빚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본래 목적은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면서 갖은 부작용이나 애꿎은 피해자만 양산하는 법과 규제가 현실에서 드물지 않은 이유다.

대략 100개 법률의 규제를 받고 있는 토지이용 규제가 대표적이다.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의 원칙과 자작농주의에 근거해 농지소유 자격과 상한,농업진흥지역 지정,농지전용 제한 등 농지규제가 특히 문제다.

농업의 상대적 중요성이 줄고 농가인구의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에 기인한 휴경농지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는 상황에서 대농화와 기계화를 통한 농업구조조정은 필수지만 농지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농지의 양적 보전에만 급급한 나머지 농업생산성 저하와 토지이용의 효율성 저해라는 부작용은 심각하다.

최근 국제 농산물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일부 단체들은 그것 보라는 듯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들은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농지규제 완화가 아니라 농지 확대를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농지규모가 아니라 단위 면적당 농산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에 있다.

농업구조조정을 통해 기업농이 실현되면 생산성 제고는 물론 종자,비료 관련 업체의 연구기술개발을 촉진해 생장발육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도 뒤퐁,신젠타,애그리움에 버금가는 세계적 농바이오 기업을 갖게 된다면 천문학적 종자 비용을 해외에 지불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꿩 먹고 알 먹고'이다.

식량안보는 실체가 모호하다.

국내 쌀 가격은 국제 가격의 5배나 된다.

곡물 메이저들이 카르텔을 형성한다고 하더라도 유독 우리나라만 대상으로 그 정도까지 가격을 높일지 의문이다.

더구나 곡물은 석유,원자재처럼 수시로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므로 곡물 카르텔의 지렛대는 상대적으로 약할 것이다.

농업구조조정에 대해 곡물가격이 오를 때에 대비해 평시에도 농지규모를 유지하자는 발상은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거시적 위험 분산에 배치된다.

최근 국제 곡물가격 상승 추세는 신흥국의 경제성장,육식 확대에 따른 사료용 수요 증가,바이오 연료 사용 증가,기상이변으로 인한 공급 감소 등 구조적 요인이 있음은 분명하나 단기적 성격이 훨씬 강하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부실로 촉발된 신용경색과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금리인하가 단행되고 그로 인해 풀린 잉여자금들이 곡물뿐 아니라 석유,원자재,금 가격을 올려놓았다.

거기에 투기자본까지 가세해 원자재와 곡물가의 변동성은 도를 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선물시장을 활용한 수입국 다변화,국내 유휴지 곡물재배 유도,해외 농업개발 투자 확대 등 맞춤형 농업정책이 정답이다.

더구나 자급률 100%를 유지하고 있는 쌀을 더 심자는 얘기라면 시장수급 법칙에도 어긋난다.

농지규제 완화는 오히려 농업구조조정을 촉진시키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더불어 국제가격의 5배에 달하는 국내 곡물가격 왜곡을 통하지 않고도 농민들의 재산과 소득증대 기회를 실질적으로 늘려주는 일거양득이 기대된다.


------------------------------------------------------------

근시안적 규제정책 엉뚱한 결과 가져올 수 있어

해설

'도시를 파괴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폭격기를 동원해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대주택의 임대료를 정부가 규제하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시장경제 원리를 강조할 때 흔히 인용하는 말이다.

폭탄을 떨어뜨리면 도시가 파괴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임대료 규제가 도시를 파괴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오히려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임대료는 함부로 올리지 못하도록 해야 옳지 않은가.

많은 정치인 행정가들은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임대료를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임대주택 시장의 역사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뉴욕시 정부는 서민들을 위해 임대료를 엄격하게 규제했다가 임대주택 단지가 슬럼가로 변해 다시 규제를 없애는 시행착오를 겪은 적이 있다.

당시 물가 상승으로 임대료가 크게 올라,일정수준 이상 오르지 못하도록 규제하자 임대주택 건설이 줄어든 것은 물론 기존 임대주택도 관리하지 않아 슬럼가로 변했다는 것이다.

서민들을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서민들을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김영세 연세대 교수는 경제정책의 목표가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 이처럼 엉뚱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면서 정부의 농지정책을 경고하고 있다.

최근 세계 곡물가격 상승으로 농산물가격이 오르자 정부 일각에서 농지를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됐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농업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낮은 생산성이다.

생산성은 단위 면적당 또는 해당 산업 종사자 한 명이 생산해 내는 부가가치를 말한다.

농업 생산성은 농지면적, 농민의 숫자, 농기계, 재배농작물 등 여러 요소에 의해 결정되며 특히 기계화와 재배농작물 종류에 큰 영향을 받는다.

좋은 기계를 사용하고 희소가치가 있는 농작물을 재배할 경우 그만큼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마치 무인도에 떨어진 로빈슨 크루소가 맨 손이 아닌 낚싯대를 사용해 고기를 잡을 때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현재 우리나라 농업 생산성은 선진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그만큼 농지를 재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농지를 늘릴 것이 아니라 기존의 농지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토록 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농지를 주택용지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농업구조조정을 촉진시키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의 국제 곡물가격 상승에 대해서도 신흥국의 경제성장,바이오연료 사용 증가,기상이변으로 인한 공급 감소 등의 구조적 요인도 있지만 단기적 성격이 훨씬 강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