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칠맞은 사람과 칠칠맞지 못한 사람

[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밥맛에서 엉터리까지③
"자기~ 참 칠칠맞은 여자야."

누군가 애인에게 이런 말을 천연덕스럽게 한다면 아마도 그날로 절교선언을 들을지 모르겠다.

"뭐라고, 나더러 일 처리하는 게 반듯하지도 않고 주접스럽다는 말이지? 흥!"

그러니 간덩이가 붓지 않은 이상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말은 사실 틀린 표현이 아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칠칠맞다'는 '칠칠하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칠칠하다'는 '주접이 들지 않고 깨끗하고 단정하다' '성질이나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의 쓰임새에는 단서가 따라붙는다.

주로 '못하다,않다'와 함께 쓰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단정치 못하고 주접스럽다'는 뜻을 나타낼 때 '칠칠하지 못한 사람'이니, '그는 매사에 칠칠치 않다'느니, '사람이 칠칠치 못해 이 모양이다' 식으로 쓰는 말이다.

이를 좀 더 일상적인 표현으로 하면 '칠칠맞지 못한 사람' '칠칠맞지 않은 사람'이 된다.

그러니 '칠칠맞은 여자'는 칭찬하는 말이고, 애인에게 진짜 탓하는 투로 말하려면 '칠칠맞지 못한 여자'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칠칠맞지 못하다/않다'에서 부정어를 생략하고 그냥 '칠칠맞다'라고 하는 말로 충분한 것으로 여기는 데 있다.

이는 잘못된 언어습관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살피고 있는 '의미 이동이 진행 중인(형태 변형 중인) 말' 가운데 하나로 볼 수도 있다.

물론 규범적으로는 아직 인정되는 어법이 아니므로 부정적인 의미로 쓸 때는 반드시 '못하다/않다'를 붙여야 온전한 표현이 된다.

"왜 그렇게 안절부절하는 거야?"

"이런 얼토당토한 일이 있나."

이런 말버릇도 비슷한 오류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얼토당토아니하다'라는 말이 줄어서 '얼토당토않다'가 됐다.

이 말은 '전혀 합당하지 않다, 전혀 관계가 없다'라는 뜻이다.

'얼토당토'가 어근이지만 '얼토당토' 자체로는 쓰임새가 없고 항상 부정어 '않다'가 붙어서 한 단어로 쓰인다.

'얼토당토'라는 말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무심코 입말에서 "얼토당토하다"라고 하는 것은 불완전한 표현이다.

부정어를 살려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이 있나'라고 해야 제대로 된 말이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 어찌할 바를 모르다'란 뜻을 나타내는 말은 '안절부절못하다'이다.

이 역시 한 단어이므로 자칫 '안절부절 못하다'처럼 띄어 써서도 안 된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안절부절못했다.'

'거짓말이 들통 날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식으로 쓴다.

이를 '…안절부절했다'라고 하는 것은 적어도 규범언어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하도 '안절부절하다'란 말을 많이 쓰니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아예 이를 '안절부절못하다의 잘못'이라 못 박았다.

'안절부절못하다/안절부절하다'의 관계는 단순히 부정어가 생략된, 의미 이동 중인 말로 보기에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안절부절'이란 독립된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서는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 어찌 할 바를 모르는 모양'이란 뜻으로 '안절부절'을 부사로 다루고 있다.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다' '조바심은 더욱 심해져 안절부절 견딜 수가 없었다'와 같은 표현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안절부절하다'란 말을 '안절부절'과 '하다'의 결합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말에서 '덜컹덜컹하다' '반짝반짝하다' '달리하다' '어찌하다' 식으로 부사에 접미사 '-하다'가 붙어 동사나 형용사를 만드는 경우는 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안절부절하다'란 말은 버리고 규범적으로 '안절부절못하다'를 인정한 것은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