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엘리트들은 어떻게 뽑나

[Focus] 요즘 정당들 공천문제로 시끄러운데…
요즘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당들은 고민이 한창이다.

4월9일 치러지는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의 깃발을 들고 선거에 나갈 후보를 선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후보는 각 지역구에서 정당을 대표하고,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한 정당일수록 큰 힘을 갖게되는 만큼 좋은 후보를 고르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후보는 후보대로 유력한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저마다 자기의 이름 석자를 박은 명함을 들고 지역구를 누비며 경력과 능력을 홍보하기에 바쁘다.

공천 대상자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리스트에 들지 못한 이들은 당사 앞에서 강아지 인형을 물에 삶는 행위로 불만을 표시하고 당 대표를 직접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각 정당이 총선 후보를 내세우는 공천.이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결론을 내리는 걸까.

⊙ 공천의 키는 공천심사위원회에

우리나라 정당정치도 어느덧 반세기 넘는 전통을 쌓아오면서 공천과 관련된 절차와 제도가 정비되어 거대 양당인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비슷한 공천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총선이 치러지기 2~3개월 전부터 시작되는 공천준비 과정은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를 구성하면서 시작된다.

공심위에서는 공천 방식 결정부터 최종 국회의원 후보자 선출까지 공천과 관련된 전권을 행사하게 된다.

공심위가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다보니 공심위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중립성이다.

공심위가 당내 특정 계파의 이해관계에 휘둘릴 경우 한쪽 계파에서는 부적합한 인물이 공천을 받는 반면 반대 계파의 인사들은 정치적 보복 등으로 총선에 나설 기회가 처음부터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심위는 도덕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증명된 당 바깥의 인사에게 공심위원장을 맡기고, 다른 외부 인사를 공심위에 대거 참여시켜 당 지도부를 비롯한 당내 주요세력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별도의 기구로 만들어진다.

공심위 구성의 세부적인 방법은 당 지도부의 결정에 달려 있는데 이에 따라 공심위와 당 사이에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지난달 공심위의 이명박계 인사들이 박근혜계 인사들을 공천에서 배제하려 한다며 분란이 일어났던 한나라당 공심위는 과도한 정치색이 문제가 됐던 반면, 최근 공심위원장이 공천기준과 관련된 원칙론을 고수하며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한 민주당은 지나친 독립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일단 공심위가 구성되면 본격적인 공천 심사에 착수한다.

공심위에서는 후보자의 지난 경력과 능력, 해당 지역구에서의 인지도와 지지도 조사를 바탕으로 공천할 후보를 결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공심위는 영남에서, 민주당 공심위는 호남에서 현역의원들 대신에 새로운 인물을 공천하는 이른바 '물갈이'를 시도하고 있다.

지역색이 강한 우리나라 정치구도에서 각 당의 이름만 들고 나가도 해당 지역구에서 당선될 수 있어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함량 미달의 현역 의원들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총선을 한 달 즈음 앞두고는 대부분의 공천이 마무리되고 후보들은 지역구에서 다른 당 후보들과 맞설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 공천제도도 경쟁의 산물

하지만 이 같은 공천 시스템이 정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총재'라는 이름을 지닌 거물 정치인이 공천과 관련된 권한을 틀어쥐고 자신의 마음에 맞는 이들을 국회의원 선거에 내보냈다.

때문에 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당 총재에 대한 충성경쟁을 벌였고 이것은 국익보다 당의 이익을 우선하는 패거리 정치로 귀결됐다.

이런 공천 구조가 변화한 직접적 원인은 지역별로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3김(金·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이 정치 일선에서 퇴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좋은 국회의원 후보자를 내놓기 위한 각 당의 경쟁이 있다.

당 총재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상황에서는 함량에 미달되더라도 총재에게 잘 보인 이들이 후보로 나서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경우 지역색이 상대적으로 덜한 수도권 등에서는 실제로 능력 있는 후보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각당은 앞다퉈 선거라는 시장에 팔릴 제대로 된 '상품'(후보)을 내놓기 위해 공천과정에 혁신을 도입한 것이다.

유권자들도 자신이 표를 던지려는 후보가 어떤 과정을 거쳐 각당의 대표로 지역구에 나서는지 주목하게 되면서 공천과정의 투명성이 후보자와 정당에 대한 지지로 직접 연결되는 경우도 많았다.

비록 경제 영역은 아니지만 공천 시스템 역시 자유로운 경쟁이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노경목 한국경제신문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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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천 방법도 있다는데…

총선에서 대부분의 후보는 공천심사위원회를 통해 결정되지만 일부는 다른 방식을 통해 공천되기도 한다.

공심위를 통한 공천의 절차와 공천 결과에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전략공천=일부 지역구에 공심위를 통하지 않고 당 지도부가 직접 유력인사를 영입해 후보로 내세우는 방식을 전략공천이라고 부른다.

공심위의 공천심사 과정에서는 지역구에서의 활동과 지지도 등을 고려하다보니 유력인사라도 탈락하는 경
우가 생길 수 있고, 당 외부의 명망가들의 경우 이런 위험성 때문에 공천 신청을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략공천은 상대당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지역에 보다 경쟁력 있는 인사를 순발력 있게 배치해 선거에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

전략공천이 카드게임의 ‘조커’에 비유되는 이유다.

이번 총선에서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전체 의석의 20~30% 정도를 전략공천 대상으로 정하는 등 비중이 적지 않다.

하지만 타당한 심사과정 없이 관련 인사를 ‘낙하산’처럼 내려보내는 만큼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예비후보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또 지역민심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전략공천을 단행할 경우 공심위를 통해 결정된 후보보다 득표율이 낮을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 상향식 공천=공천심사위를 통한 공천이 공정하게 진행되더라도 여전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당원들의 의사가 반영될 여지가 적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17대 총선, 일부 정당에서 시행된 것이 상향식 공천이다.

지역의 당원들이 경선과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 후보를 확정하고 중앙당에는 통보만 하는 형식이다.

상향식 공천은 도입 당시에는 선진 정치제도라며 각광받았으나 시행 과정에서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나 이번 총선에서는 사실상 사라졌다.

공천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후보들이 당내 경선을 앞두고 지인들을 해당지역의 당원으로 대거 등록시키거나 표를 얻기 위해 금품을 동원하는 행위가 공공연히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또 경선 과정에서 지역당 내에서도 편이 갈리고 분열돼 정작 본선인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패배하는 경우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