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에 도움되는 훈장취급은 곤란
자기계발 도와주는 원래의 목적 되찾아야


고등학생들에게 각종 경시대회와 올림피아드는 꿩 먹고 알 먹는 식의 좋은 경험이자 시험이다.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교과목과 함께 연계해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일부 대학들이 경시대회와 올림피아드 입상자들에게 입학 특례를 주고 있어 대학 입학까지 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는 셈이다.경제 경시대회와 같은 각종 대회는 청소년들의 자기계발을 돕는다.학생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어 주고,여러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적성에 대해 더 깊히 알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 준다.

물론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경시대회 때문에 많은 부작용도 있다.이러한 부작용만 극복한다면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꿈을 펼치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다.인문계열 경시대회와 올림피아드로는 고교경제 경시대회,고교증권 경시대회,고교생활법 경시대회,각종 논술 경시대회,우리역사 바로알기 경시대회,지리 올림피아드,철학 올림피아드 등등이 있으며 자연 계열로는 전국 수학 경시대회,전국 수학 학력평가,수학.천문.생물 올림피아드 등등이 있다.

전국고교경제경시대회 같은 경우 경제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경제적 사고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경제 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며 고등학교 경제교육 활성화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는 개최 목적을 두고 있다.

물론 이 같은 경시대회와 올림피아드는 모든 면을 다 긍정할 수는 없다.


⊙ 고교 경시대회와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학생들

경시대회와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크게 학교파,학원파,스스로(독자 공부)파로 대립된다.

서울 명덕외고 경제,경영 동아리인 '레세페르(Laissez-faire)'는 경제,경영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을 위한 동아리이다.레세페르 동아리 회원들은 경제 경시대회 기출 문제들을 풀고 주요 개념들을 정리하면서 경제 경시를 준비한다.문제를 미리 나눠주어 부원들이 미리 풀 수 있도록 하며,각자 설명할 문제를 할당해 준다. 부원들은 자신이 맡은 문제에 포함된 주요 개념을 '맨큐의 경제학'과 같은 경제 관련 서적을 참고해 준비해 온다.그 다음 동아리 시간에 모여 자신이 맡은 문제 및 주요 개념을 설명해 주고 질문을 받는다.

동아리 장을 맡고 있는 이상민군(1학년)은 학교와 학교 선생님들이 고교 경제경시대회나 각종 경시대회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방학 중 개설되는 증권,경제 경시 대비반이 도움이 됐고 또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경제 경시를 공부하기 때문에 서로 아는 것은 공유하고 모르는 것은 가르쳐 주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자립형 사립고인 울산 현대 청운고등학교의 경우 학교에서 특강 경시대회 반을 운영해 학생들을 직접 지도해 준다.문과에는 경제 경시,생활법 경시대회반이 개설되고 이과에는 수학 경시반이 개설된다.또한 물리 경시대회 같은 것이 있을 때는 따로 선생님들께서 반을 수시로 만들어 학생들을 지도한다.일주일에 2~3회 수업하며 그 과목에 대한 기본 이론은 주로 교과서와 자습서로 수업하고 심화된 기출 문제를 많이 하는 식이다.

경제 경시반과 생활법 경시대회반의 수업을 들었던 2학년 S양은 수능 선택 과목을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었고 경험을 쌓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학생들 중 경시대회를 혼자 준비하기 벅차 학원에 의지하기도 한다.서울 D외고 1학년 K군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모 학원의 전단에서 작년도 경제 경시대회 수상자 명단과 대비반을 개강한다는 내용을 듣고 그 학원에서 경제 경시대회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학원의 경시 대비반 모집 광고를 듣고 모인 학생들과 반을 구성하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K군이 현재 공부하는 교재는 대학 교재인 '맨큐의 경제학'으로 대학 원론 수준의 문제 기출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이후에는 기존의 경제 경시대회 기출 문제로 풀이 수업을 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K군은 무엇보다도 역시 대학의 경제학 원론 수준을 공부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고,주관식 문제는 논술 형식이며 주제 자체도 어려워서 스스로 공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학교 근처 학원에서 특강 식으로 진행하는 경제 경시반,경제 AP반 수업을 듣고 있다.2주 정도 수업했는데 1주일에 한 번 3시간씩 수업하며 학원 유명 강사들이 자체 교재와 '맨큐의 경제학'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J군은 외고이다 보니 내신도 불리하고 학교에서도 이런 경시대회 상,AP를 먼저 하라고 권유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부산 서 여자고등학교 2학년 박해성양은 올해 9월8일 개최된 한국 생물올림피아드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이과인 박양은 평소 물리와 생물에 관심이 많아 7월부터 단기간 독학을 했다.올림피아드 학원 인터넷 강의와 학교 선생님과 함께 공부한 것이 전부이다.시험 범위가 너무 넓고 시험문제 유형도 달라 문제 형식이 암담했다고 말했다.일반 생물학으로 공부했으나 교재가 너무 두껍고 또 다 소화하기 힘들어서 학교 생물 선생님께 자주 물어보았다고 한다.하지만 박양은 이런 올림피아드 혹은 경시대회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반을 개설해 인문계도 과학고만큼이나 더 큰 경쟁력을 만들어야 된다고 말했다.

⊙ 고교 경시대회들이 지향하고 지양해야 할 부분들

현재 한국에는 수학,영어,과학,생활법,경제,증권 등의 경시대회 분야가 존재한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경시대회가 단지 학생이 대학교나 특목고 입시에서 더 좋은 위치를 선점할 목적으로만 쓰인다.학원은 이를 노려 경시대회 대비반을 만들고 수상한 학생들의 이름을 전단에 넣어 홍보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경시대회의 문제들이 영재성을 평가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사고력,영재성 측정이 가능한 주관식 위주로 출제되는 경시대회를 제외하면 '경시대회 문제=선행 학습'의 공식이 대부분 통용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경시대회에서 학생의 영재성이나 본래 실력이 아닌,사교육을 받았든 자습을 했든 학생이 얼마나 선행 학습을 했느냐가 평가되는 것이다.이런 경우에 대다수 학생들은 당연히 사교육을 받는 쪽을 택한다.

이러다 보니 사교육 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과학고나 소위 명문 사립고 진학에 유리한 수학,과학 분야의 경시대회 대비반뿐만 아니라 생활법,경제,증권 등 사회과 과목의 경시 대비 학원들도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이와 같은 학원의 경시 대비반은 일반 수업보다 최고 2~3배에 이르는 비싼 수강료를 지불해야 한다.엄밀한 의미의 경시대회는 아니지만,미국 대학 진학시 도움이 되는 SAT(미국의 대학 입학 자격시험)나 AP(Advanced Placement.대학과목 선이수 학점제) 시험 대비반의 경우 수강료는 월 200만~400만원 수준에 이른다.강남구의 AP 대비로 유명한 학원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AP 대비반이 시간당 15만원의 수강료를 받지만 다른 학원에 비해 결코 비싼 편이 아니다"고 밝혔다.

사실 영재성을 검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단지 어떤 학문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이 그 학문에 관한 영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미국의 경우 AMC라는 수학 경시대회가 있다.이 대회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응시할 수 있다.AMC에는 단 25개의 객관식 문제만 등장하는데 학교 수학 문제와 달리 다양하면서도 도전적이어서 수학적 흥미를 고취시키는 데 취지를 둔 문제들이 출제된다.이 점이 바로 우리나라의 경시대회들과 다른 점이다.우리나라의 경시대회는 학문에 관한 흥미를 고취시킬 목적을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경시대회 수상은 대학,특목고 입시에 도움이 되는 훈장 정도로밖에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

경시대회를 통해 선발된 학생들이 해당 학문의 전공을 택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우리나라의 수학,과학 경시대회는 참가자 수가 매우 많고 국제적 올림피아드에서도 한국 학생들은 뛰어난 성적을 자주 거둔다.정상적이라면 우리나라의 수학,과학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해 있어야 한다.그러나 왜 그렇지 못할까? 역시 경시대회가 입시 목적으로만 쓰이고 응시생들이 학문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탐구심에 기초를 두고 참가하지 않기 때문이다.수학,과학 경시대회 수상자들은 의대에서 메스를 들려고 한다.

순수 학문의 지식과 영재성,실력을 겨루는 국제 대회에서 수상한 인재들이 풍부한 나라가 순수 학문 발달이 미흡하고,과학고 입시 경쟁률은 극도로 높지만 이공계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아이러니는 경시대회가 순수성을 잃은 측면과 그 맥을 같이한다.

근원적으로 환원하자면,황금 만능주의에 매몰된 세태 속에서 교육이 출세의 수단,상품이 되어 버린 것이 근본 이유다.

수많은 고교 경시대회와 올림피아드의 문제는 이뿐만 아니라 좋은 취지와 목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올림피아드도 더러 있다는 점이다.2003년부터 시작한 철학 올림피아드의 경우 매년 응시자 수가 100명이 잘 넘지 않고 또 외고,자사고의 축제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철학 올림피아드의 한 담당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1회 때부터 홍보와 여러 가지 일을 담당하고 있는데 전국 고교에 공문을 다 보냈지만 철학이라는 학문을 담당하는 교사가 잘 없기에 학생들도 정보를 잘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또 생활법 경시대회를 주최하는 법 문화진흥팀에서 근무하는 이혁 계장은 경시대회의 경우 많은 학생들이 문제의 어려움을 호소하여 올해부터 쉽게 출제하기 위해 문제 출제 연구진과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배수지 생글기자(부산서여고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