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피델 카스트로 물러난 쿠바, 변화의 훈풍 부나
쿠바의 통치자 피델 카스트로(81)가 지난 19일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삼십대였던 1959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집권한 뒤 49년간 쿠바를 공산주의의 요새로 만들어온 그다.

그동안 그와 줄곧 날을 세워온 미국에서는 백악관 주인이 9번 바뀌었다.

서방세계의 비판과 수많은 암살 기도 속에서도 꿋꿋이 건재했던 그였지만 결국 건강상 문제로 국가평의회 의장 자리에서 떠났다.

후임으로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이 24일 국가원수를 맡자 국제사회는 고립된 쿠바 경제가 새로운 변화를 맞을지 주목하고 있다.

⊙ 독재자 vs 혁명가…피델의 그림자

피델 카스트로는 반세기에 이르는 통치 기간 수많은 논란의 정점에 있었다.

그는 부유한 집안의 법률가 출신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게릴라가 된 인물이다.

그의 목표는 미국에 예속되지 않는 쿠바만의 자주 노선이었다.

집권 후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미국을 비롯한 외국 자본을 몰수하며 반미와 '라틴아메리카 해방'을 외쳤다.

그 과정에서 반체제 인사 수천명을 수감하고 사유재산을 압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상당수 쿠바인들은 자유를 찾아 보트에 의지해 미국으로 탈출하는 '엑소더스'에 나서야 했다.

서방 세계는 피델 카스트로를 국민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인권을 짓밟는 독재자라 불렀다.

하지만 지지자들의 평가는 다르다.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빈부 격차를 없애고 국민의 복지를 높였다는 옹호론이다.

국민건강보험 체제를 도입해 전 국민 무료 의료를 시행하고, 높은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 점 등은 지금도 높이 평가받는다.

의료 복지가 뛰어나다 보니 평균수명은 77.08세로 세계 최고 수준이고 성인 문자 해독률도 99.8%로 선진국 수준까지 올라갔다.

중남미 좌파의 또다른 선봉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그를 인민의 삶을 바꾼 존경스러운 혁명가라 칭한다.

카스트로의 지지자들은 쿠바가 카스트로 이후에도 사회주의 정치체제와 경제구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쿠바는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정권이 붕괴한 이후 지구상에 남아있는 5개의 공산국가 중 하나다.

⊙ 중국식 사회주의로 개혁 개방?

진실이 무엇이든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은 이제 논란의 최전선에서 물러났다.

남은 것은 미국의 금수조치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구 1200만명의 쿠바 국민이다.

쿠바 의회는 24일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후계자로 피델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을 선출했다.

라울은 형 피델이 2006년 7월31일 장출혈 수술을 받으면서 권력을 사실상 넘겨준 후 지난 19개월 동안 피델을 대신해 국가를 운영해 왔다.

국제사회는 반세기 동안 반미 운동에 앞장섰던 피델 카스트로 시대가 막을 내리고 개혁과 개방의 새로운 시대가 찾아올 수 있을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 강한 대립각을 세워온 카스트로가 물러나고 보다 실용적인 노선을 채택함으로써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투자와 교역이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이 같은 기대로 19일 뉴욕 증시에서는 쿠바 인근 지역에 사업 기반을 가진 기업에 투자하는 '헤르츠펠트 캐러비안 펀드'의 자산가치가 장중 20% 이상 치솟기도 했다.

새 국가원수인 라울 카스트로는 형보다 실용적인 인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라울은 공개적으로 쿠바 경제의 비효율성에 대해 수차례 언급했고 농업부문의 중앙통제 탈피 등 제한적 개혁을 추진해왔다.

그는 특히 개혁·개방을 특징으로 하는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해 호의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라울 체제하의 쿠바는 좀더 적극적으로 경제 개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쿠바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500달러로 세계 140위에 머물고 있다.

이집트(5400달러)나 중국(5300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인도네시아(3400달러)와 필리핀(3300달러)보다는 높다.

지난해 쿠바의 경제성장률은 7%를 기록했다.

⊙ 대미 관계 개선이 최대 과제

쿠바의 변화를 좌우할 또다른 변수는 미국의 경제봉쇄 해제 여부다.

미국은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혁명을 내세우자 1961년 국교를 단절했다.

그리고 금수조치를 통해 쿠바 고립 정책을 펴왔다.

2000년부터 식량과 의약품의 대 쿠바 수출은 허용했지만 그밖의 품목들은 여전히 제한을 하고 있다.

미국의 이 같은 견제는 서방국가들이 쿠바에 투자하거나 교역관계를 맺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사임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개선된다면 쿠바 경제도 고립과 폐쇄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카스트로의 사임 소식에 카리브해 일대를 운항하는 선박회사들의 주가가 급등한 것도 향후 금수조치가 풀릴 경우 쿠바와의 비즈니스에서 수혜를 볼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물론 갑작스러운 변화는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 아직은 우세하다.

미국 정부는 이번 권력 이동이 '독재자에서 또 다른 독재자로 이어지는 것일 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25일 피델 카스트로의 후임으로 라울 카스트로가 선출된 것과 관련해 어떤 민주적인 변화의 신호도 없다면서 당분간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쿠바에서 어제 바뀐 것이라고는 새로운 지도자가 떠올랐다는 것"이라며 "쿠바 국민이 자유롭고 번영된 미래를 추구할 수 있게 됐다는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등 미국의 유력 대선 후보들도 카스트로의 사임만으로는 부족하며 쿠바에 진정한 민주적 변화가 있어야 관계 정상화와 무역제재 완화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미국은 계속해서 쿠바의 민주화와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 중남미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반미 좌파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쿠바는 중요한 전략 지역이기 때문이다.

라울 카스트로가 강경한 반미주의자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보다는 온건파인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의 정책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쿠바와 미국 간에 50년 만에 해빙 무드가 조성될 경우 그로 인한 변화의 바람은 중남미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