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가격 급등하자 일부 국가 수출 제한…도미노 확산 조짐

[Focus] 애그플레이션…세계 식량 전쟁으로 번지나?
대표적 서민 간식인 라면 가격이 지난달 20일 650원에서 750원으로 100원이나 올랐다.

이제 하루 세 끼를 라면으로 때울 경우 연료 등 다른 비용을 빼고도 2250원이 들어간다.

서민들 먹거리의 대명사격인 자장면 빵 과자 우유 아이스크림 등의 가격도 작년말 이후 이미 크게 올랐거나 줄줄이 인상 대기 중이다.

식료품 값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보다 밀가루 옥수수 콩 등 국제 곡물 가격이 지난해 이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식품업체들로서는 비용 상승으로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른바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발 물가상승)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애그플레이션은 우리나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일부 농산물 수출 국가들이 농산물 수출 관세를 크게 인상하는 등 자원 민족주의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때 원자재 수출에 제동을 건데 이어 농산물 수출에 다시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 국제 금융시장은 미국 금융기관들이 비우량주택을 담보로 빌려 준 많은 대출 자금을 돌려받지 못해 주가가 폭락하는 등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애그플레이션까지 가세하면서 세계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 곡물값 고공행진=국제 곡물가격이 연초부터 심상치 않은 급등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5일에는 밀값이 하루 사이 25% 넘게 폭등하며 국제 곡물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 미니애폴리스 곡물거래소에서 3월물 봄밀 값은 전날보다 부셸(약 28kg)당 4.75달러(25.25%) 오른 24달러까지 상승했다.

하루 가격 상승폭으론 사상 최대치다.

밀의 주요 생산국인 카자흐스탄 정부가 자국 물가 안정을 위해 곡물 수출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해외로 나가는 물량을 제한하겠다고 선언하자 매수세가 대거 몰리며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빵 재료로 쓰이는 고품질 곡물인 봄밀 선물가격도 올 들어 가격이 두 배로 뛰었다.

지난해 초에 비해서는 이미 4배나 오른 수준이다.

콩과 옥수수 등 다른 농산물 값도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 5월물 콩은 전날보다 12.75센트(0.9%) 뛴 부셸당 14.82달러에 거래됐다.

1년 새 90% 급등한 가격이다.

옥수수는 바이오 연료와 사료용 수요가 늘어나면서 전날 사상 최고치인 부셸당 5.55달러까지 올랐다.

⊙ 왜 계속 오르나=농산물 값 급등의 직접적인 원인은 급증하는 세계 각국의 농산물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구 대국' 중국(13.3억명)과 인도(11.7억명)에서 경제성장과 함께 국민들의 식품 소비량이 크게 늘면서 국제 농산물 시장에서 '블랙홀'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작년 무역흑자가 전년보다 47% 늘어 2622억달러에 달하는 등 시중에 돈이 넘쳐난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까지 상승해 작년 초만 해도 2%대였던 중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수개월째 6%가 넘고 있다.

작년초 한 근(500g)에 7위안이었던 돼지고기 값이 20위안으로 3배로 올랐고 채소 값도 평균 20% 가까이 상승했다.

중국 정부는 급격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최근 주요 생필품 가격을 직접 통제하고 있다.

곡물 수급 불균형의 또 다른 원인은 선진국들의 바이오 에너지 확보 열풍에 있다.

선진 각국이 유가 100달러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휘발유를 대체할 에너지로 곡물을 재료로 한 바이오 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에탄올 등의 연료로 쓰이는 옥수수 사탕수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자 국제 투기자금이 곡물 선물시장으로 몰리면서 농산물 가격 급등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농산물 시장에서는 수요가 늘고 있는 반면 공급은 원활하지 않다.

기상 이변 등으로 미국의 밀 수확이 큰 차질을 빚었고 곡물 수출대국인 호주와 캐나다 유럽의 작황도 좋지 않다.

미국 농림부는 세계 밀 재고가 30년만의 최저치인 1억970만t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산했다.

⊙ 자원 민족주의 확산=생필품 물가가 위험 수준으로 뛰자 일부 국가는 수출제한과 곡물 사재기에 나서는 등 자원 민족주의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자국 내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와중에 곡물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는 걸 지켜만 볼 수 없다는 입장들이다.

이들 나라는 생필품 가격 안정을 위해 잇따라 곡물 수출에 제동을 걸고 있다.

내 코가 석자인데 남 돌볼 겨를이 없는 셈이다.

심지어 식량 여유가 있는 일부 곡물 수출국들은 곡물을 무기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올 들어 밀에 대한 수출세를 10%에서 40%로 인상했고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등도 수출 감소 방침을 밝혔다.

영국의 경제 전문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호에서 '이라크 터키 등이 농산물 부족에 대비해 밀 대량 구매에 나서고 있고 가뭄을 겪고 있는 중국도 이에 동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이미 자국 콩 가격이 뛰자 콩 수출 억제 방침을 선언, 국제 콩 가격 급등을 몰고 온 적이 있다.

미국 농림부는 세계 곡물가격 상승세가 2~3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렇듯 러시아 중국 등 주요 식량 수출국들의 자원 민족주의 움직임으로 인해 '글로벌 식량전쟁' 우려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곡물 부국들이 자국의 잇속을 챙기려고 수출 물량을 계속 줄일 경우 세계 식량파동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꼴치에서 세 번째다.

전문가들은 "곡물 가격이 폭등세를 이어가면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로선 비싼 가격을 주더라도 자칫 식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서 "밀의 자급률을 높이고 해외 농업생산기지를 개발하는 등의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정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parkbi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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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그플레이션?…달걀(egg)이 아닙니다

애그플레이션과 스테그플레이션.

단어 뒷부분이 같은데 뭔가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애그플레이션은 농업(agriculture)과 물가 상승(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농산물 값이 오르면서 다른 물가도 덩달아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작년 초부터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세를 지속하고 있어 세계 각국이 물가 상승 몸살을 앓으면서 나온 신조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이 합쳐진 용어로 경기 침체 속에서도 물가가 오르는 것을 일컫는다.

보통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줄어들면서 소비심리 위축을 불러 물가가 떨어지거나 안정되는게 일반적 현상인데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면 이와는 반대로 물가 상승이 나타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지난 1970년대 중동 산유국(OPEC)들이 카르텔을 만들어 석유가격을 크게 올리면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두 용어 모두 공통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지만 최근 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인한 물가 상승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하지 않고 애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현재 세계 경제가 침체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여파로 올해 세계 경기가 침체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애그플레이션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과열되어 물가가 오르면 정부는 이자율을 높여서 경기를 진정시키고 물가를 안정시킨다.

반대로 경기가 침체되면 이자율을 낮춰서 경기를 부양시킨다.

그런데 경기 침체속의 물가상승 현상인 스태그플레이션에서는 경기를 살리려면 이자율을 낮춰야 하고 물가를 잡으려면 이자율을 높여야 하는 진퇴양난에 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