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세력
[Make Money] 증시의 '사이코패스'
요즘 사이코패스를 다루는 영화가 부쩍 늘었다.

겉은 멀쩡하면서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자인 사이코패스가 관객을 끌 수 있는 소재로 자리잡은 것이다.

얼마 전 사이코패스에 관한 영화를 보다가 뜬금없이 주식시장 범죄가 화면에 겹쳐졌다.

무엇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섬뜩한 범죄를 저지르는 대담함이 눈에 들어왔다.

피해자는 대부분 넋 놓고 있다가 끔찍하게 당한다.

시장 작전 세력에 어처구니 없이 투자금을 날려버린 개미 투자자들과 영화의 피해자가 오버랩된다.

시세조정으로 대박을 터뜨린 세력은 개미들의 눈물을 보면서도 사이코패스마냥 즐거워할 것이 틀림없다.

영화 속 인물들이 막판까지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인지하지 못하듯, 우리나라 주식 투자자들도 작전 세력과 그 수법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 작전의 고전 '소문'에 혹하는 개미들

"코스닥 A종목에 작전 세력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주가를 최소 10배는 올린다니까 미리 좀 사놔."

주식시장에서 너무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소문이다.

흔히 작전이란 주식 시세조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종하는 행위를 시세조종이라고 한다.

안타까운 점은 이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해당 주식을 사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박주 환상에 젖어 일말의 가능성에 올인한다.

결과는 대부분 처절하다.

가령 소문이 사실이더라도 개미들이 이익을 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난해 대표적인 작전주로 꼽히는 루보와 UC아이콜스도 반 년 만에 주가가 각각 50배, 10배 급등했다.

이 종목들도 당시 비슷한 소문이 파다했는데 만약 초기에 주식 매수에 나섰다면 말 그대로 대박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지나고 나서나 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대부분 '악!' 소리 나는 것이 현실이다.

루보는 작전 사실이 적발되면서 11일 연속 하한가를 포함해 한 달 만에, UC아이콜스도 소리 소문도 없이 17거래일 만에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보유 주식을 팔려고 해도 팔 수 없을 만큼 줄기차게 기세 하한가(거래 없이 주가만 하락)를 기록해 '깡통계좌'(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샀는데 주가가 급락해 보유 주식을 다 처분해도 빌린 돈을 못 갚아 잔액이 마이너스가 된 계좌)만 속출했다.

작전 세력이 소문을 내는 것은 간단한 이치다.

자신들의 물량을 팔고 나올 때 그것을 받아줄 개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문 유포는 작전 성공을 위한 고전적인 전략이다.

이 같은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구체적인 수법은 점점 치밀해지는 것이 최근 추세다.

⊙ 사기도박단 같은 작전 패턴

주식시장 작전은 사기도박단과 비슷하다.

주식시장에도 기술자가 있고 '바지 사장'(실제 소유주는 따로 있고 명의만 사장인 사람)이 있고 설계자가 있고 전주(錢主)가 있다.

설계자가 껍데기인 상장회사를 골라 테마(유망 사업 진출,외자 유치 등 주가가 상승할 만한 재료)를 붙이면 바지 사장이 각종 금융기법과 신사업으로 포장하고, 기술자가 시세를 조정한다.

주가가 급등하지 않아 고금리의 전주 돈을 갚기 힘들어지면 결국 횡령이 나타나는 것이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주식시장 범죄의 패턴이다.

대규모 횡령 혐의가 발생한 기업을 역추적하면 이해가 쉽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fss.or.kr)에서 상세 검색을 통해 그동안의 공시 목록을 살펴보고 당시 주가 추이와 비교해 보자.

대부분이 어느 순간 주가가 별 이유도 없이 급등했다가 급락한다.

이 과정에서 당시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테마에 편승하려는 노력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적은 온통 적자임에도 장밋빛 전망을 서슴없이 해댄다.

그럼에도 거래량은 엄청나게 늘어나다.대박 환상에 벗어나지 못한 투자자들이 꼬였다는 증거다.

횡령이란 공금이나 남의 재물을 불법으로 가져가는 일로 주식시장 최악의 범죄다.

대주주가 회사 금고를 자신의 '호주머니'로 여긴다는 것이다.

상장사의 주요 자금조달 수단인 유상증자나 사채 발행으로 끌어온 자금이 술술 새니 회사는 망가질 수밖에 없다.

회계상으로 숨기고 숨기다가 결국 횡령 공시를 낸다.

올해 들어 주식시장에 횡령 사건이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난 데다 불공정거래 혐의로 구속되는 대주주들이 잇따르고 있다.

과거 주식시장 범죄의 후유증은 한참 후에 드러난다.

⊙ 작전 의심종목은 피해가는 게 상책

주식시장 범죄에 따른 피해는 주주들이 뒤집어쓴다.

주가는 급락을 거듭하고 최악의 경우엔 퇴출된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보상받을 길은 요원하다.

금융감독원과 검찰, 경찰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이런 작전 세력들을 적발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잡힌다고 해도 경제사범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속 사이코패스와 달리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한두 명이 아닌 불특정다수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중범죄가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다.

결국 주식시장에서는 투자자 스스로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런 문제의 기업에 투자한 개미들도 책임이 크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석 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장은 "기업의 실적과 주가 변동성을 유심히 보면 초보 투자자들도 불공정행위를 의심할 수 있는 기업을 추려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횡령이나 시세조정 같은 범죄가 직접 보이진 않더라도 유사한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유상증자나 사채발행 등 자금조달이 잦은 기업 △금융감독원의 정정 명령을 자주 받는 기업 △주가가 이유 없이 급등락하는 기업 △대주주나 대표이사가 자주 바뀌는 기업 △테마성 공시나 보도가 자주 나오는 기업 △감자(자본금 줄임)가 잦은 기업 등에는 투자를 자제하라고 조언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돈을 벌기 위한 첫째 원칙은 절대 돈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 원칙은 첫째 원칙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 바로 투자 성공의 첫째 조건인 셈이다.

조진형 한국경제신문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