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숭례문아~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숭례문 화재 당시 참여정부가 강조해온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았다.

문화재 보존을 강조해 온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은 진화 방식을 놓고 티격태격했다.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은 보고만 받았을 뿐 통합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숭례문 보존에 책임이 있는 서울시 중구청장 소방방재청장 문화재청장 문화관광부 장관 중 어느 누구도 현장을 지휘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이 문화재 화재시 적용할 매뉴얼이 없었다는 점이다.

강원도 낙산사 화재 이후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으나 1년이 넘게 감감무소식이었고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양측이 우왕좌왕했다.

내부 화재 진화를 위해 지붕이나 측면을 뚫고 들어 갔어야 했지만 양측은 문화재 보존에만 매달렸고 이로 인해 숭례문 전체를 태우는 우를 범했다.

위기관리시스템 부재에 따른 소탐대실의 전형이었다.

목격자 신고에 경찰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방화범을 체포할 수도 있었다.

목격자 이모씨에 따르면 경찰에 신고했으나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고 그 사이 방화범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남산 쪽으로 도주했다는 것이다.

관할 구청의 관리 실태가 당장 도마위에 올랐다.

숭례문은 문화재보호법상 관할 기초자치단체인 서울 중구청이 관리단체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중구청 공원녹지과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를 현장 근무시간으로 정하고 그 외의 시간은 무인경비업체에 보안업무를 맡겨 놓은 채 아예 숭례문을 비워 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가 난 휴일의 경우 현장 근무자가 1명에 불과했고 평일에도 근무자가 3명이며 그나마 오후 6시 이후에는 1명만 남아서 근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어제 화재가 휴일 저녁 8시 이후에 발생해 당시 근무자는 한 명도 없었다.

어제 근무자는 규정대로 저녁 8시까지만 근무한 뒤 돌아갔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1999년 개방 이후 누구나 쉽게 숭례문에 접근할 수 있게 됐는데도 출동에 시간이 걸리는 무인경비시스템에만 의존했다는 점이 사고 예방과 대처 능력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다.

⊙ 숭례문 소실은 총체적 부실의 결과

이번 사건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무책임한 적당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단순한 문화재 화재 사건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부실문화를 처절하게 고발하는 사건이다.

특히 문화재관리청이 존재하는 이유는 문화재 관리와 관련해 일반인 이상의 주의와 전문적 능력, 윤리를 가지고 이런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재 관리는 소방서의 일반화재 소화 내규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직무유기에 가까운 태만과 무지, 무능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줬다.

이번 사건으로 국가재난관리시스템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재난 전담부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보 제1호 숭례문 화재사고 당시 재난 총괄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르면 이번 국보 제1호 숭례문 화재사고는 재난사태 선포대상은 아니더라도 중앙안전관리위원회와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가 가동돼 복구까지 총괄해야 할 사안이다.

기본법은 태풍 홍수뿐 아니라 화재 교통사고 환경오염사고 에너지 통신 금융 의료 전염병확산 등 인적·사회적 재난의 경우에도 총괄기능을 가진 위원회와 대책본부를 구성토록 하고 있다.

위원회와 대책본부를 가동하는 이유는 재난사고의 발생부터 복구까지 재난상황을 총괄·조정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천이나 숭례문 화재사고와 같은 인적재난의 경우 자연재난과 달리 재난사태 선포, 대책본부 가동 여부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인적재난과 사회적 재난의 총괄기능은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셈이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인적재난과 사회적 재난은 자연재난과 같이 재난선포 기준을 만들기 어렵다"면서 "이천 화재사고나 숭례문 화재사고의 경우 부서 상황판단 회의에서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사고라고 판단하지 않아 대책본부를 가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관련법 정비 시급

국보 1호인 숭례문 전소 사건은 정부와 정치권의 문화재 인식이 얼마나 미약한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문화재 보호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기약도 없이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법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2005년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발의한 '문화재보호 기금법' 제정안으로 5000억원의 기금을 설치해 재해나 노후화 등으로 인한 긴급보수나 관리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기획예산처가 예산 배정에 난색을 표해 아직까지 문광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법안 처리에 무신경한 국회나 예산 타령만 하는 당국이 문화재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화재 관련법이 재난을 대비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다.

문화재는 특성상 함부로 신개축을 못한다.

간단한 전기시설조차 설치한 지 수년이 지나 심각한 위험이 있어도 손을 댈 수가 없다.

문화재 전기관련법은 자체 점검이 고작이며 별도의 기준조차 없다.

목조건물이 대다수인 우리 문화재의 경우 누전으로 인한 화재의 위험성이 높다.

그런데도 까다로운 법 때문에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와서야 되겠는가.

정부와 정치권은 당장 문화재 관련법을 재정비해야 한다.

허술한 방재대책은 대폭 강화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까다로워 재난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와 별도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문화재 관련 법안들부터 신속히 처리하는 게 급선무다.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는 데 정부와 정치권이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성선화 한국경제신문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