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에게 말보다 소중한 단 한번의 포옹
[생글기자 코너] 생글기자 병원 '프리허그' 체험기
지난 1월28일 아침 일찍, 각지에서 모인 생글기자 6명은 차가운 아침바람을 맞으며 프리허그(free hug)를 체험해보기 위해 서울 도곡동에 위치한 영동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과연 우리가 환자와 가족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사랑을 나눠드릴 수 있을까?

괜히 시끄럽게 방해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무턱대고 시작한 프리허그였는데, 이날 아침 수은주는 영하 12도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한겨울 맹추위도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했다.

가진 것은 36.5도의 체온뿐이었지만, 그것은 따뜻한 사랑을 전하기에 충분한 온기였다.

육신과 마음의 상처로 힘겨워 하는 분들로 가득 찬 병원이었기에 들어설 때는 더욱 조심스럽고 긴장되었지만, 나올 때는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생글이 6명의 남다른 겨울 추위 극복기를 소개한다.

⊙ 긴장 반,기대 반

▶김새롬(춘천여고 2학년)=우리 생글기자 프리허그팀이 다시 모였네요!

자, 우리 행적을 한번 되짚어 볼까요?

▶이지수(서문여고 3학년)=처음에 적정진료관리실의 박성필 CS혁신 과장님을 찾아가야 했는데 이때부터 순탄치는 않았던 것 같아.^^

선이가 '적정진료관리실'을 '적성근로관리실'이라고 기억한 바람에….(ㅎㅎ)

다행히 금방 찾았고 박 과장님도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지.

▶조선(서문여고 3학년)=그래.(웃음)

그건 어처구니 없는 내 실수였어.

박 과장님은 먼저 프레젠테이션 자료로 프리허그의 유래와 의미 등 개괄적인 내용을 일러주셨어.

▶유동석(대일외고 1학년)=실제 프리허그할 때 유용한 팁도 몇 가지 알려주셨죠.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 같은 것 말이죠.

이어 곧장 실전에 들어갔는데 거절하는 분도 많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처음엔 굉장히 긴장되더라고요.

▶박찬현(경북고 3학년)=그래도 우린 파란 조끼차림에 "안아드립니다"란 팻말을 들고 대기실과 치료실을 드나들며 환자와 가족들께 달려가 멘트를 날렸지.

"저희가 행복하고 건강하시라고 안아드리고 있는데, 제가 한번 안아드려도 될까요?"

⊙ Q1.처음 시작할 때 느낌은?

특히 병원이란 장소가 주는 낯설음은?

▶이지수=처음엔 정말 어려웠어.

보통 길거리 프리허그는 사람들이 와서 안기는 데 반해 여기에선 환자와 가족들의 사정을 감안해 우리가 다가가야 했잖아.

함께 계셨던 박 과장님의 시범을 보고서야 용기가 조금 나더라고.

▶박상재(김천고 2학년)=맞아요.

다짜고짜 낯선 이에게 "안아드릴게요~. 건강하세요"하고 말을 건네는 게 너무 어색했고, "당신 뭐야" 하는 반응에 주눅이 들기도 했죠.

그러다가 몇 분이 웃으며 반겨주시니 나중엔 도리어 제가 흥이 나더라고요.

▶조선=솔직히, 난 처음엔 무조건 잘 해야겠다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미소를 짓고 다가갔는데, 나중엔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거울에서 얼핏 봤어.

"이게 바로 사랑의 힘이구나"라고 느꼈지.

▶김새롬=저는 조금 무섭기도 했어요.

소아병동에 어떤 아주머니가 고개를 푹 숙이고 힘없이 앉아계시는 거예요.

곁에 가서 "안아드려도 될까요?" 했더니, "됐어요. 그냥 가세요. 가 주세요" 하시더라고요.

혼자 감내하기 힘드신가 보다 생각했지만, 내가 가진 건 체온뿐이고 아무 것도 해드릴 게 없어 안타까웠어요.

▶유동석=안아주는 것이 예상했던 것이랑, 실제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그래도 몇 번 하니까 자신감이 생겨 어색하지 않게 포옹할 수 있었죠.

⊙ Q2.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이지수=어떤 분은 포옹이 끝나고도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으시려는 거야.

맞잡은 그분의 거친 손에서 그만큼 애정이 필요하셨다는 걸 느꼈어.

나도 손을 놓기가 너무 아쉬운 거 있지.

▶박상재=모자(母子) 환자분이 계셨는데, 어머님과 아드님을 차례로 안아드렸더니 두 분끼리도 서로 "사랑해~" 하며 꼭 안으시더라고요.

내가 나눈 사랑이 다른 이들에게 퍼지는 것 같아 뿌듯했죠.

▶조선=강직해 보이는 어르신이 내 포옹을 받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실 때 마음이 짠~했어.

너희도 그 미소를 봤어야 하는데.

내가 진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들더라고.

▶김새롬=할머니 한 분을 안아드렸더니 "천사 같애!" 하시며 마냥 좋아하셨어요.

아마 평생 가도 그런 찬사를 듣기 힘들 것 같아요.

▶유동석=저는 유모차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딸을 가진 어머니를 안아 드렸을 때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눈물이 맺힌 그분이 "정말 감사합니다" 하실 때는 저도 울컥했어요.

정말 고마워하는 마음이 제게도 전해졌어요.

어떤 할아버지께서 포옹 후에 "우리 손자 같아! 허허…" 하신 것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 Q3.재미 있었던 에피소드는?

▶조선=이건 찬현이가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ㅎㅎ)

▶박찬현=난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를 안아드렸더니 용돈을 주시겠다고 봉투를 꺼내셔서 무척 당황했어.

안아주신 것만도 너무 감사한데 안 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황급히 자리를 옮겼지.

▶박상재=저는 소아과에서 겪은 일이 생각나요.

치료를 기다리던 아이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안아주니까, 낯설어선지 겁을 먹고 울먹이다 엄마를 찾더라고요.

그래도 진심을 전하려고 애쓰니까 아이가 나중엔 웃으며 '형, 나도 안아줄게요' 하더군요.

▶김새롬=우리를 노조원으로 오해하신 분도 계셨잖아요.(ㅋㅋ)

여섯 명이 같은 색깔 조끼를 입고 피켓을 들고 병원 여기저기를 누비니까….

우리가 '액면가'로는 나이가 들어보인다는 걸 깨달았죠.^^

⊙ Q4.자신만의 프리허그 요령이 있다면?

▶김새롬=맨땅에 헤딩이죠.

처음에 "안아드릴까요" 하면 경계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그래도 막상 안아드리면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부끄럽더라도 자신있게 다가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지켜보던 분들께도 함께 포옹을 권하면서.

▶박찬현=맞아! 말 그대로 프리(free)하게 다가가면 되는 것 같아.

남들 눈치 신경쓰면서 격식·체면 차리면 그건 이미 프리허그가 아니야.

내가 먼저 웃으며 "행복하시라고 안아드리는데, 한번 안아 주시겠어요?"하고 다가가면 거절하는 분은 거의 없었거든.

▶박상재=저는 처음에 낯선 사람과의 포옹이 너무 어색했고 거부하는 분들도 꽤 계셨기 때문에 점점 위축됐죠.

하지만 내가 용기를 냄으로써 모두가 행복하게 웃을 수 있고, 타인과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프리허그의 장점을 마음 속으로 계속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상냥한 말투와 웃음이 중요해요.

제가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처음엔 당황하던 분들도 계셔서, 나름 상냥한 서울말(?)을 구사하려고 노력했죠.ㅋㅋ

▶유동석=그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행복하시라고 한번 안아드려도 될까요?"라고 말하고, 만약 거절한다면 그냥 나오지 말고 "포옹의 효과가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되진 않았지만, 건강에 좋데요!

그러니 한번 안아드려도 될까요?"라고 다시 한번 말했어요.

그러면 이미 거절했던 분도 포옹을 해주시더라고요.

▶이지수=일단 앞에 가서 웃으면서 눈을 맞췄어.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방어가 풀리는 것 같더라.

그 후에 안아드린다고 얘기하고 내가 먼저 팔을 벌리고 있으면 그쪽에서도 팔을 벌렸어.

상대가 거부감을 갖지 않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

▶조선=포옹을 한 이후에도 끝까지 신경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아무리 웃음을 머금고 진하게 포옹했어도 휑하니 가버리고 아는 척도 안 하면 형식적인 게 되잖아.

얘기도 나누고, 헤어진 뒤에 우연히 다시 마주칠 때 반갑게 인사드린다면 더 따뜻한 프리허그가 될 것 같아.

⊙ 마치며

"나는 운좋은 사람이었다.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삶을 기르는 불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느끼는 건 한결 더 대단하고 더욱 더 아름다운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존재의 범위를 넓히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묶기 때문이다."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느꼈고, 그것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 우리의 삶을 기르는 불이었으며,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덥혀준 '36.5도'의 강하지 않지만 강렬한 불이었다.

프리허그를 마치고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우리가 느낀 갑작스런 충동은, 이런 것이었다."저 사람도 왠지 안아주어야 할 것 같아!"

정리=김새롬 생글기자(춘천여고 2년) a_bomb91@naver.com


◆프리허그란?

제이슨 헌터(Jason G. Hunter)가 2001년에 최초로 시작했다.

불특정 다수와 아무 조건 없이(free) 포옹(hug)을 하며 정을 느끼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운동이다.

우리나라엔 2006년 들어와 명동, 인사동 일대에서 큰 열풍이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