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영어로 수업할 교사없어…현실 무시한 정책"

새정부 "외국인에게 입 벙긋도 못하는 교육 개혁 해야"

새 정부의 영어 공교육 혁신방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영어 공교육 완성을 위한 실천방안' 공청회를 열고 영어교육 개혁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한국교총과 전교조는 새 정부의 방안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며 공청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현실을 무시한 정책으로 사교육 조장 등 혼란을 부추기고 학교 교육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며 '속도조절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새 정부의 영어교육 개혁 드라이브에 걱정과 불안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셈이다.

10년 이상 영어를 배워도 입도 벙긋 못하는 현행 교육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 대해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문제는 학교 교육만으로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회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특히 앞으로 5년간 무려 4조원을 투입해 2만3000명의 영어전용교사(TEE)를 채용하는 등 밀어붙이기식 개혁이 과연 능사인지 살펴보자.

⊙ 교육계,"현실무시한 정책 졸속 추진은 혼란만 부추길 뿐"

교육계에서는 "영어수업이든 몰입교육이든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어떻게 실시할 수 있느냐"고 반발한다.

2012년쯤 중·고교의 모든 회화중심 수업을 영어로 실시함으로써 고교만 졸업해도 영어로 대화하고 쓰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하지만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교사를 곧바로 대거 충원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주당 1시간 이상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교사는 절반에 불과하며 그나마 대부분 시늉만 내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 임용 시험과는 별도로 신규 영어교사 자격증제도가 도입될 경우 교단 내부의 갈등을 유발하고 교사의 위상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영어를 한국어로 가르치는 게 잘못됐다는 시각은 발상부터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다.

따라서 교육의 본질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고,현실에 맞는 교육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새 정부,"국가경쟁력제고와 사교육방지 위해 개혁 불가피"

이에 대해 새 정부 측은 "영어교육을 개혁해야 국가경쟁력이 높아진다"며 막대한 투자를 해서라도 영어교육을 확 뜯어고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지금처럼 10년 넘게 영어를 배워도 외국인 앞에서 입도 벙긋 못한다는 건 돈과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영어가 세계 공용어인 시대에 우리 학생들도 영어구사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공교육 체제를 구축하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프랑스와 중국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실시하는 등 개혁에 적극 나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어시험을 폐지하는 대신 실용영어가 강화된 영어능력평가시험을 도입함으로써 학생들이 영어 사교육에 매달리는 일을 없애겠다는 의지다.

일부에서는 "조기 영어교육을 실시 중인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국민이 주체성이나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며 영어교육 강화에 따른 부작용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교육계가 '준비 부족'을 이유로 새 정부의 영어교육 개혁방안에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얘기다.

⊙ 교원 확보 등 교육인프라부터 갖추는 게 성공의 관건

우리의 영어교육이 개혁돼야 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당위성이 인정된다고 무조건 밀어붙여서는 곤란하다.

개혁에 필요한 여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시행하면 부작용만 키울 뿐이다.

물론 새 정부도 2013년까지 영어전용교사 2만3000명을 채용하는 등 실천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영어로 한 시간 이상 수업할 수 있는 영어교사가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2012학년도부터 중·고교의 모든 회화중심 수업을 영어로 실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공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또 다시 학원으로 몰리게 되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새 정부는 영어교육 개혁과 관련한 청사진을 마련한 뒤 교육계 등과 협의하는 게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교원 확보 등 교육인프라부터 제대로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교사 역량을 끌어올리고 영어수업이 가능한 교사를 발굴하는 게 급선무다.

성과에 급급해 섣불리 추진하다 오히려 영어교육을 그르쳐서는 안될 일이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영어 공교육개혁 논란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 풀이>

◆영어몰입교육(Immersion education)=영어이외의 과목도 영어로 수업하는 것을 말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영어 사교육비를 절감하고 조기유학 등으로 야기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비판여론이 일자 철회했다.

'영어를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수단으로 활용해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힐 수 있다'는 주장과 '사교육부담이 늘고 국어실력은 저하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 맞서있다.

◆기러기 아빠=교육이민이나 조기유학 등으로 인해 아이와 어머니만 외국으로 나가고 아버지가 한국에서 홀로 남아 돈을 벌어보내면서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짝을 잃을 경우 홀로 새끼를 키워내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기러기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묵묵히 가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펭귄 아빠=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아 공항에 홀로 남아 외국으로 떠나는 가족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날고 싶어도 날지못하는 펭귄의 처지에 빗댄 것.

◆영어전용교사(Teaching English in English)=영어로 영어수업을 하는 교사.

정부는 테솔 등 영어 교육과정을 이수한 영어권 석사학위 이상 취득자 등을 대상으로 자격증을 부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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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 1월30일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2013년까지 영어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초.중.고 교사2만3000명을 신규 채용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29일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영어 공교육 완성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을 놓고 30일 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이경숙 위원장, 이주호 사회교육문화분과위 간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청회를 연다.

인수위는 영어전용교사 자격제도(TEE.Teaching English in English)를 도입, 이자격을 획득한 교사를 계약직 교육공무원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영어전용교사는 △테솔(TESOL) 등 국내외 영어교육과정 이수자 △영어권 국가에서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자나 교사자격증을 소지한 자 △전직 외교관과 상사주재원 등 전문직을 대상으로 심층 구술면접을 실시해 선발할 예정이다.

이들은 5~10년마다 자격시험을 다시 치러야 영어전용교사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

이들이 일선 학교에 배치되는 시점은 2010년부터다.

인수위는 제도 도입 첫해인 2010년에는 초등학교에 3500명,중학교에 2000명, 고등학교에 1000명을 각각 배치키로 했다.

이와 함께 인수위는 학생들이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영어수업 시간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초등학교 3~4학년의 경우 매주 1시간인 영어수업시간을 2010년부터 3시간으로, 5~6학년도 매주 2시간인 영어수업을 2011년부터 3시간으로 각각 늘린다.

초등학교의 영어 수업은 영어전용교사가 맡는다.

송형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