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Money] 미국증시가 기침하면, 한국 증시는 독감
커플링이 뭐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경제신문의 야간 당직 기자들에게 심심찮게 걸려오는 전화가 있었다.

그날 미국의 주가지수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문의하는 주식 투자자들의 전화였다.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대폭 줄었지만 예전부터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증권가의 오랜 속설 중에 '미국 증시가 기침만 해도 한국 증시는 감기에 걸린다'는 말 역시 밤 사이 미국 증시의 등락에 다음날 한국 주식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해 온데 따른 것이다.

지난 2005년 미국의 대표적인 주가지수인 다우지수가 옆걸음치는 동안 한국 코스피지수가 크게 오르고 다우지수가 크게 하락하더라도 다음날 한국 증시는 상승세로 이어지는 사례가 이어지곤 했다.

이 때문에 주식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증시의 체질이 탄탄해지면서 이제 더 이상 미국 증시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됐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 경기침체에 따른 미국 증시 급락이 국내 증시의 약세로 이어지면서 한·미 주식시장의 연결고리는 여전히 단단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오히려 최근 글로벌 증시 동조화 현상은 심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과 미국 증시의 해묵은 연결고리이면서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커플링(coupling)과 디커플링(decoupling)에 대해 알아보자.

⊙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감기

[Make Money] 미국증시가 기침하면, 한국 증시는 독감
최근 미국 증시가 약세를 보이자 전 세계 증시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이머징마켓)의 하락폭은 미국보다 훨씬 컸다.

올 들어 1월29일까지 한 달여 동안 다우지수는 6.64% 하락하는 데 그친 반면 코스피지수는 14.23%나 하락했다.

두 배 이상 떨어진 것이다.

특히 미국이 유난히 크게 떨어진 다음날 한국 증시는 이를 능가하는 추락세를 보였다.

지난 1월28일이 대표적이다.

미국이 금요일인 25일 1.38% 하락하자 한국은 그다음 주 월요일인 28일 3.85%나 떨어졌다.

이날 중국 상하이증시는 무려 7.19%나 급락했다.

이처럼 해외 증시와 똑같이 국내 증시가 움직인다는 것을 일컬어 '동조화(커플링)'라고 한다.

동조화는 개개의 주식시장이 별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 들어 증시 동조화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최근 국내외 신문에서 '글로벌 증시 동반폭락'이라는 제목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동조화 왜 생길까

[Make Money] 미국증시가 기침하면, 한국 증시는 독감
세계 증시가 동조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최근 들어 미국에서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되면서 촉발된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감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기침체 우려는 한국 같은 신흥시장 증시에 세 가지 측면에서 그늘을 드리운다.

첫째는 기업의 경영실적 부진 가능성이다.

국내 총생산 대비 수출 의존도가 50%가 넘는 신흥시장 특성상 미국과 유럽의 경기 침체는 신흥시장 수출 기업의 실적 부진을 야기하고,이는 나라 전체의 경기 둔화로 이어진다.

당연히 주가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주식시장의 수급에 어려움을 가져다 준다는 점이다.

글로벌 증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 그동안 공격적으로 신흥시장 주식에 투자했던 외국인들이 이들 주식을 팔고 달러,유로,금 등 안전자산 투자를 늘리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 때문에 신흥시장의 하락폭은 더욱 커지게 된다.

세계 각국이 자본시장을 개방한 후 증시 동조화가 심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이런 글로벌 투자자들의 움직임 때문이다.

셋째는 심리적 요인이다.

시장 규모가 작을수록,그리고 장기 투자보다 단기 투자가 많을수록 동조화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합리적인 투자문화가 자리 잡고 국내 기업들이 해외 경제 상황에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체질이 개선될 경우 동조화 현상은 줄어들 수 있다.

한국 증시의 체질이 강화돼 심리적 요인에 따른 주식 투매 현상은 줄어들었지만, 글로벌 증시에 암운이 드리워지면서 투자자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것도 사실이다.

⊙ 이슈화되는 커플링 논란

커플링과 디커플링은 좁게는 국가 간 주가지수의 변동추세를 나타낼 때 쓰이지만 금리나 환율,나아가 국가 경제 전체 관점에서도 자주 거론된다.

지난달 27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막을 내린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에서도 커플링과 디커플링이 주요 이슈로 다뤄졌다.

미국에서 촉발된 경기침체에 대해 중국 등 신흥국가들이 완충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많은 참석자들이 여전히 미국과 글로벌 경기는 '커플링'될 수밖에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뉴욕 소재 루비니글로벌경제의 누리엘 루비니 회장은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나머지 세계는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다"며 "이번 미국의 경기침체는 폐렴에 해당되는 정도"라고 우려했다.

모건스탠리의 스티븐 로치 아시아 부문 회장은 "미국 소비자들의 지난해 소비액은 9조5000억달러로 중국 소비자들의 소비액을 합친 것에 6배에 달한다"며 여전히 신흥시장은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강조했다.

카말 나스 인도 상무장관은 "어떤 나라도 미국 경제에서 디커플링될 수 없다"며 "문제는 충격의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셰브론그룹 회장 겸 CEO인 데이비드 오렐리는 "미국 경제가 둔화 또는 가벼운 침체까지 간다 하더라도 중장기적인 세계 경기 전망에 대해서는 낙관적으로 본다"고 전했다.

중국 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의 위용딩 소장은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면 우리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하지만 중국은 어떤 침체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봉 한국경제신문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