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프랑스 31세 은행원이 일으킨 사상 최대 금융사고

선물거래 과도한 투자

소시에테은행에 6조8000억 손실 끼쳐

31세 은행원이 6조8000억원 규모의 천문학적인 손실을 일으킨 사상 최대 금융 사고가 터졌다.

프랑스 은행 소시에테제네랄(SG)에서 트레이더로 일하는 제롬 케르비엘이 이번 사고의 장본인이다.

2000년 SG에 입사한 케르비엘은 회사 규정을 어기고 고위험 선물 거래에 과도한 투자를 하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BNP파리바에 이어 프랑스 제2은행인 SG를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몰아넣었다.

이번 사건은 일명 '돈을 받고 고용된 총잡이'라고 불리는 파생상품 트레이더들의 총구가 언제든 회사를 겨눌 수 있다는 위험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 31세 주니어 뱅커,사상 최대 금융사고

케르비엘은 지난해 초 주가지수가 오른다는 쪽에 베팅했다.

전년 탁월한 실적을 내며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자만심이 거침 없는 베팅을 부추겼다.

한동안 시장은 그의 예상대로 움직이는 듯했다.

수억원대의 보너스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지수는 힘없이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손실을 일거에 만회하기 위해 시장에 맞섰다.

계속 베팅액을 2~3배씩 늘려 나갔지만 '서브프라임 쓰나미'의 재물이 됐다.

결국 내부 규정을 위반한 고위험 선물 투자로 SG에 무려 49억유로(72억달러·6조8000억원)의 손실을 입혔다.

케르비엘은 프랑스 리옹Ⅱ대학에서 경제학(금융시장)을 전공한 석사학위 소지자로 1년에 14만8000달러 정도의 고액 연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계약을 지원하고 점검하는 백 오피스(지원 부서)에서 일하다 2005년부터 거래 창구(프런트 오피스)로 자리를 옮겨 유럽 주가지수 선물 거래를 맡았다.

이번 사건은 케르비엘 개인의 강한 에고(ego)와 투자은행의 실적 제일주의 문화, 그리고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트레이더들의 환상이 결합된 합작품이란 평가다.

⊙ 왜 저질렀나…범행 동기 궁금증 증폭

케르비엘은 지난 19일 경찰에 체포돼 이틀간 조사받은 뒤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는 앞으로 배임, 문서 위조, 컴퓨터 해킹 등의 혐의로 재판받게 된다.

유죄가 인정되면 징역 7년형에 75만유로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파리 지방검찰청의 장 클로드 마랭 검사는 "케르비엘은 선물 시장에서 무모한 거래를 은닉하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면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마랭 검사는 "케르비엘은 특출한 중개인으로 인정받고 싶어했던 것 같다"며 "그는 30만유로의 거액 보너스를 받을 기대에 끌렸을 뿐 횡령하려고 불법 거래를 한 게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검찰 측 설명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규모의 금융 사고를 31세짜리 은행원 한 사람이 저질렀다고 믿기 어렵다는 게 금융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케르비엘이 SG의 한 해 수익(2006년 52억유로)에 맞먹는 막대한 손실을 회사 모르게 숨겨 왔다는 것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것.

이 때문에 케르비엘이 희생양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 케르비엘이 단독으로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되고 있다며 일부 금융 전문가들은 케르비엘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으로 유발된 은행의 다른 손실에 대한 희생양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케르비엘의 가족들도 케르비엘이 회사의 대규모 금융사고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했다.

⊙ M&A 위협받는 소시에테제네랄

이번 사고로 SG는 145년 역사상 최대 위기에 몰렸다.

SG 주가는 1년 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 쳤다.

그래서 SG가 분할 매각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직원 한 사람의 잘못으로 거대한 '공룡 은행'의 운명이 위험에 빠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SG가 네덜란드 ABN암로처럼 분할 매각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SG가 워낙 덩치가 크기 때문에 이를 전부 흡수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ABN암로가 지난해 매각되면서 미국 사업 부문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투자은행 부문은 로열뱅크 오브 스코틀랜드에 ,네덜란드 은행사업은 또 다른 은행들에 넘어갔다.

이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SG가 특히 외국 은행이나 자본에 넘어가지 않도록 방어할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재무장관은 비록 SG 주가가 떨어졌지만 인수·합병(M&A) 압력을 받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외국 은행이나 자본이 SG를 넘보지 말라는 견제로 해석됐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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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금융사고 어떤 게 있었나

소시에테제네랄(SG)의 금융 사고를 계기로 1995년 발생한 영국 베어링은행 파산을 비롯 세계 금융 시장에 파장을 몰고 온 역대 사기 사건에 다시 한번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베어링은행 파산 사건은 '닉 리슨' 사건으로도 불린다.

당시 베어링은행의 싱가포르 지점에서 수석 중개인으로 근무하던 리슨은 주가지수 선물에 투자하다 주가 하락으로 12억달러의 손실을 야기했다.

그는 1995년 1월 발생한 고베 대지진으로 일본 경제의 회복 속도가 지진 복구사업에 힘입어 빨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일본 닛케이지수 선물을 대거 사들였으나 주가는 속락했다.

이에 따라 베어링은행은 결국 파산했으며 네덜란드의 ING에 1달러에 합병되는 수모를 겪었다.

리슨은 파산 직전 이익을 실현했다고 허위 보고해 회사를 위기로 치닫게 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나중에 싱가포르 교도소에서 4년을 복역했다.

1995년엔 일본 다이와은행 사건도 터졌다.

이 은행 뉴욕지점 직원들이 미국 채권 등을 무단 거래하다 11억달러의 손실을 입힌 사건이다.

이 은행은 보고를 소홀히 한 혐의가 인정돼 미 검찰에 기소돼 3억4000만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당시 소액 주주들이 경영진을 상대로 투자 손실분 등 1000억엔대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으며 일본 법원은 7억75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이 사건으로 일본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국제 신뢰도는 크게 떨어졌다.

1996년엔 일본 스미토모상사의 직원이 회사 몰래 선물 거래로 투기하다가 무려 26억달러의 손실이 발생,금융 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이 회사의 비철금속·구리 담당 부장인 하마나카 야스오는 투자 손실을 만회하려고 투기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1994년 미국의 대표적 부촌인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의 재정 담당 로버트 시트론이 200억달러 규모의 채권 투자를 하다가 연방정부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17억달러의 손실을 내고 파산한 사건이 있었고,2002년 아일랜드 최대 은행인 얼라이드 아이리시 뱅크(AIB)는 미 볼티모어 자회사인 올퍼스트파이낸셜의 외환 딜러 존 러스낙의 불법 파생상품 거래로 7억5000만달러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