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Money] 증시를 흔드는 큰 손 '슈퍼개미'
개인투자가가 수백억의 거액자금 동원, 주가 흐름에 영향 미쳐


현대약품의 적대적 M&A(인수합병) 시도로 유명한 '슈퍼개미' 박모씨가 동아에스텍 주식을 새로 사들여 눈길을 끈다.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박씨는 동아에스텍 62만5000주(5.10%)를 신규 취득했다고 신고했다.

동아에스텍은 이날 지수 급락에도 불구하고 14.77% 오른 4080원으로 마감했다. (한국경제신문 1월22일자 증권면)

개인투자자들의 증시 참여가 확대되는 가운데 일명 '슈퍼개미'로 불리는 큰손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슈퍼개미'란 표현은 일반 투자자들을 흔히 '개미군단'이라고 부르는 데서 유래한 증권가 은어로,수억원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자금을 동원해 주식 투자에 나서 주가에 큰 영향을 주는 개인들을 말한다.

특히 위 기사와 같이 일부 슈퍼개미들 중에선 특정 상장회사의 지분을 5% 이상 확보해 M&A 재료를 퍼뜨리며 주가를 끌어올려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스타 대접을 받는 경우도 있다.

⊙ 슈퍼개미,대량 주식 매수 크게 늘어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2007년 1~7월 중 개인투자자가 한 기업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를 통해 밝힌 사례는 431건으로,전년 동기 128건에 비해 237% 급증했다.

증권거래법에선 한 상장사의 지분을 5% 이상 취득한 법인이나 개인의 경우 금융감독원과 증권선물거래소에 반드시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적대적 M&A 방어를 위해 1991년 도입된 제도다.

결국 한 회사의 지분을 5% 넘게 가진 개인들이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증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슈퍼개미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증권업계에선 이처럼 '공개된 슈퍼개미' 외에도 익명으로 활동하는 슈퍼개미들이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슈퍼개미들은 웬만해선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이름이 밝혀진 슈퍼개미라고 해도 함부로 자신이 관리하는 종목 포트폴리오를 노출시키지 않는다.

직업도 20대 회사원부터 전직 증권사 직원,중장년의 자영업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과거엔 주로 활동 지역의 이름을 따서 '압구정동 미꾸라지''일산 가물치''전주 슈퍼개미' 등 별명이 붙었다.

⊙ 슈퍼개미는 어떤 사람들인가

슈퍼개미들은 보통 주식 투자 경력이 수십 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이들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10개 안팎의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배당을 많이 하거나 숨겨진 자산은 많지만 주가는 저평가된 상장사를 선호한다.

승률을 높이기 위해 투자 기간을 될 수 있으면 길게 가져가려고 한다.

투자대상 기업 입장에선 슈퍼개미의 등장이 상당히 긴장되는 일이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주장하며 회사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대주주 지분과 맞먹는 주식을 사들이며 경영권을 위협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 슈퍼개미들이 건드린 종목들은 단기 급등 후 폭락할 때가 많아 개인투자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개인투자자들이 따라붙는 것을 보고 지분을 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에서 원조 슈퍼개미로 불리는 경모씨의 사례를 살펴보자.

경씨는 2004년 2월 서울식품의 주식 53만7580주(10.87%)를 경영 참여 목적으로 취득했다고 공시를 통해 밝혔다.

당시 서울식품은 자본잠식 상태로 수년간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경씨의 지분 매입 소식에 일반 투자자들은 서울식품 주식을 앞다퉈 추격매수했고,그에 따라 당초 4000원대에 머물던 서울식품 주가는 경씨가 손을 댄 지 석달 만에 무려 8만원대로 20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이 때문에 당시 증권가에선 경씨가 경영권을 인수하겠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속뜻은 단기 차익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경씨는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서울식품의 경영을 정상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던 경씨는 그해 5월부터 9월 말까지 0.99%의 지분만을 남겨두고 보유 주식을 모두 팔아치우며 64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시세차익을 거뒀다.

⊙ 주가조작 실형 선고받기도

주가조작 혐의가 포착돼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은 슈퍼개미도 있었다.

박모씨와 이모씨는 2004년 1~7월 적대적 M&A(인수합병)을 가장해 남한제지 주식을 사들여 주가를 띄운 뒤 팔아넘기는 수법으로 약 54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

법원은 이듬해 7월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박씨와 이씨를 구속 기소하고 각각 징역 2년과 벌금 18억원,징역 1년6월과 벌금 7억8000만원을 선고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박씨가 남한제지 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번 돈을 어려운 사람에게 빌려주겠다고 공시,이메일과 팩스 등으로 사연을 접수받아 3억6200만원을 송금해 증권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박씨는 재판 과정에서 "개인 주주들의 힘을 모아 궁극적으로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를 지녔던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익금 일부를 불우이웃을 위해 사용한 점은 참작되지만 주식시장의 수요 및 공급원리에 따른 가격 형성을 방해해 수많은 주식 투자자들에게 예측 못할 피해를 안겨줬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 정보비대칭이 서식 공간

이처럼 슈퍼개미의 폐해 사례가 속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투자자들은 여전히 '슈퍼개미 따라하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영곤 한화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에서 슈퍼개미가 위력을 발휘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른 개인들의 불안 심리"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개인투자자들은 기관이나 외국인들에 비해 주식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돼 있다.

그러다 보니 대규모 자금을 굴리는 슈퍼개미들이 활동하는 종목에 대해 '저 회사엔 뭔가 특별한 정보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맹목적으로 추격매수에 나서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처럼 슈퍼개미의 '눈에 보이는 횡포'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투자 행태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제재 수단은 없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경영 참여 등 여러 목적을 내세워 지분을 사들인 후 높은 주가에 팔아치우더라도 부당 거래가 확인되지 않았다면 이를 규제할 방법이 없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주식을 사들일 경우 일정 기간 주식을 매매할 수 없도록 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