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결혼제도의 파란만장한 역사
'탄생,짝짓기,결혼,출산….'

인류 역사에서 형식은 달랐어도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과정이다.

이 같은 연결고리의 한 축이 느슨해지고 있다.

바로 결혼이다.

젊은 세대에게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쯤으로 치부된다.

이혼율 상승은 범지구적 현상이다.

결혼 시장에선 남녀간의 애정보다 조건·금전·지위가 더 중요시되고,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비혼(非婚)족도 늘고 있다.

골드 미스와 싱글 맘에다 동성애 부부까지 등장했다.

결혼 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변화 양태들은 갈수록 형체가 또렷해진다.

전통적 결혼 제도는 존속할 것인가, 아니면 종말을 고할 것인가.일부일처제는 불변일까.

파란만장한 결혼 제도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자.

⊙ 결혼이란 법적·사회적 공인 행위

남녀가 부부 관계를 맺고 국가나 종교 기관 등에 의해 법적 사회적 공인을 받는 행위를 결혼 또는 혼인이라고 한다.

이는 단순히 남녀의 성적 결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법적·경제적·심리적 결합을 의미한다.

그래서 남녀간 미팅, 부킹, 짝짓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의례이다.

부부는 또한 성적으로 배타적 독점권을 갖고, 모은 재산에 대해서도 공동소유 원칙이 적용된다.

이를 통해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 단위인 가정을 형성하고 출산, 양육을 통해 종족 보존의 기능도 수행한다.

따라서 모든 사회가 형식은 달라도 혼인을 인정하고 장려하며 이에 대한 법적 규제나 장려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사회 유지와 존속을 위한 인류 보편의 생존 형태인 셈이다.

⊙ 군혼에서 일부일처까지

[Cover Story] 결혼제도의 파란만장한 역사
결혼의 형태는 역사 단계와 각 사회의 종교적·경제적·민족적 요소에 따라 차이가 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이스 헨리 모건은 '고대 사회'(1877)라는 저서를 통해 결혼 제도의 변천을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정리했다.

이 책에 따르면 원시 사회는 군혼(群婚)·집단혼의 사회였다.

가족, 결혼 같은 개념 이전에 본능이 지배하고 성 관계도 종족 보존이 최우선 목표였다는 것.

목축·원시농업 사회로 넘어가면서 대우혼(對偶婚)이 생겨났다.

대우혼이란 기본적으로 남녀 1 대 1 관계이지만, 그 주기가 짧아 남녀 모두 평생 기준으론 1 대 다의 관계가 된다.

이 시기는 남성이 수렵, 여성이 농업을 담당하는 모계 사회다.

그러나 요즘 인류학계에선 원시 시대에도 난혼이 아니라 남녀가 일정기간 배타적으로 쌍을 이루는 대우 관계였다는 학설이 우세하다.

고대 사회에 접어들면 농업의 발전과 잦은 전쟁으로 인해 남성이 사회 주도권을 잡는 부계 사회로 전환한다.

일부다처제가 형성되면서 부계 상속을 위해 남편은 아내의 정절을 요구했다.

중세로 넘어오면서 아내가 정절을 지키는 반대 급부로 남편에게 정처(正妻)로서의 지위를 요구하면서 일부일처제가 성립돼 보편적인 혼인 제도로 자리 잡게 됐다.

⊙ 결혼의 경제적 의미

오늘날 근친혼 금지, 일부일처제, 법적 결혼제도 등이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은 데는 경제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가장 먼저 생겨난 근친혼 금지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우생학이나 윤리 의식보다는 사회적·경제적 요인에서 원인을 찾는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는 혼인을 '인류가 생각해 낸 가장 위대한 교환제도'라고 평가했다.

우생학이나 윤리가 생기기 이전 시대에 이미 자신이 속한 부족의 딸들을 인근 부족들과 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커다란 교환 가치를 갖는 존재로 봤다는 것이다.

콧대 높은 중국 황제들이 주변 이민족 지도자에게 평화의 표시로 딸을 주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또한 일부일처제는 남성들 간의 담합이란 분석도 있다.

남성들의 생리 구조상 일부다처가 가장 적합하지만 이런 사회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약한 남성이 된다.

사자, 물개, 사슴 등 일부다처 동물사회에서 힘이 없어 밀려난 수컷의 처량한 신세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아울러 법적인 결혼 제도는 자기 자식(남편이든 아내든)에게 상속할 수 있는 근거라는 점에서 경제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 위태로운 결혼 제도

현대 사회에서 일부일처를 기반으로 한 결혼 제도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고 한다.

이미 핵가족화, 여성의 사회 진출, 출산 기피 등의 사회 변화 속에 생활수준 향상에 따른 여가와 쾌락 추구, 불륜 등으로 부부가 서로 정절을 유지한다는 신성한 혼인 서약이 무색해지는 양상이다.

연간 4만~5만쌍이 이혼하고 간통죄 폐지가 종종 논란이 된다.

더욱이 '알파 걸''골드 미스'로 요약되는 '능력 있는 여성'의 등장은 여성들의 결혼관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이 아직도 남성에게 '남는 장사'로 여겨지는 이상 굳이 결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슈가 된 동성 부부나,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와 한국의 방송인 허수경처럼 결혼은 안 해도 아이는 갖는 싱글 맘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래서 앞으로 실버 산업은 호황을 누려도 결혼 산업은 서서히 몰락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또한 현대 사회는 잦은 이혼과 재혼에 따라 일부일처에서 대우혼 형태로 옮아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 그래도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

이 같은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가 과거에 비해 뚜렷한 것이지 아직은 마이너리티에 불과하다.

사회 대다수 주류는 지금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

최근 들어 출산율이 다소 높아졌고, 이혼율은 낮아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여전히 결혼이 '미친 짓'은 아닌 셈이다.

결혼 제도의 유효성을 인정하고,출산·가정 등 사회를 유지하는 전통을 이어가려면 달라진 사회 트렌드를 개탄만 해선 곤란하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결혼에 따른 기회 비용을 줄여 줘 스스로 결혼하고 싶게끔 만들어 줘야 한다.

사실 결혼을 앞둔 남녀라면 당장 주택 마련 문제에서부터 출산·육아·보육 문제, 자녀들의 교육 문제 등 향후 20~30년간의 고생문이 눈에 훤한 게 요즘 현실이다.

이 같은 생애 시기별 경제적 부담들을 줄여 주는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혼 제도를 외면하는 사람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