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유가 100달러 돌파 의미가 뭘까
고유가로 세계경제는 새해 벽두부터 저성장과 고인플레이션을 동시에 수반하는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암운에 휩싸이는 모습이다.

데이비드 켈리 JP모건펀드 수석 전략가는 "유가 100달러는 인플레 우려보다 경기 후퇴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며 "세계경제가 불황 속의 고물가란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뿐만이 아니다.

치솟는 국제 유가는 세계의 세력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미국 중심의 패권 구도가 무너지면서 글로벌 세력지도가 변하고 있다.

우선 국제사회를 이끌던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고유가로 시험대에 올랐다.

부시 행정부는 이란의 핵개발 시도를 좌절시키기 위해 강력한 금융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이란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막대한 오일달러로 인해 큰 효과를 못 거둔다는 평가다.

반면 중동과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은 막대한 오일달러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는 나스닥과 런던증권거래소의 지분을 소유하며 세계의 큰손으로 급부상했다.

옛 소련 붕괴 이후 2류 국가로 전락한 것처럼 보였던 러시아는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막대한 자금력을 내세워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소치)를 따내는 등 미국을 견제하는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남미 석유 매장량의 70%를 차지하는 베네수엘라도 석유의 힘을 기반으로 중남미의 반미 바람을 이끄는 중이다.

⊙ 유가 어떻게 변해왔나

국제 유가는 1970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공식가격을 배럴당 1.8달러로 고정시킨 이후 몇 차례 변곡점을 거쳐 불과 40년도 안 돼 100달러를 찍었다.

특히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의 불씨가 되살아날 때면 원유는 어김없이 급등세를 보이며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악재로 작용했다.

원유가 몰고온 첫 재앙은 1973년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으로 촉발된 '1차 오일쇼크'였다.

당시 배럴당 3달러였던 유가는 10달러를 뚫고 12달러까지 단숨에 4배로 치솟았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이 불러온 '2차 오일쇼크'는 유가를 24달러로 두 배 올렸다.

이듬해 터진 이란·이라크 전쟁을 틈타 30달러를 깨고 39달러까지 내닫기도 했다.

이후 국제 유가는 다소 안정세를 찾아 한때 배럴당 17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다시 40달러 선을 돌파했다.

2003년 3월엔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중동의 평화가 깨지며 이듬해 9월 50달러 시대를 열었다.

국제 유가는 작년 한 해에만 50%나 오르며 세 자리 가격 시대를 예고한 데 이어 50달러를 돌파한 지 3년여 만인 2008년 새해 첫 시장에서 배럴당 100달러를 찍었다.

⊙ 유가 강세 전망이 우세

나이지리아와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불안 등 단기적 요인과 함께 근본적인 수급 문제를 고려해 유가 강세를 점치는 전문가들이 많다.

다나카 노부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중국과 인도의 고속 성장이 계속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나카 총장은 "중국과 인도의 석유 소비가 엄청나게 늘고 있다"며 "저유가 시대에서 갑자기 고유가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에너지분석기관인 케임브리지 에너지연구소(CERA)는 올해 연평균 유가가 배럴당 108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독일 에너지감시그룹(EWG)도 "세계 원유 생산이 이미 정점에 도달했으며 앞으로 매년 7%씩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비관적인 시나리오에 힘을 실었다.

반면 올해 평균 유가는 80달러대에 머물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 경제가 하강 국면에 진입하면서 석유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보이는 데다 달러 약세도 올 하반기께 해소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미국 에너지 조사업체인 유가정보서비스의 톰 클로자 수석 애널리스트는 "올 봄엔 유가가 급등할 전망이지만 유가 85달러와 115달러 중에 한 쪽을 걸라면 85달러에 걸겠다"고 말했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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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100달러 돌파는 한 개인의 명예욕 탓(?)

지난 2일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사상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에 거래된 석유의 양은 1000배럴이다.

국제시장에서 석유는 최소 1000배럴씩 사고판다.

최소 거래단위인 '1계약'이 1000배럴이란 뜻이다.

결국 이날 역사상 가장 비싼 값에 석유를 산 사람은 한 사람이다.

누굴까.

이튿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궁금증을 풀어줬다.

이 신문은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의 공포가 현실화된 것은 원유시장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는 한 개인 트레이더의 고의적인 계약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2월 인도분 가격이 1계약 때문에 100.00달러를 찍은 뒤 곧바로 99.40달러로 떨어졌다.

이 계약 직전의 거래가격은 배럴당 99.53달러.

누군가 0.47달러의 웃돈을 주고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 '비정상적인' 계약은 대규모 원유거래가 이뤄지는 전자매매 창구인 글로벡스(Globex)엔 표시조차 되지 않았다.

일부 시장참여자들이 '유가 100달러'의 정당성에 의문을 표시했지만 NYMEX 대변인은 "유효한 거래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전 NYMEX 장내 트레이더 출신인 스티븐 쇼크는 "배럴당 100달러에 1계약을 매입한 투자자는 600달러{(100달러-99.40달러)×1000배럴=600달러}를 잃은 대신 손자들에게 '내가 유가 100달러 시대를 연 장본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며 "아마도 그는 지금 거래기록을 대대로 보존하기 위해 액자에 끼워넣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