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21. 왜 상대평가를 하면 더 경쟁이 치열해질까?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수능시험 성적에 수험생의 점수를 그대로 반영할 때는 절대 평가였지만 올해부터 등급제로 매기면서 수능은 상대 평가로 바뀐 셈이다.

올해 수능 수리 '가'형에서 3점짜리 한 문제가 틀려 2등급으로 떨어진 수험생이 두 문제 틀린 학생과 동등하게 2등급이 됐다면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생들도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상대평가 시험이다.

수강생 중 상위 10%에게만 'A'학점을 줄 경우 아무리 열심히 해도 10% 안에 못 들면 'A'를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상대평가 시험은 학생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매정한 시험 제도인가.

상대 평가는 정말 평가받는 사람에게는 가혹하기만 한 제도인가.

오늘은 상대 평가와 절대 평가의 원리를 경제학적 사고로 풀어 보자.

⊙ 1980년대 상대평가의 기억

1980년대 전두환 정부는 각 대학이 입학 정원의 130%를 신입생으로 뽑게 하고 상대 평가를 실시해 이 가운데 30%를 졸업 때까지 탈락시키도록 하는 졸업정원제를 도입했다.

상대 평가로 학사 관리를 엄격히 하면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를 줄일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학생들이 졸업할 시점이 되자 흐지부지됐다.

학부모들이 멀쩡한 자식이 성적이 좀 나쁘다고(그것도 상대 평가로 학점을 제대로 못 따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졸업정원제는 대학생 숫자만 잔뜩 늘려놓아 1980년대 학생 운동은 절정에 이르렀고,이른바 386세대를 낳는 토대가 됐다.


[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21. 왜 상대평가를 하면 더 경쟁이 치열해질까?


⊙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

상대 평가를 하게 되면 시험 성적 자체보다는 학급·학년이나 수강생들의 순위에 의해 성적이 매겨지게 된다.

따라서 내가 한 계단 올라가면 필연적으로 한 계단 떨어지는 친구가 나온다.

내가 시험을 못 봐도 다른 사람들이 더 못 보면 내 등수(점수)는 올라가고 시험을 잘 봐도 다른 사람들이 더 잘 보면 떨어진다.

이런 상황을 경제학에선 위치적 외부효과(생글생글 119호 14면 참조)라고 부른다.

자신의 순위(상대적 위치)를 높이기 위한 모든 수단들이 경쟁자의 순위를 끌어내리는 상황이다.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2위인 라파엘 나달이 1위가 되면 1위인 로저 페더러는 2위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이 경우 서로 순위를 높이려고 경쟁하지만 서로의 노력이 상쇄돼 소모적 경쟁(위치적 군비경쟁이라고도 한다)이 벌어진다.

⊙ 상대 평가는 나쁘기만 한 것인가

절대 평가는 이해가 쉽고 평가 기준도 단순한 반면 자의적 평가 여지가 있다.

시험 문제를 쉽게 출제하고 90점 이상은 모두 'A' 또는 '수'를 준다면 객관성을 담보하거나 다른 집단과의 비교가 어렵다.

반면 상대 평가는 평가 대상자들에겐 원성의 대상이지만 나름대로 유용성도 있다.

평가 대상자 간에 경쟁 동기를 부여하고,객관적으로 변별력 있게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기업에서도 영업사원이면 자동차를 몇 대나 팔았는지,보험 설계사면 보험 가입자를 몇 명이나 유치했는지,백화점 판매부서이면 매출을 얼마나 올렸는지가 평가 대상이다.

이때 평가 기준은 절대 평가다.

하지만 국내외 경기 변화에 따라 매출의 부침이 큰 상황이라면 절대 평가만 고집할 수 없다.

해당 부서나 평가 대상자의 노력이 얼마인지를 파악하는 데 경기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이럴 때 상대 평가는 누구나 겪는 경기 변동이란 요인을 차감할 수 있게 해 준다.

경찰의 범인 검거 실적에 따른 포상제도 역시 경찰 개개인의 검거 실적만 평가했을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범죄가 늘어날수록 검거 건수도 올라가게 되므로,이럴 땐 상대 평가를 통해 전국 범죄 발생률이란 공통 변수를 제거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기업의 평가 방식은 공통 변수가 적을 땐 절대 평가를,많을 땐 상대 평가를 고루 채택하는 혼합형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

경매의 세가지 방식 - 영국식, 네덜란드식, 그리고 비커리 경매

경매(auction)란 참가자들 간의 가격 경쟁을 통해 물건을 사고파는 상대 평가식 심리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경매의 유래는 고대 바빌로니아와 그리스,로마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늘날 경매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름차순 공개 경매는 '영국식 경매(English auction)'이다.

낮은 가격부터 출발해 최고 가격을 부른 사람에게 낙찰된다.

1744년 영국 소더비가 런던에서 서적 경매를 한 게 효시이고 1764년엔 크리스티가 설립돼 '경매의 꽃'이라는 미술품 경매를 시작했다.

둘째,화훼 산업이 발달한 네덜란드에선 내림차순 공개 경매인 '더치 옥션(Dutch auction·네덜란드식 경매)' 방식을 쓴다.

이는 영국식 경매와 반대로 높은 가격에서부터 낮은 가격으로 내려가면서 가장 먼저 구매 의사를 밝힌 사람에게 낙찰된다.

영국식 경매는 참가자들의 전략이 간단하지만 낙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반면 더치 옥션은 전략이 복잡한 대신 단시간 내 마무리 지을 수 있어 싱싱함이 생명인 꽃 경매에 적합하다.

정작 네덜란드인들은 이 방식을 '중국식 경매(Chinese auction)'라고 부르고,우리나라에선 인터넷 경매가 활성화되면서 '역경매'라는 이름을 붙였다.

셋째,비공개 경매로 참가자들이 밀봉된 봉투에 응찰 가격을 써내고 동시에 개봉해 낙찰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최고가를 써낸 사람이 낙찰되는 것이 '최고가 밀봉경매(first price sealed bid)'이며 기업 매각 때 주로 이용된다.

또 이를 응용해 정부의 관급 공사는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에 돌아가는 '최저가 밀봉경매'를 주로 이용한다.

이와 달리 최고가 응찰자에게 낙찰되지만 낙찰 가격은 차점자가 써낸 가격으로 정해지는 '비커리 경매(Vickery auction·차순위가격 밀봉경매)'도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비커리가 고안한 방식으로 응찰자들의 경쟁이 치열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써내는 폐단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증권시장의 주식 매매도 다수의 매수자와 매도자 간 경매로 볼 수 있다.

이를 '연속적 이중 경매'라고 하는데,개장시간 동안 내내 경매가 진행돼 연속적이고 한 경매자가 사고파는 것이 모두 가능하므로 이중 경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