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경제성장을 원했다
[Focus] 대통령선거는 시대정신을 담는다
이명박 당선자가 지난 19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언론들은 '일자리와 경제가 시대정신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 시대의 주된 흐름,가치관 등으로 정의되는 시대정신은 정치 영역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가치나 과제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논의를 전제로 생각하면 일자리와 경제를 다음 정권의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이 당선자가 가장 부합하는 후보였다는 게 승리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대선의 향배를 좌우하는 시대정신

국민의 투표로 권력이 창출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 시대정신을 읽는 것은 정권을 잡기 위한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다.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들 앞에서 안정을 주장하거나 경제발전을 원하는 시대정신에 역행해 정치개혁을 부르짖는다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대정신은 국민들의 마음을 일컫는 민심(民心)이나 유교 문화권 군주가 가진 권력 정당성의 기반인 천명(天命·하늘의 뜻)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민심은 시대정신에 비해 좀 더 유동적이라는 점에서,천명은 그 권위의 기원이 백성이 아닌 하늘에서 나온다는 부분이 시대정신과 다르다.

대선에서의 시대정신은 대통령 임기인 5년간 당선자가 꾸준히 해결해야 할 국민들의 요구인 것이다.

시대정신의 개념이 추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1987년 이후 대통령들이 내건 슬로건과 시대상황을 비교하면 의미가 좀 더 명확해진다.

예컨대 1987년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걸었던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슬로건은 군부독재를 끝내고 국민이 주권자로 떠오르고자 했던 시대적 열망을 잘 대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30여년간 계속된 군인 대통령의 시대를 마감하는 시기였다는 점에서,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가 위기라는 IMF사태를 맞아 국민적 저력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서 당시의 시대정신과 부합한다.

내년 2월에 임기를 마무리짓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2002년 당시 기득권의 부패와 특권의식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월드컵 개최로 고양된 자신감 등을 등에 업고 집권에 성공했다.

⊙ 대선 시대정신의 개념적 한계

이번 대선에서는 선거에 뛰어든 대부분의 후보들이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는 점에서 경제 살리기가 시대정신이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대선의 시대정신은 선거결과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40.3%를 득표해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불과 1.6%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16대 대선의 노무현 대통령과 다시 출마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의 격차도 2.3%포인트에 불과했으며 46.6%의 유권자가 이 후보를 지지했다.

두 차례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가 시대정신을 보여줬다면 두 차례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은 시대정신에 역행했던 것일까.

불과 39만여표차로 패배한 후보(15대 대선)가 내건 슬로건은 시대정신이라는 역사적 합목적성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고 치부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시대정신이 갖는 개념적 한계가 나타난다.

국민들이 당대에 해결돼야 할 과제를 지도자에게 요구한다는 시대정신은 근본적으로는 역사에 커다란 흐름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승리한 이유가 어쨌든 대선에서 승리한 정치조직은 자신들이 역사적 선택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역사에 일정한 방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방향 자체도 증명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예컨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재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에서 '못살겠다 갈아보자'을 내건 야당에 '갈아봤자 별수없다'는 여당이 승리했다고 해서 당시 시대정신이 이 전 대통령에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대통령 선거에서 시대정신이란 선거에서 이긴 측이 자신의 승리를 정당화하고 남은 5년을 뜻대로 끌고 나가기 위한 허구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노경목 한국경제신문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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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공세가 힘쓰지 못한 이유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네거티브(negative·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행위)가 큰 힘을 쓰지 못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지난해 연말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며 갖가지 네거티브에 시달렸으나 어떤 것도 이 당선자의 지지율을 크게 떨어뜨리지 못했다.

혹자는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시대정신을 들기도 한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 경제살리기였던 만큼 주로 후보자의 도덕성을 겨냥한 네거티브가 큰 힘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당선자에게 국민들이 원한 것은 현대그룹 최고경영자(CEO)를 거치면서 얻은 실무능력과 서울시장 재직 시절의 청계천 복원,버스전용차로제 시행과 같은 추진력이었지만 네거티브는 이러한 이미지를 깨뜨리지 못했다.

대부분의 공세가 BBK 주가조작 의혹,서울 도곡동 위장투기 의혹과 같이 재산형성 과정의 도덕성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 '반(反)부패'에 맞춰졌다면 선거 결과는 전혀 달랐을 수도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같은 기업인 출신이지만 '깨끗함'을 내세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에게 이같은 네거티브가 제기됐다면 지지율에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대쪽 같은 이미지를 강조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결국 허구로 증명된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으로 대선에서 두 차례 패배한 것도 이런 이유로 볼 수 있다.

똑같은 내용의 네거티브라도 시대정신에 따라 힘을 발휘하기도,못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에 출마할 때마다 좌파로 몰리는 '색깔론'에 곤욕을 치렀지만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경륜 있는 대통령감을 원하는 국민들의 요구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한편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 경제살리기였다고 해도 지도자의 능력에 대한 기대감이 도덕성을 압도할 수 있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은 네거티브에 국민들이 휘말리지 않을 만큼 정치의식이 성장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한편에서는 국민들이 먹고살기 힘들어 도덕성은 중요시하지 않는 현실이라며 개탄하기도 한다.

무엇이 정답일까.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토론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