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어." "친구를 길에서 우연찮게 만났어."
"그 사람 말은 엉터리야." "그 사람 말은 엉터리없어."
우리는 뜻하지 않게 누군가를 만났을 때 '우연히 만났다'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우연찮게 만났다'라고 하기도 한다.
또 터무니없는 말을 들었을 때 '엉터리'라고 하기도 하고 '엉터리없다'라고 하기도 한다.
같은 상황을 나타내면서도 이런 정반대의 표현이 가능한 것일까.
이들은 전회에서 살핀 '그 사람 주책이야'와 '주책없어'라고 하는 말의 관계와 비슷하면서도 사전적인 대접은 사뭇 다르다.
주착에서 변한 말 '주책'의 본래 의미를 살려 '주책없다'만 인정하고 '주책이다'는 사전에서 퇴출시킨 반면,이들 '우연하다/우연찮다'나 '엉터리다/엉터리없다'는 모두 인정되는 말이다.
다만 사전의 풀이에서는 '우연하다'는 '뜻하지 않게 일어난 상태'를,'우연찮다'는 '뜻하지 않게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그렇다고 딱히 의도한 것도 아니다'란 미묘한 차이를 두었다.
가령 "이번 학기에 우연히 장학금을 탔어"라고 한다면 말 그대로 '뜻하지 않게 장학금을 받게 됐다'는 의미다.
이를 "우연찮게 탔어"라고 하면 '우연히 장학금을 탄 건 아니지만(장학금 탈 만한 자격은 갖췄다는 뜻) 그렇다고 그걸 타려고 굳이 의도하지도 않았다'란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이런 구별이 거의 불가능하고 할 필요도 없다는 데 있다.
'지나가다 우연히 그 사건을 목격했다'나 '지나가다 우연찮게 그 사건을 목격했다'나 거의 같은 상황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이를 감안해서인지 "'우연찮다'는 원래 '우연하다'와 상반된 뜻인데,최근에는 다소 달라진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따라서 '뜻하지 않게'의 뜻으로 '우연찮게'를 사용하는 것이 꼭 잘못된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엉터리이다'와 '엉터리없다'는 아예 사전적으로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을 뜻하는,같은 말로 풀이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을 때 '엉터리 수작'이라 하든,'엉터리없는 수작'이라 하든 모두 같은 말이다.
'엉터리'는 본래 긍정적인 뜻으로 '대강의 윤곽,갖추어진 틀'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한자어로 비슷한 말은 '형지(形址 : 어떤 형체가 있던 자리의 윤곽)'이다.
'일주일 만에 일이 겨우 엉터리가 잡혔다'처럼 쓰인다.
그래서 '근거가 없다,이치에 맞지 않는다'란 뜻으로 말할 때는 부정어를 붙여 '엉터리없다'라고 하던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뒤의 부정어는 잘라버리고 '엉터리이다' 식으로 쓰다 보니 아예 '엉터리'란 단어 자체가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됐다.
'주책과 주책없다''엉터리와 엉터리없다''우연하다와 우연찮다' 같은 말의 관계를 의미의 이동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가령 순우리말인 '에누리'가 본래 '물건 값을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일'에서 지금은 '값을 깎는 일'로,정반대의 의미로 굳어져 쓰이는 것과 같은 경우로 보는 것이다.
단어의 의미와 용법은 결국 언중이 만드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이런 현상은 언어의 과학화란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그 사람 말은 엉터리야." "그 사람 말은 엉터리없어."
우리는 뜻하지 않게 누군가를 만났을 때 '우연히 만났다'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우연찮게 만났다'라고 하기도 한다.
또 터무니없는 말을 들었을 때 '엉터리'라고 하기도 하고 '엉터리없다'라고 하기도 한다.
같은 상황을 나타내면서도 이런 정반대의 표현이 가능한 것일까.
이들은 전회에서 살핀 '그 사람 주책이야'와 '주책없어'라고 하는 말의 관계와 비슷하면서도 사전적인 대접은 사뭇 다르다.
주착에서 변한 말 '주책'의 본래 의미를 살려 '주책없다'만 인정하고 '주책이다'는 사전에서 퇴출시킨 반면,이들 '우연하다/우연찮다'나 '엉터리다/엉터리없다'는 모두 인정되는 말이다.
다만 사전의 풀이에서는 '우연하다'는 '뜻하지 않게 일어난 상태'를,'우연찮다'는 '뜻하지 않게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그렇다고 딱히 의도한 것도 아니다'란 미묘한 차이를 두었다.
가령 "이번 학기에 우연히 장학금을 탔어"라고 한다면 말 그대로 '뜻하지 않게 장학금을 받게 됐다'는 의미다.
이를 "우연찮게 탔어"라고 하면 '우연히 장학금을 탄 건 아니지만(장학금 탈 만한 자격은 갖췄다는 뜻) 그렇다고 그걸 타려고 굳이 의도하지도 않았다'란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이런 구별이 거의 불가능하고 할 필요도 없다는 데 있다.
'지나가다 우연히 그 사건을 목격했다'나 '지나가다 우연찮게 그 사건을 목격했다'나 거의 같은 상황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이를 감안해서인지 "'우연찮다'는 원래 '우연하다'와 상반된 뜻인데,최근에는 다소 달라진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따라서 '뜻하지 않게'의 뜻으로 '우연찮게'를 사용하는 것이 꼭 잘못된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엉터리이다'와 '엉터리없다'는 아예 사전적으로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을 뜻하는,같은 말로 풀이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을 때 '엉터리 수작'이라 하든,'엉터리없는 수작'이라 하든 모두 같은 말이다.
'엉터리'는 본래 긍정적인 뜻으로 '대강의 윤곽,갖추어진 틀'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한자어로 비슷한 말은 '형지(形址 : 어떤 형체가 있던 자리의 윤곽)'이다.
'일주일 만에 일이 겨우 엉터리가 잡혔다'처럼 쓰인다.
그래서 '근거가 없다,이치에 맞지 않는다'란 뜻으로 말할 때는 부정어를 붙여 '엉터리없다'라고 하던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뒤의 부정어는 잘라버리고 '엉터리이다' 식으로 쓰다 보니 아예 '엉터리'란 단어 자체가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됐다.
'주책과 주책없다''엉터리와 엉터리없다''우연하다와 우연찮다' 같은 말의 관계를 의미의 이동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가령 순우리말인 '에누리'가 본래 '물건 값을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일'에서 지금은 '값을 깎는 일'로,정반대의 의미로 굳어져 쓰이는 것과 같은 경우로 보는 것이다.
단어의 의미와 용법은 결국 언중이 만드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이런 현상은 언어의 과학화란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