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일(南盛日) 서강대 경제대학원장

☞한국경제신문 12월4일자 A39면

대통령 선거가 2주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직 대통령 후보들의 합종연횡은 계속되고 있다.

유권자들은 어느 때보다 폭넓은(?) 선택 범위에 비해 어느 때보다 짧은 선택 기간으로 인해 후보자에 대한 면밀한 평가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이럴 때엔 후보자의 개별적 자질과 공약보다는 그의 배경이 되는 출신지역,학교 등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이렇듯 그가 속한 집단의 특성으로 개인을 평가하는 것을 통계적 차별(Statistical discrimination)이라 한다.

예컨대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지방대학 출신이나 여성보다 서울소재 대학 출신이면서 남성이면 능력이 더 나을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지방이냐 서울이냐,혹은 남성이냐 여성이냐 하는 집단적 기준에 의해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이 차별이 되는 까닭은 개인의 고유 특성이 아닌 것을 가지고 개인을 판단하는 게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집단적 평가는 그 집단의 평균을 기준으로 한다.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적으로 생산성이 높다고 판단하면 그 잣대로 모두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대 출신이면서 여성이더라도 서울소재 대학 출신 남자들의 평균보다 생산성이 높은 사람도 많을진대 집단적 기준에 따르면 열등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되니 이들에겐 명백히 불합리한 차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잣대로 개인을 평가하는 것이 없어지지 않는 까닭은 개인의 능력과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 나름대로 자신이 적용하는 집단적 잣대가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일 경우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자기 경험보다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반적인 이유들이고 이와 별도로 한국에서는 개인과 집단을 동일시하는 집단화 경향이 유독 강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흔히 말하기를 한국은 중국보다 더 사회주의적이라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중국인들보다 더 집단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집단화 경향이 강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행동은 개별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집단의 특성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예컨대 '김용철 변호사가 특정지역 고등학교 출신이더라'는 말은 그의 행동이 마치 그가 출생한 지역의 특성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런 인식이 퍼진다면 현재 삼성에 몸담고 있는 그 지역 출신들이 느낄 황당함과 위축감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집단화 경향이 강한 사회에서는 또 개인은 집단이 지향하는 표준에 맞추기를 강요당한다.

외국에서는 노동조합의 방침에 개별 조합원이 자유롭게 반대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왕따의 표적이 된다.

아마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후보와 출신지역이나 출신학교가 같은 유권자가 다른 후보를 찍으려면 상당한 용기 혹은 위장이 필요할 것이다.

집단적 평가와 집단화 경향 등 집단주의적 양식은 제한된 정보와 자원 속에서 신속하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불가피하기도 하고 효율적인 측면도 있다.

지난 40년 동안 한국의 고도성장은 이 같은 집단주의에 기반한 통일성과 효율성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제는 획일성과 강제성보다 다양성과 자발성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해야 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비춰볼 때 눈앞에서 펼쳐지는 선거판은 구시대적 집단주의가 여전히 판을 치고 사람들의 건전한 판단의식을 마비시키고 있어 안타깝다.

영ㆍ호남 간의 지역분할도 모자라 언제부터인가 충청지역도 분할에 가세하고 있다.

특정학교 출신들의 배타적 애교심이 유난히 돋보이고,아예 처음부터 유권자를 20 대(對) 80으로 갈라놓고 시작하는 후보도 있다.

무슨 일을 하겠다기보다 어느 편인지를 주로 말하는 후보를 경계하라.편 가르기에 기대어 득을 보려는 것은 악수하고 사진 찍은 것 외에는 내세울 만한 자기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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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적 차별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 해설

개개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는데 많은 비용이 들어 집단 구성원의 평균을 기준으로 개인을 평가하는 것을 '통계적 차별'이라고 한다.

통계적 차별은 원래 보험회사들이 많이 사용해 왔다.

예를 들어 22세의 쌍둥이 남매 광수와 진희가 자동차보험에 새로 가입하려고 하는데,오빠인 광수는 조심성이 있어서 차를 살살 모는 반면,여동생인 진희는 성격이 괄괄해 사고 낼 뻔한 적어 여러번 있다고 치자.

이들의 성향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고 가능성이 높은 진희가 보험료를 더 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보험회사들은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20대 남녀의 교통사고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보험료 산정 기준에 따라 남자인 광수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요구한다.

광수로서는 불만이지만,보험회사들은 보험 가입자 개개인의 성향을 일일이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통계적 차별은 개개인의 능력이나 성향을 일일이 파악하기 힘들 경우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통계적 차별이 보험영역을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 집단주의 또는 사회적 편견과 결합하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게 된다.

개인의 특성은 무시된 채 집단에 대한 편견,선입견,고정관념 등으로 구성원들을 재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이 이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개개인의 능력이나 개성을 무시한 채 소속 집단 구성원의 평균치로 평가하기 때문에 집단주의를 조장하고 계층 간 갈등을 야기시킨다.

또 능력이 우수한 사람이 대우를 받지 못할 수 있으므로 사회의 인적자원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노동시장에서 이러한 차별이 나타날 때 차별받는 집단의 구성원은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지고,이는 구성원들의 자기계발 의욕을 꺾어 나중에는 실제 능력 차이로 이어지기도 한다.

과거 취업기회가 적었던 여성들이 취업 기회가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교육을 포기했던 현상이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통계적 차별은 정치 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은 이를 공개석상에서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사형제 반대 정치인은 통계적으로 범죄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고 사람들이 믿기 때문에 자칫 범죄 문제에 무관심한 정치인으로 오해받을 수 있어 침묵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글렌 라우리(Glen Loury)는 정치인들이 소수 의견을 대변하지 못하는 이러한 현상을 '정치적 담론의 퇴조'(disappearing political discourse)라고 불렀다.

개개인의 능력과 개성이 존중되는 선진 사회가 되려면 통계적 차별이 잘못 해석되거나 악용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