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대학 서열화 문제점 해소 순기능 있어"

반 "공정성 합리성 변별력 없어 폐지해야"


올해 처음으로 실시된 수능 등급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보수적 교육단체와 언론,정치권 등에서는 "수능 등급제는 공정성이 없다"며 등급제 폐지와 수학능력시험 원점수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일부 학부모들은 수능 등급제를 중지해 달라며 원점수 공개를 촉구하는 헌법소원까지 추진중이다.

대학들도 등급제 보완과 학생선발권 등 자율화를 위해 집단 대응할 움직임이다.

이에 대해 수능 등급제가 아직 초기인 만큼 폐지보다는 보완 후 시행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진보적 교육단체 등은 "대학 서열화 등 기존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수능등급제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 당국 또한 수능 등급제를 거부하는 대학에 대해 "적절치 않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대학입시는 어떤 제도를 택하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처럼 교육열이 유별나고 교육 자원이 중앙에 집중된 나라에서는 어떤 입시제도를 택하더라도 국민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수능 등급제 실시로 인한 논란과 갈등이 증폭되고 이로 인한 부작용이 여간 심각하지 않다는 점이다.

등급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살펴본다.

⊙ 전교조 등,"대학의 내신무력화로 등급제 도입취지 사라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수능 등급제는 이미 3년 전 충분히 예고했고 지금 시행 초기여서 기존 문제점들과 엉켜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며 정확한 진단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고 제도가 올바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형적인 입시구조를 바꾸려면 지역균형선발제 등과 함께 등급제 같은 정책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동점자 속출 등으로 인한 등급 공백은 없었으며 등급별 분포 역시 표준비율에 근접했을 뿐 아니라 상위권 대학이 요구하는 변별력에도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대학이 등급(학점)으로 학업 성취수준을 평가한다고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어 공정성도 문제될 게 없다고 강조한다.

등급제로 인해 공정성이 깨지고 혼란이 조성된 게 아니라 주요 대학들이 수능반영률을 높이고 내신을 무력화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내신 중심,수능 보조'의 대입전형을 유도해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을 억제하려던 등급제 도입 취지를 대학이 묵살했다는 것이다.

⊙ 교총 등,"혼란과 갈등 초래한 수능 등급제 재검토해야"

이에 대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사교육을 잡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과 갈등만 초래했다"며 등급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당장 제도를 바꿀 경우 혼란이 가중될 수 있으므로 입시 전형이 끝난 뒤 등급제가 과연 입시제도의 바람직한 방향인지 자세히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어떤 영역에선 문제 하나를 틀리고도 2등급을 받는가 하면, 수능 총점은 더 높은 데도 등급 합산에서 뒤처지고 정부의 등급별 표준 분포 비율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시험의 기본인 공정성·합리성·정확성·변별력에 치명적 결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수능 등급제로 대학 입학이 요행수에 좌우되고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부채질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또 대학들이 내신 성적 반영을 줄여 수험생들은 논술에 몰두하게 되고 이로 인해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도 가중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고교 간 학력격차 해소와 대학의 학생선발자율화 확대 시급

수능시험 성적을 단순히 9등급으로 나누는 이번 제도는 도입단계에서 부터 많은 논란을 빚었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은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학생들은 3년 내내 수능·내신·논술을 두루 잘 해야 한다는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속에서 허덕였다.

불안감이 더해진 학부모들은 빚을 내서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았고 '저주받은 89년생'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올 들어 주요 대학들이 내신성적 반영비중을 낮추고 수능 비중을 높이는 바람에 수능등급제 도입 취지가 무너지고 말았다.

정부 당국은 등급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이번 기회에 등급제의 개혁 방안을 포함해 현행 대학입시 제도를 전반적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

고교 간 학력 격차 해소와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화 확대 방안을 마련하는 데 정부와 대학이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설명>

◆수능 등급제=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총점 대신 백분위에 따라 수험생의 등급을 정하는 것으로 올해 처음 시행됐다.

수능 총점 소수점 이하 몇자리에서 당락이 좌우되는 과도한 수능의존 현상을 줄이고 수능을 자격기준으로만 활용하기 위해 도입됐다.

전체 수능 응시학생을 400점 만점 변환표준점수를 기준으로 최상위 점수에서 최하위까지 9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누적기준으로 상(하)위 4%가 1(9)등급이고 4~9%가 2(8)등급이다.

◆내신 등급제=학생부 성적을 5단계(수 우 미 양 가)의 절대평가에서 1~9등급의 상대평가로 바꾼 것.

기존의 절대평가 방식에서 일부 학교가 시험 문제를 쉽게 내는 방법 등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부풀리는 부작용이 나타나 도입됐다.

과목별로 응시학생 수를 기준으로 등급이 매겨진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수능만으로 모자라 내신을 더하고 거기에 또 다시 논술까지 얹어 수험생들이 곤죽이 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말이다.

2008학년도 대학 입시를 치르는 1989년생들을 일컬어 죽음의 트라이앵글 세대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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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12월11일자 A11면

대학수학능력시험 등급제를 둘러싼 논란이 퍼져가고 있는 가운데 대학 총장들이 대책 마련을 위해 회동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과 정부가 수능 등급제를 놓고 정면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양측은 올해 초부터 내신 반영비율 등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전국 4년제 대학의 연합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10일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수능 등급제 혼란과 관련) 대교협 이사회를 소집하거나 회장단 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요청이 있어 대학 총장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총장은 "대학들이 등급제는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며 "자신의 점수를 알아야 교사와 수험생이 입시전략을 짤 수 있는데 등급제 아래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총장은 수능의 원점수를 공개해야 한다는 일부 수험생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입시는 약속이기 때문에 예고한 대로 가야 혼란이 없다"며 "문제가 생겼다고 원칙을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교협은 공교육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입시의 모든 부분을 자율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라며 "차기 정권에서 입시를 완전 자율화해도 본고사 일변도로 가는 대학은 없을 듯하다.

서울대는 다양한 선발 방식을 시도해왔고 다른 대학도 본고사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곳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송형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