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논리적 연결 고리에 답이 있다

1. 논술 문제의 변화

교수님들의 채점 평을 보면 '출제자의 의도를 읽어라'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많은 교수님들의 채점 평을 보면 '출제자의 의도를 읽어 낸 답은 거의 없었다'는 글이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 논술 형태인 단순 문제형(이를테면 '∼에 대해 논하시오' 형태의 주제 제시형 문제)은 출제자의 의도는 단순히 '어떠한 주제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그것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논술하는지 알아보겠다'는 형태이기 때문에,의도만 가지고 답을 유추하기 어려웠다.

다시 말하면 문제 자체가 다양한 답을 낼 수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의도는 답을 내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요즈음의 논술 문제는 일명 '답이 있는 논술'을 지향하는 방식이다.

방식이 변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전문가들이 대개 지적하는 이유는 '채점의 공정성과 객관성'이다.

과거 논술방식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내용을 일일이 기준을 세워 객관적으로 채점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때문에 최근 문제는 답이 있는 내용을 묻고 예시 답안에 준하여 채점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대학들도 이러한 취지의 내용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 처지에선 훨씬 쉬어진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답이 없는 문제'와 '답이 있는 문제',어느 쪽이 더 쉬운가?

최근의 통합논술도 사실 대단한 움직임이 아니다.

답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난이도가 쉬우면 변별력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난이도를 높여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제시문을 어렵게 내는 것은 이미 한물 간 방식이다.

고교 교과과정에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배경 지식에 기반한 문제를 물을 수도 없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교과서에 준하되,아이들의 사고를 측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각한 방식이 통합 논술이다.

물론 현대 사회가 영역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인재를 요구한다는 이유도 변화의 원인이긴 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출제과정의 애로사항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2. 출제 의도와 문제 풀이와의 상관관계

지금까지 논의한 출제 방식의 변화를 살펴보면 현재의 논술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답이 있는 논술의 형태이면서 영역 간 통합적 사고를 묻는 문제'

실제 올해 수시 때 치러진 외대와 연대 문제 등은 상당히 진보된 통합의 수준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지난 호에서 마지막에 언급했던 문제 출제과정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출제는 다음의 도식을 거친다.

우선 '주제'를 정한다.

그 다음에 그 주제와 연관해서 묻고자 하는 내용을 정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제시문을 선택한다.

제시문에서 근거를 도출해 답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인데,근거를 도출하는 과정이 너무 쉬우면 변별력이 생기지 않는다.

또한 너무 어려워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교수들이 이용하는 것이 사고의 도구이다.

'이 방법으로 생각하면 문제의 답을 도출해 낼 수 있다','이러한 사고를 어떻게 문제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식으로 문제를 구성하다 보면 당연히 실제로 묻는 것은 답에서 원하는 어떠한 특정 내용이 아니라 사고의 방법이 되고 만다.

그 사고법을 알고 있으면 문제가 풀리고,모르면 못 풀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어려워도 변별력이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사고법은 만국 공통의 언어이니까.'

이 원리는 통합의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서로 다른 영역의 내용을 하나로 연결할 경우 그 끈은 당연히 '논리'이다.

논리만이 '답이 있는 논술'에서 출제자와 수험생이 공통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결국 논술 문제는 영역 간 다른 내용의 연관성을 '논리'라는 암호로 감춰 놓은 형태이고,해결 과정은 숨겨놓은 '논리'를 밝혀내 내용을 구성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한 것이다.

오늘은 이러한 문제에 숨겨놓은 '논리'를 이용해 문제를 푸는 방식을 공부하겠다.

물론 문제 해결 과정에서의 '논리'는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논리'의 의미는 '문제들끼리의 연결을 결정하는 원리'라는 의미로 정의하고 시작하자.

3. 실전 사고법 특강

제시문 [가]는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라다크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

라다크의 변화와 관련하여 제시문 [나]의 관점을 평가하고,본인이 생각하는 라다크의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시오.

[가] 라다크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모든 것을 재순환시켰다.

그들에게 주어진 빈약한 자원만 가지고도 농부들은 거의 완전한 자립에 도달하였다.

바깥세계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고작 소금,차 그리고 요리기구나 연장으로 사용하기 위한 금속류 한 두 가지뿐이었다.

(중략) 혹심한 기후와 자원의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라다크 사람들은 생존이상으로 즐기면서 살아왔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곤 아주 기초적인 연장들뿐이므로 그것은 놀라운 성취였다.

단순한 연장들밖에 없으므로 라다크 사람들은 일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도 라다크 사람들은 시간을 넉넉히 가지며 여유로운 속도로 일을 하고 놀라울 만큼 많은 여가를 누려왔다.

(중략)

세계의 다른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라다크에서도 서구식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중략)

외화수익을 보장하는 관광사업은 개발의 중요부분이다.

1974년 가을에 몇 안 되던 방문객이 1984년에는 거의 5000명으로 늘어났다.

이 사람들의 대부분은 6월에서 9월까지 넉 달 동안에 이 지역을 방문하는데,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인구 1만명의 도시인 라다크의 수도 레로 온다.

관광과 관련된 사업이 번성하여 레에는 과거에는 하나도 없던 호텔이나 접객업소가 백개도 넘게 생겼다.

(중략)

내가 처음 레에 왔을 때 그곳은 아름다운 고장이었다.

포장된 길은 둘뿐이었고 자동차를 보기는 어려웠다.

길이 막히는 것은 주로 소들 때문이었다.

공기는 수정처럼 맑았다.

너무 맑아서 20마일가량 떨어진 골짜기 저편의 눈 덮힌 봉우리가 만질 수 있을 것처럼 가깝게 보였다.

도시 중심에서 어느 쪽으로든 5분만 걸어가면 농가가 있는 커다란 보리밭이 여기저기 보였다.

레는 작은 마을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서로 알고 있었고 인사를 나누었다.

지난 16년 동안 나는 이 마을이 현대도시로 확장되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감방 같은 집단주거지가 초록색 밭들을 잠식해 갔고,먼지투성이의 사막지대까지 뻗어갔다.

군데군데 서 있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전신주이다.

칠이 벗겨지고 녹슨 금속,깨어진 유리 그리고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가 풍경의 일부를 이루고 있고,입간판들은 담배와 분유광고를 하고 있다.

(중략)

전통적인 마을에서는 쓰레기가 생기지 않았지만,자원을 재활용할 방법이 없는 현재의 레에는 음식찌꺼기에서 플라스틱,유리,종이,원거리 운반에 필요한 금속 포장재 등에 이르기까지 쓰레기 더미가 쌓이고 있다.

전통경제에서 실질적인 가치가 있던 자원들이 이제 점점 더 무시되고 있다.

(중략)

전통사회에도 물론 불편함은 있었고, 개발이 그 불편함을 개선하기도 하였다.

돈과 기술의 도입과 현대의학 덕분에 실질적인 혜택이 이루어졌음은 분명하다.

많은 라다크 사람들은 이제 전보다 훨씬 더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행을 즐기고,외부로부터 더 다양한 물건들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한때는 사치품이었던 쌀과 설탕이 이제는 일상의 식품이 되었다.

교육은 사람들에게 새롭고 흥미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대장장이처럼 전통사회에서 불리한 지위에 있던 사람들은 현대화를 통해 조금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현대세계가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유와 기동성이 대단히 유혹적이다.

(중략)

청동항아리가 분홍색 플라스틱 양동이로 대체되고,야크털 신발이 버려지고 공장에서 생산된 값싼 신발이 환영받는 것을 보았을 때,나는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나는 나의 심미적 태도를 강요할 권리가 없고,그들에게 좋은 것이 무엇이라고 말할 권리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대사회의 침입이 흉하고 부적절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물질적인 이익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나] 브룬트란트 위원회는,환경파괴가 근대적 성장으로 빚어진 위험의 음지일 뿐만 아니라 빈곤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지적하였다.

"불평등은 지구에서 가장 중대한 '환경'문제이다.

그것은 동시에 가장 중대한 '개발'의 문제이기도 하다.

" 인구증가,식량,생물의 종과 자원의 소멸,에너지,산업,주거에 관한 통합적인 분석에서 이 모든 요소들이 상관관계를 맺고 있으며,서로 독립 변수로 취급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중략)

선진국의 복지를 얻기 위한 환경파괴와 개발도상국의 빈곤을 벗어나기 위한 환경파괴에 관해서는 본질적인 차이를 강조해야 할 것이다.

부를 전제조건으로 하는 수많은 생태계 위험들은 생산비용을 외부로 전가하기 때문에 비롯된다.

이에 비해 빈곤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환경파괴의 경우에는-부유한 사람들에게도 종종 불편함을 초래하지만-근본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자기 파괴라는 점이 문제이다.

달리 표현하면,부를 조건으로 하는 환경파괴는 일률적으로 전 지구에 배분되는 데 반해,빈곤을 조건으로 하는 환경파괴는 먼저 특정 장소와 특정 위치에 적용되고,점차적으로 동반효과라는 형태로 국제화된다.

(울리히 벡, <지구화의 길>)

위 문제는 서강대 2007학년도 수시 2-1학기 논술고사의 1번 문제다.

모 일간지에서 '3200명 답안 중 2000명이 판박이 답안'이라며 학원교육이 판박이 식의 답안만 양산한다는 논지로 학원교육과 학생들의 정형화된 사고법을 문제 삼는 근거로 삼았던 문제다.

그 당시 학생들이 제시한 정형화된 답안이란 이른바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하자라는 답안이었는데,환경 문제 나오면 당연히 '지속 가능한 개발'로 써야 한다는 획일화된 사고가 빚어 낸 웃지 못할 비극이었다.

사실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뒤로 많은 학원들이 후배 학생들한테 마치 전에는 안 그랬는 양,환경 문제가 나오면 '지속 가능한 개발'같은 뻔한 답은 쓰지 말라고 가르쳤으니 말이다.

'지속 가능한 개발'은 일종의 양시론이기도 하니.사실 좋은 답안은 아니다.

더구나 위의 제시문은 그런 답안을 경계할 의도로 친절하게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구체적인 것을 요구하는 경우는 '정형화된 답안'을 피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뻔한 식의 답안은 좋지 않다'로 가르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위장된 암기식 교육일 뿐이다.

뻔한 답안이 때로 답안인 경우도 있다(지면 관계상 어떤 경우인지는 생략하자.

하지만 분명히 있는 건 사실이다).

뻔한 답이 답인 경우,무조건 독창적인 걸 생각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지의 소치다.

두 가지 방식으로 해결해 보자.그 중 어느 방식을 택하든 그건 여러분의 자유다.

⊙ 해결 방식 (1)

제시문 (나)는 환경 파괴를 '부를 전제로 한 환경 파괴','빈곤을 전제로 한 환경 파괴'로 나누어 설명한다.

두 방식의 차이로,전자는 전 세계적으로 동반효과를 발생시키는 반면,후자는 자기 파괴 이후에 효과가 세계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전자는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공장을 설립해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있는 현실,후자는 아마존 밀림 파괴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제시문 (가)에 나타난 라다크의 현실은 후자를 증명하는 전형적인 예이다.

우선 라다크는 빈곤하다.

때문에 라다크의 개발방식은 빈곤을 전제로 한 환경 파괴라는 제시문 (나)의 후자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더구나 개발을 통해 각종 환경문제가 발생하여 자국의 환경이 오염된 사실은 일종의 '자기 파괴'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나)의 관점은 옳다.

라다크의 파괴를 정확히 설명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문제의 앞 부분에 대한 해제이다.

그리고 다음 부분인 라다크의 바람직한 미래를 논하는 부분으로 넘어가자.

앞 부분에서 나타난 라다크의 문제는 환경오염과 전통파괴 문제이다.

때문에 두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답안이 되어야 한다.

일단 '지속적인 개발'은 배제다.

너무 양시론적 냄새가 나고 더구나 대학 측에서 대표적인 오답이라고 말한 답안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이다.

'개발'이냐,'보존'이냐 이다.

일단 '개발'은 답으로 인정하기 힘들다.

'개발'을 인정하면 대표적인 문제로 지목된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바람직한 미래는 '현재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을 개선하라'라는 말과도 통한다.

때문에 현재 가장 큰 문제인 '환경 오염'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런 식의 답안은 논리를 구성하기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택하는 답이 '전통의 수호'이다.

'전통적 가치를 지켜야 행복할 수 있다'.'과거 물질이 없어도 행복했는데,물질 문명이 넘쳐나는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환경은 물질보다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근시안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원시안적으로 생각해야한다'는 등의 논거를 들고 전통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예들을 말하며 답안을 마무리 짓는다.

이 정도가 현재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해제방식이다.

그러나 문제점이 남는다.

과연 전통을 수호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문제이다.

이미 물질적인 풍요에 눈을 뜬 라다크인들이 물질을 포기하고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겠느냐의 문제이다.

그리고 제시문에서도 환경은 비록 오염됐지만 개발로 인해 누릴 수 있는 혜택도 있다고 명시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전통'을 택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문제도 생긴다.

그냥 '전통과 환경은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라다크인들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단순 논리로 해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어떤 답안은 '지속 가능한 개발'을 표면적으로 내세우지 않고 그에 준하는 구체적인 예들을 쓰며 답안을 마무리 짓는 경우도 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관점은 옳은데 답안이 구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대학 측이 감점을 했을 거라는 태도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생각이긴 하다.

⊙ 해결 방식 (2)

문제를 살펴보자.교수들이 출제를 할 때 거치는 과정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그 논리대로라면 문제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이어져 있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쉽게 보자.

문제가 요구하는 사안은 크게 세 가지이다.

①제시문 (가)에 나타난 라다크의 변화를 살펴보고, ②이 변화와 관련하여 제시문 (나)의 관점을 평가하고, ③라다크의 바람직한 미래 모습을 논하라이다.

출제 교수의 처지에서 생각해보자.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왜 이런 순서로 물었을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최근의 논술은 답이 있는 논술이다.

그렇다면 물어본 내용도 서로 연결되어서 하나의 답안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 가지의 질문이 서로 연관을 잇고 있다면 어떤 형태일까?

왜,그냥 바람직한 미래를 물어보지 않고 (나)의 관점을 평가하라는 요구를 했을까?

그렇다면 (나)의 관점을 평가하는 작업이 라다크의 문제를 드러내는 작업이 되는 것은 아닐까?

예외가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논리적인 사고의 흐름에서 볼 때 ①,②,③ 모두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논리적인 연관관계를 생각하면서 답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방식 (1)대로 그냥 (나)의 관점을 인정하는 것은 웬지 싱겁다.

환경오염은 너무 뻔하게 드러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물론 뻔하다고 다 답이 아니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경솔하게 선택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상대는 논술 어렵기로 소문난 서강대이다).

또한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 가지 방안 모두 개운치 않은 방식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제시문 (나)에서 주목할 내용은 제시문 (나)는 환경 오염을 '부를 전제로 한 개발,빈곤을 전제로 한 개발'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특징을 개도국의 경우 '자기 파괴'라고 보는 점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단 두 가지 논점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 라다크의 경우가 두 가지의 관점 중 어느 것에 해당하냐이고,다음은 그 내용이 자기 파괴냐라는 점이다.

우선,첫번째 논점.일단 라다크는 '부를 전제로 한 개발'은 아니다.

하지만 '빈곤을 전제로 한 개발'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빈곤을 전제로 한 개발'은 일반적으로 가난한 나라가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 개발을 꾀하는 모습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제시문 (가)에서 볼 수 있듯이 라다크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풍요롭다고는 할 수 없어도, 결코 빈곤했다고 볼 수도 없다.

'거의 완전한 자립''여유''즐기면서 살아왔다' 등의 표현은 이를 증명하는 내용들이다.

외부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라다크인 본인들은 나름대로 풍요롭게 살고 있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때문에 단순히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라다크의 개발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두 번째 논점.제시문 (나)가 말하는 '자기 파괴'는 경제성장을 위하여 자국의 환경을 담보삼는 일련의 행동들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그러나 이 관점에서 볼 때도 라다크는 자기 파괴라고 말하기에는 거리가 있다.

라다크가 개발된 이유를 생각해보자.라다크의 개발을 주도한 산업은 관광산업이다.

그러나 글 중 어디에도 라다크인 스스로 관광산업을 통해 돈을 벌기로 했다고 결정한 대목은 나오지 않는다.

과거 우리나라가 했듯이 중공업 위주의 경제개발을 통해 가난을 극복한다는 식의 자세는 라다크인에게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라다크에서 나타난 관광산업의 발달은 교통,통신의 발달로 라다크의 존재가 알려져 서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온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자꾸 외지인들이 오니까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 숙박업소를 만들고,그 과정에서 물질 문화도 유입되고,환경 문제도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때문에 이는 '자기 파괴'라고 볼 수 없다.

이상 두 가지를 생각해볼 때 (나)의 관점은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면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라다크 문제의 원인을 도출해내야 한다.

교수가 아무 상관없이 제시문 (나)를 평가하라는 문제를 내진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에서다.

바람직한 모습을 묻는 것은 현재의 상태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나)의 평가과정에 드러나 있을 거라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다.

생각해 보면 개발과정에서 드러난 라다크의 가장 큰 문제는 주체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외부인들이 가져온 변화에 수동적인 대처만 해온 것이 라다크의 가장 큰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신들의 변화를 주도해 온 것이 아니라,외부의 변화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녀 오늘날의 문제를 초래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자기 파괴'라면 억울하지나 않을 텐데,쉽게 말해서 이 경우는 시쳇말로 '뭣도 모르고 당한' 경우이다.

문제점이 이렇게 도출된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주체적인 방식으로 모든 변화에 대응하는 내용이면 된다.

우선 마을 회의를 열어 주민들의 의견을 물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변화를 논의하고 앞으로의 대응을 생각하는 자리를 만들 수 있다.

그곳에서 나온 안건들을 토의를 거쳐 수용해나가야 한다.

바람직한 미래의 핵심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논리적 바탕 위에서 환경 문제,물질 문제도 다루어야 한다.

어느 쪽도 포기하기 어려운 입장이라면,두 가지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주체적인 대응을 하는 방식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이를테면 일정 기간만 관광객을 받는다든지,아니면 한햇동안 찾아오는 관광객 수를 제한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라다크를 찾는 사람들은 라다크만의 독특한 풍경을 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개발로 인해 그러한 풍경을 잃는다면 외부인들은 흥미를 잃고 라다크에게 남는 건 파괴된 환경뿐일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자칫 양시론으로 빠질 수 있는 답안의 정형성을 문제 간의 연결논리로 극복하자는 구조이다.

어느 한 쪽을 지지하는 입장이라도 상관없다.

방식 (1)처럼 문제를 '환경 오염'으로 봤을 때는 논의의 한계가 따르지만,문제점으로 '주체성'을 거론할 때는 보존,개발 어느 방식으로도 논리가 가능하다.

단순히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하자는 주먹구구식 논리가 아니다.

정리해 보자.

환경오염과 전통의 파괴 문제만으로 파악하면 방식 (1)의 경우처럼 답안의 경우의 수도 협소해지고,논리적으로도 잘 맞지가 않는다.

그러나 '주체성'에 관점을 두면 삼자택일이라는 단순한 구조를 벗어나 다양한 논의를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또한 (나)의 관점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라다크의 문제가 논리적으로 도출되기 때문에 단락 간의 연결관계를 강화할 수 있어 좋다.

이렇게 답안을 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출제자가 어떠한 논리를 가지고 문제를 구성할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 간의 연결을 논리적으로 파악하면서 구성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답안의 정형성을 벗어날 수 있었다.

4. 짧은 연재를 마치며

서강대는 "내가 시장이라면,주민들의 의견을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물어 이러저러한 개발을 하거나 보존을 하겠다"는 식으로 자기 언어,자기 논리를 편 답안에 좋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해결방법의 자기 논리는 앞부분과 동떨어져서 있기보다는 문제 전반에 흐르는 일관된 논리인 것이 바람직하다.

오늘 소개한 사고법은 '문제 간의 논리적 연결 관계를 생각하자'이다.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사고법이다.

이 밖에도 문제를 풀 수 있는 사고법은 여러 가지이다.

지난번에도 밝혔듯이 지면 한계상 그 내용을 다 싣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논술은 사고력을 측정하는 수업이다.

때문에 여러분들의 공부도 사고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사고법은 일정한 명제로써 표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이기도 하다.

여러번 강조했듯이 사고법과 쓰기법을 통한 논술 공부는 여러분들에게 어렵기만 했던 논술이라는 난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이 점을 명심하자.

권호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통합논술 연구위원

mega@ed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