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경제적 가치
미국의 사립대학들은 대개 설립자나 재정적 후원자의 이름을 붙인다.
아이비리그의 하버드대,프린스턴대.코넬대,예일대나 서부 명문 스탠퍼드대 등이 그렇다.
하지만 한국에선 국공립대는 물론 사립대에도 설립자 이름을 딴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이런 명예를 원치 않는다고 보기는 힘들다.
설립자의 이름을 대학 이름에 붙이는 것은 '명예(honor)를 구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미국에만 설립자 이름을 딴 대학이 많고 한국엔 없을까? 그 문화적 차이를 경제원리로 풀어보면 흥미롭다.
오늘은 명예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살펴보자.
⊙ '인명+대학'은 미국만의 현상
한국의 대학들은 주로 도시·지역명(서울대,서강대,한양대 등)이나 나라명(고려대,조선대 등) 또는 추상적 개념(연세대,중앙대,홍익대 등)을 붙인다.
중국,일본의 대학들(베이징대·칭화대,도쿄대·게이오대 등)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이름 석 자가 대학명으로 붙이기에 적합하지 않아서일까,여러 설립 기여자 중 한 사람 이름만 붙일 수 없어서일까,이도저도 아니면 대학명으로 붙일 만한 인물이 없어서일까?
북한에는 김일성대,김책공대가 있지 않은가.
설립자의 호(號)를 딴 경우도 중고교에는 간혹 있어도 대학엔 없다.
유럽도 옥스퍼드대,베를린대,볼로냐대처럼 대개 도시명을 대학명으로 쓴다.
프랑스는 '68혁명' 이후 소르본대 등 기존 대학들을 해체하고 파리1대학,파리2대학 등 멋대가리 없는 숫자이름을 붙였다.
오히려 미국 대학들의 '인명+대학'이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악명 높았던 스탠퍼드대 설립자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스탠퍼드대는 철도건설업자였던 릴랜드 스탠퍼드(1824~1893)가 1885년 설립했다.
스탠퍼드는 철도 건설 과정에서 중국인 노동자 학대와 임금 착취로 악명 높았다.
심지어 터널공사 중 사고를 가장해 죽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떼먹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캘리포니아 주지사,상원의원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러다 그의 외아들이 아프리카 여행 중 말라리아로 죽은 뒤 사회 기부에 눈을 뜨게 됐다.
그는 하버드대를 방문,'서부의 하버드'를 세울 노하우를 듣고 스탠퍼드대를 설립했다(이와 관련,스탠퍼드가 하버드대에 기부를 제의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설도 있다).
스탠퍼드대는 캠퍼스 규모가 미국 최대이고,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이보다 더 유명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세계 최초의 남녀공학 대학이고 둘째,종교·사상에 관계없이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며 셋째,시험 감독이 없다.
첨단기술의 메카인 실리콘밸리도 스탠퍼드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다.
⊙ 명예도 수요·공급이 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 의하면 생리욕구,안전욕구,귀속욕구가 충족된 사람은 다음 단계로 사회적으로 인정·존경받고 싶어하는 자기존중(명예)욕구가 생긴다.
물불 안 가리고 돈을 번 사람들이 사회공헌에 눈뜨게 되는 것도 대개 이런 단계라 할 수 있다.
명예의 수요가 명예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면,명예의 공급은 사회에서 알아주는 것,사회적 인정·존경을 의미한다.
명예의 가격은 바로 이런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균형점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미국에선 이런 명예시장,명예마케팅이 가장 활성화돼 있다.
마을 공원 벤치를 만들고 나무를 심는 데 10달러,20달러를 기부한 사람의 이름까지 남겨 준다.
⊙ 스탠퍼드가 한국에서 대학을 세웠다면
만약 스탠퍼드가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자기 이름을 딴 대학을 설립하려 했다면 가능했을까.
그는 당장 "부정하게 번 돈으로 신성한 학문의 전당을 오염시키려 한다"는 사회적 지탄에 직면하고,끝내 포기하지 않았을까.
최근 한국인들도 기부,봉사 등에 눈을 떴고,명예의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돈과 명예를 연결짓는데 강한 반감이 존재한다.
기여입학제에 대한 반대여론이 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아무리 기부를 많이 했더라도 돈 번 과정이 명예롭지 못한 사람이면 존경받기 어렵다.
명예의 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명예의 공급은 거의 없는 셈이니 명예시장도,명예의 가격도 형성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예컨대 대기업 총수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몇 십억원쯤 기부해도 별로 명예롭게 여기지 않고,서민들도 부조금으로 1만~2만원만 내면 쩨쩨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물론 미국에서도 부정한 축재자를 비난하지만 기부행위 자체는 별개로 존중해준다.
미국 사회에선 "너는 기부라도 해봤느냐? 돈 내고 비난하라"고 되묻는 게 아닐까.
과연 어느 쪽이 사회적으로 더 유용할까.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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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같이 벌어 품위있게 쓴 카네기와 록펠러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 경제를 이끈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와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1839~1937)를 꼽는다.
두 사람의 인생역정이 워낙 닮은 꼴이어서 이채롭다.
카네기는 1892년 카네기철강회사를 만들고 9년 뒤 모건계(系) 제강회사와 합병해 미국 철강시장의 65%를 장악한 US스틸을 탄생시켰다.
록펠러도 1882년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를 조직해 미국 내 정유소의 95%를 지배했다.
젊은 시절 이들은 경쟁회사를 갖은 수단을 동원해 무너뜨리거나 합병하고 시장을 독점해 요즘 표현대로 라면 부도덕한 독점재벌의 표본이란 비난을 사기도 했다.
기업인으로서 정상에 선 이후 두 사람의 행보 역시 비슷했다.
카네기는 US스틸 합병 이후엔 경영에서 손 떼고 교육과 문화사업에 몰두했다.
카네기공대(현 카네기멜론대학),카네기교육진흥재단에 3억달러 이상 쏟아부었다.
록펠러도 1911년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가 미국 연방대법원으로부터 반(反)트러스트법 위반으로 해산명령을 받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자선사업에 몰두했다.
시카고대학 설립에 6000만달러를 기부한 것을 비롯 록펠러재단,록펠러의학연구소 등에 3억5000만달러를 기부했다.
이들은 인생을 두 기간으로 나눠 전기엔 돈 버는 데,후기엔 번 돈을 품위 있게 쓰는 데 몰두한 것이다.
카네기홀,록펠러센터 같은 유물을 남겼고,자선재단을 통해 지속적으로 빈곤층이나 빈곤국가들을 돕고 있다.
이들은 자선 원칙에서도 극빈자에게 직접 돈이나 음식을 지원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했다.
대신 빈곤층에 교육사업과 장학금을 제공하고,빈곤국에는 식량 대신 수확이 많은 종자와 비료를 줬다.
이는 뒤를 이은 수많은 자선단체들이나 빌 게이츠 등의 자선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사립대학들은 대개 설립자나 재정적 후원자의 이름을 붙인다.
아이비리그의 하버드대,프린스턴대.코넬대,예일대나 서부 명문 스탠퍼드대 등이 그렇다.
하지만 한국에선 국공립대는 물론 사립대에도 설립자 이름을 딴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이런 명예를 원치 않는다고 보기는 힘들다.
설립자의 이름을 대학 이름에 붙이는 것은 '명예(honor)를 구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미국에만 설립자 이름을 딴 대학이 많고 한국엔 없을까? 그 문화적 차이를 경제원리로 풀어보면 흥미롭다.
오늘은 명예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살펴보자.
⊙ '인명+대학'은 미국만의 현상
한국의 대학들은 주로 도시·지역명(서울대,서강대,한양대 등)이나 나라명(고려대,조선대 등) 또는 추상적 개념(연세대,중앙대,홍익대 등)을 붙인다.
중국,일본의 대학들(베이징대·칭화대,도쿄대·게이오대 등)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이름 석 자가 대학명으로 붙이기에 적합하지 않아서일까,여러 설립 기여자 중 한 사람 이름만 붙일 수 없어서일까,이도저도 아니면 대학명으로 붙일 만한 인물이 없어서일까?
북한에는 김일성대,김책공대가 있지 않은가.
설립자의 호(號)를 딴 경우도 중고교에는 간혹 있어도 대학엔 없다.
유럽도 옥스퍼드대,베를린대,볼로냐대처럼 대개 도시명을 대학명으로 쓴다.
프랑스는 '68혁명' 이후 소르본대 등 기존 대학들을 해체하고 파리1대학,파리2대학 등 멋대가리 없는 숫자이름을 붙였다.
오히려 미국 대학들의 '인명+대학'이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악명 높았던 스탠퍼드대 설립자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스탠퍼드대는 철도건설업자였던 릴랜드 스탠퍼드(1824~1893)가 1885년 설립했다.
스탠퍼드는 철도 건설 과정에서 중국인 노동자 학대와 임금 착취로 악명 높았다.
심지어 터널공사 중 사고를 가장해 죽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떼먹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캘리포니아 주지사,상원의원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러다 그의 외아들이 아프리카 여행 중 말라리아로 죽은 뒤 사회 기부에 눈을 뜨게 됐다.
그는 하버드대를 방문,'서부의 하버드'를 세울 노하우를 듣고 스탠퍼드대를 설립했다(이와 관련,스탠퍼드가 하버드대에 기부를 제의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설도 있다).
스탠퍼드대는 캠퍼스 규모가 미국 최대이고,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이보다 더 유명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세계 최초의 남녀공학 대학이고 둘째,종교·사상에 관계없이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며 셋째,시험 감독이 없다.
첨단기술의 메카인 실리콘밸리도 스탠퍼드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다.
⊙ 명예도 수요·공급이 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 의하면 생리욕구,안전욕구,귀속욕구가 충족된 사람은 다음 단계로 사회적으로 인정·존경받고 싶어하는 자기존중(명예)욕구가 생긴다.
물불 안 가리고 돈을 번 사람들이 사회공헌에 눈뜨게 되는 것도 대개 이런 단계라 할 수 있다.
명예의 수요가 명예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면,명예의 공급은 사회에서 알아주는 것,사회적 인정·존경을 의미한다.
명예의 가격은 바로 이런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균형점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미국에선 이런 명예시장,명예마케팅이 가장 활성화돼 있다.
마을 공원 벤치를 만들고 나무를 심는 데 10달러,20달러를 기부한 사람의 이름까지 남겨 준다.
⊙ 스탠퍼드가 한국에서 대학을 세웠다면
만약 스탠퍼드가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자기 이름을 딴 대학을 설립하려 했다면 가능했을까.
그는 당장 "부정하게 번 돈으로 신성한 학문의 전당을 오염시키려 한다"는 사회적 지탄에 직면하고,끝내 포기하지 않았을까.
최근 한국인들도 기부,봉사 등에 눈을 떴고,명예의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돈과 명예를 연결짓는데 강한 반감이 존재한다.
기여입학제에 대한 반대여론이 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아무리 기부를 많이 했더라도 돈 번 과정이 명예롭지 못한 사람이면 존경받기 어렵다.
명예의 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명예의 공급은 거의 없는 셈이니 명예시장도,명예의 가격도 형성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예컨대 대기업 총수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몇 십억원쯤 기부해도 별로 명예롭게 여기지 않고,서민들도 부조금으로 1만~2만원만 내면 쩨쩨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물론 미국에서도 부정한 축재자를 비난하지만 기부행위 자체는 별개로 존중해준다.
미국 사회에선 "너는 기부라도 해봤느냐? 돈 내고 비난하라"고 되묻는 게 아닐까.
과연 어느 쪽이 사회적으로 더 유용할까.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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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같이 벌어 품위있게 쓴 카네기와 록펠러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 경제를 이끈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와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1839~1937)를 꼽는다.
두 사람의 인생역정이 워낙 닮은 꼴이어서 이채롭다.
카네기는 1892년 카네기철강회사를 만들고 9년 뒤 모건계(系) 제강회사와 합병해 미국 철강시장의 65%를 장악한 US스틸을 탄생시켰다.
록펠러도 1882년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를 조직해 미국 내 정유소의 95%를 지배했다.
젊은 시절 이들은 경쟁회사를 갖은 수단을 동원해 무너뜨리거나 합병하고 시장을 독점해 요즘 표현대로 라면 부도덕한 독점재벌의 표본이란 비난을 사기도 했다.
기업인으로서 정상에 선 이후 두 사람의 행보 역시 비슷했다.
카네기는 US스틸 합병 이후엔 경영에서 손 떼고 교육과 문화사업에 몰두했다.
카네기공대(현 카네기멜론대학),카네기교육진흥재단에 3억달러 이상 쏟아부었다.
록펠러도 1911년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가 미국 연방대법원으로부터 반(反)트러스트법 위반으로 해산명령을 받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자선사업에 몰두했다.
시카고대학 설립에 6000만달러를 기부한 것을 비롯 록펠러재단,록펠러의학연구소 등에 3억5000만달러를 기부했다.
이들은 인생을 두 기간으로 나눠 전기엔 돈 버는 데,후기엔 번 돈을 품위 있게 쓰는 데 몰두한 것이다.
카네기홀,록펠러센터 같은 유물을 남겼고,자선재단을 통해 지속적으로 빈곤층이나 빈곤국가들을 돕고 있다.
이들은 자선 원칙에서도 극빈자에게 직접 돈이나 음식을 지원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했다.
대신 빈곤층에 교육사업과 장학금을 제공하고,빈곤국에는 식량 대신 수확이 많은 종자와 비료를 줬다.
이는 뒤를 이은 수많은 자선단체들이나 빌 게이츠 등의 자선 원칙으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