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은 작은 트럭에 차곡차곡 이삿짐싣기
논술교육에 대해 말도 많고,탈도 많다.
대학들은 "논술 사교육이 입시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논술 전문학원들은 저마다 자기들이 가르치는 방식이 최고라고 주장한다.
이래저래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혼란만 가중되는 상황이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어떤 문제든 해답을 내리기 위해선 문제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문제만 정확히 인식한다면 해결은 논리적인 수순에 따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논술은 과연 학생의 무엇을 평가하고자 하는가'에 대한,지금까지 수없이 논의돼온 케케묵은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논의의 중심에는 대학들이 발표한 평가요소인 '논리력,사고력,표현력'이라는 불변의 단어들이 있어왔다.
사실,알아듣기는 해도 정확히 다가오진 않는 개념들이다.
보다 쉽게 정의해 보자.논술고사를 볼 때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와'어떻게 써야 하는가'이다.
대부분의 학원들이 전자에 중점을 두고 가르친다.
배경지식 강의(배경지식 강의가 아이들한테 인기가 없어지자 이름만 바꿔 전하는 주제강의),혹은 논제강의 등은 모두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강의들이다.
또한 논제 분석 강의나 독해 강의 역시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강의들이다.
그리고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부분은 첨삭 강의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번 강의에서는 이와 같은 논술교육의 두 축에 대한 원리들에 대해 다루어보고자 한다.
1. 어떻게 쓸 것인가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곤 한다.
자신이 A라고 생각한 것을 정확히 A로 쓰는 학생들이 드물다는 점이다.
생각한 것을 글로 써보면 영락없이 B나 C인 경우를 많이 본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은 대개 논술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자신이 생각한 바를 정확히 그 의미 그대로 살려서 쓰는 아이들을 보면 논술을 잘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글을 쓰기 전에 반드시 하는 일은 생각이다.
글이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생각해보면 A를 A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사실은 정확하게 A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고구마를 캐보면 하나의 줄기 아래 여러 개의 고구마가 한꺼번에 딸려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학생은 A를 생각한다고 하나 그 생각의 줄기 아래 수많은 생각들이 딸려오고 그 생각들을 미처 분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의도한 바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정답은 역설적으로 쓰기에 달려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어렸을 적,선생님은 이사가는 현장을 바라보며 한없는 경이를 느끼곤 했다.
(좀 오버인가?^^) 그 이유는 자그마한 1톤 트럭에 엄청난 짐을 싣는 것이 신기해서였다.
도저히 못 실을 것 같은 양의 짐을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은 능수능란하게 잘도 싣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짐을 실어야할지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법을 알기 때문에 그 방법대로 복잡한 짐을 크기와 길이 순으로 분류하고 재배열할 수 있는 것이다.
논술도 이와 같다.
'물건'들은 생각의 내용,'싣는 방법'은 표현에 속한다.
표현하는 방식을 제대로 익혀놓으면 생각을 분류하고,구분하기 쉽다.
따라서 그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도 쉬운 것이다.
복잡한 짐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남에게 보여주듯이 말이다.
때문에 생각을 잘하려면 역설적으로 쓰는 기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이 들린다.
도대체 쓰는 기술이 생각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은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성균관대 정시문제를 살펴보자.
⊙ 성균관대 2007학년도 정시논술
[문제 1] 아래 6개 제시문들은 빈곤국가를 돕는 일에 관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나타낸다.
이 두 가지 입장의 핵심 논지를 대비시켜 요약하시오.
<제시문 1>
가난과 기아는 인간에게 도덕적으로 행위하도록 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연민을 건드린다.
연민의 덕을 소유한 사람은 누구나 그러한 고통에 대해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그러한 인간의 고통을 보고도 외면한다면 그 사람은 매정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덕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궁핍과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보다 우리가 풍요로워야 할 필연적 이유가 없음을 고려하면,가난과 기아에 대해서 도덕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우리가 르완다나 잠비아에서 태어났더라면,우리는 열심히 일하고도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 전체가 누리는 풍요로움은 우리 자신이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행운에 의한 것이다.
특히 어린이들은 이 모든 것에 있어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 어린이가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기아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잘못으로 생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아와 가난에 처해 고통을 받고 있는 어린이들에 대해 도덕적 의무감을 느끼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
<제시문 2>
모든 인간은 천부적으로 자유를 가지고 태어난다.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인간의 자유는 타인 혹은 국가가 그 자유를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소극적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관점에서,인간은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을 소극적 권리를 지닌다.
인간은 오직 소극적 권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소극적 의무만을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 사회의 어느 개인이나 단체도 개인의 생명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것처럼,사유재산권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도덕적인 일,가령 가난한 국가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원조를 제공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가난한 국가나 계층을 돕는 일은 바람직하고 그렇게 하기를 바랄 수는 있지만,그렇다고 강요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전적으로 각 개인이 알아서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거기에 도덕적인 의무를 부여하거나 강요할 문제는 아니다.
<제시문 3>
부유한 나라의 부는 상당 부분 가난한 나라의 빈곤을 딛고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적 곤경에 처해 있으며 사회정치적 발전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도와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더해서 국제관계의 정치적,경제적,군사적,사회적 측면 등도 고려해야 한다.
부유한 나라가 국제관계의 역학을 도외시한 채 대외원조를 거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국의 이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규범 및 요청에 상응하는 경제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는 당장 여러 가지 가시적,비가시적 보상을 얻게 되거나,당장은 아닐지라도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에는 예전의 투자를 크게 상회하는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실용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부유한 국가의 경제원조는 빈곤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자국에도 이익이 된다.
<제시문 4>
아프리카의 예를 들어보자.아프리카를 빈곤에서 구해내기 위해서는 해마다 약 300억달러의 원조가 필요하다.
우리가 필요한 원조를 실제로 제공한다면 과연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인가?
과거의 예에 비추어 본다면 아프리카는 교육 수준이 너무 낮아 다른 곳에서는 성공했던 원조 방식조차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아프리카는 부패가 만연해 있고 권위주의에 물들어 있다.
아프리카에는 경제적 성장에 필요한 자유시장 제도와 근대적 가치가 결여되어 있다.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서는 도덕이 심각하게 붕괴되어 AIDS가 거의 통제불능 상태에 다다랐다.
설령 우리의 원조로 아프리카 아이들을 구한다고 가정해 보자.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인구폭발이 일어나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직면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물고기 한 마리를 던져준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들을 진정으로 돕는 일은 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필요한 비용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날 것이다.
<제시문 5>
강연을 하러 가는 길가에는 얕은 연못이 있고,내가 그 옆을 지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 나는 한 어린아이가 연못에 빠지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익사할 위험에 처했음을 알아차린다.
나라면 쉽게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신발과 바지는 흙탕물에 젖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집에 가서 신을 바꿔 신어야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할 것이다.
강연은 당연히 연기되거나 취소될 것이며,또 내 신발은 원래의 모양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의 가치보다 그런 작은 사정들을 중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추악한 일이 될 것이다.
어린아이를 구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어린아이를 못 본 체하고 강연을 하러간다면,나는 뭔가 심각한 잘못을 범한 것이다.
대다수의 부유한 사람들은 하찮은 물건이나 사치품을 사는 일에 돈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신발이 젖고 흙탕물에 바지가 더러워지는 것만큼이나 사소한 일이다.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갈 위험에 처해 있고,또 우리의 기부금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생명을 구하는 단체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가 앞에서와 같이 하찮은 일에 돈을 다 써버린다면 연못에 빠진 아이를 보고도 그냥 지나친 사람보다 우리 자신이 과연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제시문 6>
세계를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로 나누면,그중 3분의 2는 절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이고 단지 3분의 1만이 부자 나라에 해당된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부자 나라들은 부유한 사람들을 태우고 있는 하나의 구명정(lifeboat)이다.
이 구명정에 탄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구명정에 올라타려고 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부자나라로부터 도움을 구하려고 허우적대는 사람들이다.
구명정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명정에 태울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탄 구명정에 50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이 구명정에 10명을 더 태울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구명정 주변에는 100명의 사람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자신들도 구명정에 태워달라거나 최소한 자신들의 손이라도 붙잡아달라고 애원한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형제를 돌보라"는 기독교의 이상이나 "개인의 필요를 채워주라"는 막스의 이상에 따라서 그 사람들을 구한다고 생각해 보자.
물에 빠진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바가 모두 동일하고,그들 모두가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100명 모두를 구명정에 태워야 한다.
그럴 경우 결국 60명을 태울 수 있는 구명정에 150명이 올라타게 된다.
구명정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는다.
이것은 완전한 정의처럼 보이지만,사실은 완전한 재앙에 다름 아니다.
성균관대의 이 논술 문제는 학생들이 상당히 어려워했던 문제 중 하나이다.
간단히 풀어보면 제시문들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을 찬성하는 입장'이 제시문 1,3,5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 제시문 2,4,6이다.
여기까지는 모두 잘 파악한다.
하지만 이 다음이 쉽지 않다.
그냥 평면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입장에는 찬성과 반대 두 가지 입장이 있다.
찬성하는 입장은 제시문 1,3,5이고 반대하는 입장은 제시문 2,4,6이다.
우선 찬성하는 입장을 살펴보면 ….
무턱대고 이렇게 먼저 제시문 1,3,5의 내용을 나열하고,이어서 제시문 2,4,6의 내용을 나열한다면 이 요약은 십중팔구 어지러운 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쓸 내용은 이미 정해져 있다.
파악도 끝났다.
그러나 그대로 쓰자니 자신이 파악한 바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 같지 않다.
왜 그런가?
예를 들어 보자.신이와 준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두 사람의 특성을 서로 비교하는데 철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이는 머리가 길고,준이는 장난감을 판다.
' 다시 말해보자.'신이는 키가 크고,준이는 키가 작다.
' 위의 대비와 지금 것 중 어느 것이 효과적인 대비라고 생각하는가? 후자다.
그 이유는 처음은 두 사람의 다른 점을 기준 없이 대비한 경우이고,아래 것은 '키'라는 기준을 정하고 대비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교를 서술할 때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이 나온다.
'기준을 정하라'이다.
'기준'을 중심으로 서술하면 효과적인 비교를 할 수 있다.
때문에 위의 문제도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에 대한 입장 차이'라는 큰 틀 속에서 세부 기준을 중심으로 글을 쓰면 효과적인 대비를 할 수 있다.
우선 <제시문 1>을 살펴보자.<제시문 1>의 지은이는 오늘날 각국이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나뉜 이유가 우연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때문에 '우연히' 잘 살게 된 나라들이 '우연히'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 것은 도덕적 의무라고 말하고 있다.
<제시문 2>의 지은이는 인간은 소극적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무도 소극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가난한 국가나 사람들을 돕는 것은 의무사항이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두 제시문의 기준은 '부유한 국가가 빈곤한 국가를 도울 의무가 있는가?'로 삼을 수 있다.
이 기준을 중심으로 각각 주장과 근거를 요약하면 될 것이다.
<제시문 3>의 지은이는 가난한 나라들이 부유한 나라들의 부를 이루는 희생양이 되었다고 본다.
때문에 가난한 나라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본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를 돕는 것이 부유한 나라들 입장에서도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시문 4>의 지은이는 아프리카가 가난한 이유를 아프리카의 탓으로 돌린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아프리카를 단순히 원조해 주는 일은 선진국들에도 심각한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두 제시문의 기준은 '가난한 나라들이 가난한 이유와 이들에게 원조를 해 줄 경우 선진국들이 얻는 대가'가 된다.
역시 이 기준을 중심으로 주장과 근거를 요약하면 된다.
<제시문 5>와 <제시문 6>은 여러분이 한번 해보길 바란다.
어떤가? 전술한 '비교한 내용을 서술할 경우에는 기준을 중심으로 서술하라'가 여러분이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주었는가? 실제 이 기술을 가지고 '비교하라'는 문제를 풀면 생각도 훨씬 쉽게 되고 내용도 더욱 풍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어려운 제시문과 쉬운 제시문을 비교할 경우 쉬운 제시문 속에서 기준을 찾아서 어려운 제시문에 적용을 하면 독해도 쉬워지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쓰는 기술이 생각을 끌어내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밖에도 쓰는 기술은 다양하다.
지면의 한계로 다 보여주지 못하기에 대표적인 경우 하나를 예로 들었을 뿐이다.
실제 강의를 할 때 나는 이렇게 쓰는 기술을 중심으로 많이 강의한다.
가령 '서술원칙 10계명' 등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전수(傳授)를 하면,전날까지 헤매던 아이들도 생각을 정리해서 논제의 답을 도출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서술하는 것이 쉬우니 생각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생각도 결국 머릿속에서 서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내용이 머릿속에서 쉽게 서술되니,다른 내용들도 쉽게 나오는 이치다.
이어령 교수의 다음 말은 참조할 만하다.
"창조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라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창조적 발상의 근원은 '무엇을 끄집어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끄집어 낼 것인가'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내 경험을 놓고 말하자면,서울 올림픽 개회식 때 굴렁쇠 퍼포먼스를 생각해 낸 것이 그렇다.
동양의 회화적 특성이 여백의 미에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바로 그 여백의 사상을 텅 빈 운동장에서 굴렁쇠를 굴리는 소년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생각의 탄생'(에코의 서재) 추천사에서
2. 무엇을 쓸 것인가.
쓰는 기술의 향상이 사고의 발달을 가져온다는 점을 인지한다 하더라도,쓰는 기술이 만병 통치약은 아니다.
사고에는 쓰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대개 학생들을 가르칠 때,학생들이 사고할 수 있는 툴(tool)을 모르기 때문에 사고를 잘 못하는 경우를 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고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사고 자체가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이라고 생각하며 겁을 먹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해 본적이 없어서이다.
주입식 교육으로 답은 많이 외웠어도 생각하지 않은 습관들이 학생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생각을 하라는 요구는 많이 받았어도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고를 어려워하는 경우다.
때문에 생각하는 기술을 가르쳐주면 이 부분 역시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실제 올해 베스트셀러였던 '생각의 기술'을 보면 13가지 생각의 도구들이 나온다.
천재들과 일반인들의 차이는 이 도구를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달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논술도 마찬가지이다.
사고의 툴만 제대로 가지고 있다면 훨씬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비판적 사고의 9요소에 집중함으로써,순전히 연상적이고 미숙련된 사고로부터 개념적이고 조직화된 사고로 보다 용이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9요소들은 함께 작용하면서,사고를 모양짓고 또 이성을 사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논리를 제공한다.
이 요소들은 목적,문제,개념,전제,정보,결론(추론),관점,함축,맥락 등으로,학술적인 글읽기와 글쓰기에 필요한 사고력의 주요 핵심을 이룬다.
학술적인 글쓰기를 위해서 요구되는 비판적인 사고 능력이란 사고의 9요소들을 적절한 9 기준들에 맞춰 비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 기준들은 분명함,정확성,명료성,적절성,중요성,논리성,폭넓음,충분함,깊이 등으로,이 기준들이 사고의 요소들이 만족시켜야 할 보편적인 지적 기준이다."
- 김영정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철학과 교수,
'비판적 사고와 학술적 글쓰기' 중
현재 논술교육을 이끌고 있는 김영정 교수도 사고의 9가지 요소를 말하며 사고의 툴을 중요시하고 있다.
이 사고법 말고도 비교,대조 사고법,이미지 사고법,그리고 이미 너무 유명한 브레인 스토밍 등은 논술 실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사고법들이다.
사고법들이 실제 논술 문제에 어떠한 도움을 주는 가는 다음 주에 살펴보기로 하자.
기출문제를 사고법을 적용해 풀다보면 여러분도 사고의 도구를 계속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지상특강(상)을 마치면서 이 연재를 시작한 의도는 오프라인 강의로 진행하였던 '논술에 흐르는 원리'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논술 문제엔 원리가 있다.
이 원리만 제대로 파악하면 합격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학원들이 아직 주제 강의나 논제 분석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아직 이 원리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다.
많은 것을 배워도 그것을 꿸 수 있는 원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다.
쓰는 원리와 생각하는 원리를 각각의 문제에 적용해서 문제를 풀다보면 배경지식이 부족해도 놀라운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이유는 논술의 출제과정에 있다.
논술은 지극히 주관적인 시험이다.
따라서 채점하기도 어렵다.
대학들이 흔히 '답이 있는 논술'을 추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답'만을 물어보진 않는다.
그렇다면 서술형 주관식이나 차이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출제는 다음의 도식을 거친다.
우선 '주제'를 정한다.
그 다음에 그 주제와 연관해서 묻고자하는 내용을 정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제시문을 선택한다.
제시문에서 근거를 도출해 답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인데,근거를 도출하는 과정이 너무 쉬우면 변별력이 생기지 않는다.
또한 너무 어려워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교수들이 이용하는 것이 사고의 도구이다.
'이 방법으로 생각하면 문제의 답을 도출해 낼 수 있다''이러한 사고를 어떻게 문제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식으로 문제를 구성하다보면 당연히 실제로 묻는 것은 답에서 원하는 어떠한 특정 내용이 아니라 사고의 방법이 되고 만다.
그 사고법을 알고 있으면 문제가 풀리고,모르면 못 풀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어려워도 변별력이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사고법은 만국 공통의 언어이니까.
논술 공부를 많이 해도 실력이 잘 늘지 않는 이유는 사고법 중심으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쓰기다.
묻고자 하는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쓸 수 없는 것을 묻는다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문제를 구성할 때는 쓰기를 반드시 염두에 두고 낸다.
즉,문제 구성의 과정은 교수가 스스로 답안지를 쓰면서 묻는 내용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다듬어지는 것이다.
이때도 쓰는 방식을 기준으로 문제를 다듬는다.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묻는 문제를 배제하는 과정이다.
이렇듯 문제 출제 과정이 사고법과 서술법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공부도 이 두 가지를 파악하는 과정 속에 있어야 한다.
또한 문제 형식 자체가 점차 표준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은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다음 주에는 논술 문제를 관통하는 원리를 중심으로 하여 기출문제들을 풀어보자. 자연히 논술 실력이 성장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권호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통합논술연구원
논술교육에 대해 말도 많고,탈도 많다.
대학들은 "논술 사교육이 입시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논술 전문학원들은 저마다 자기들이 가르치는 방식이 최고라고 주장한다.
이래저래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혼란만 가중되는 상황이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어떤 문제든 해답을 내리기 위해선 문제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문제만 정확히 인식한다면 해결은 논리적인 수순에 따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논술은 과연 학생의 무엇을 평가하고자 하는가'에 대한,지금까지 수없이 논의돼온 케케묵은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논의의 중심에는 대학들이 발표한 평가요소인 '논리력,사고력,표현력'이라는 불변의 단어들이 있어왔다.
사실,알아듣기는 해도 정확히 다가오진 않는 개념들이다.
보다 쉽게 정의해 보자.논술고사를 볼 때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와'어떻게 써야 하는가'이다.
대부분의 학원들이 전자에 중점을 두고 가르친다.
배경지식 강의(배경지식 강의가 아이들한테 인기가 없어지자 이름만 바꿔 전하는 주제강의),혹은 논제강의 등은 모두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강의들이다.
또한 논제 분석 강의나 독해 강의 역시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강의들이다.
그리고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부분은 첨삭 강의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번 강의에서는 이와 같은 논술교육의 두 축에 대한 원리들에 대해 다루어보고자 한다.
1. 어떻게 쓸 것인가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곤 한다.
자신이 A라고 생각한 것을 정확히 A로 쓰는 학생들이 드물다는 점이다.
생각한 것을 글로 써보면 영락없이 B나 C인 경우를 많이 본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은 대개 논술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자신이 생각한 바를 정확히 그 의미 그대로 살려서 쓰는 아이들을 보면 논술을 잘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글을 쓰기 전에 반드시 하는 일은 생각이다.
글이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생각해보면 A를 A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사실은 정확하게 A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고구마를 캐보면 하나의 줄기 아래 여러 개의 고구마가 한꺼번에 딸려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학생은 A를 생각한다고 하나 그 생각의 줄기 아래 수많은 생각들이 딸려오고 그 생각들을 미처 분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의도한 바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정답은 역설적으로 쓰기에 달려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어렸을 적,선생님은 이사가는 현장을 바라보며 한없는 경이를 느끼곤 했다.
(좀 오버인가?^^) 그 이유는 자그마한 1톤 트럭에 엄청난 짐을 싣는 것이 신기해서였다.
도저히 못 실을 것 같은 양의 짐을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은 능수능란하게 잘도 싣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짐을 실어야할지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법을 알기 때문에 그 방법대로 복잡한 짐을 크기와 길이 순으로 분류하고 재배열할 수 있는 것이다.
논술도 이와 같다.
'물건'들은 생각의 내용,'싣는 방법'은 표현에 속한다.
표현하는 방식을 제대로 익혀놓으면 생각을 분류하고,구분하기 쉽다.
따라서 그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도 쉬운 것이다.
복잡한 짐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남에게 보여주듯이 말이다.
때문에 생각을 잘하려면 역설적으로 쓰는 기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이 들린다.
도대체 쓰는 기술이 생각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은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성균관대 정시문제를 살펴보자.
⊙ 성균관대 2007학년도 정시논술
[문제 1] 아래 6개 제시문들은 빈곤국가를 돕는 일에 관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나타낸다.
이 두 가지 입장의 핵심 논지를 대비시켜 요약하시오.
<제시문 1>
가난과 기아는 인간에게 도덕적으로 행위하도록 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연민을 건드린다.
연민의 덕을 소유한 사람은 누구나 그러한 고통에 대해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그러한 인간의 고통을 보고도 외면한다면 그 사람은 매정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덕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궁핍과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보다 우리가 풍요로워야 할 필연적 이유가 없음을 고려하면,가난과 기아에 대해서 도덕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우리가 르완다나 잠비아에서 태어났더라면,우리는 열심히 일하고도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 전체가 누리는 풍요로움은 우리 자신이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행운에 의한 것이다.
특히 어린이들은 이 모든 것에 있어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 어린이가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기아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잘못으로 생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아와 가난에 처해 고통을 받고 있는 어린이들에 대해 도덕적 의무감을 느끼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
<제시문 2>
모든 인간은 천부적으로 자유를 가지고 태어난다.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인간의 자유는 타인 혹은 국가가 그 자유를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소극적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관점에서,인간은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을 소극적 권리를 지닌다.
인간은 오직 소극적 권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소극적 의무만을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 사회의 어느 개인이나 단체도 개인의 생명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것처럼,사유재산권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도덕적인 일,가령 가난한 국가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원조를 제공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가난한 국가나 계층을 돕는 일은 바람직하고 그렇게 하기를 바랄 수는 있지만,그렇다고 강요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전적으로 각 개인이 알아서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거기에 도덕적인 의무를 부여하거나 강요할 문제는 아니다.
<제시문 3>
부유한 나라의 부는 상당 부분 가난한 나라의 빈곤을 딛고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적 곤경에 처해 있으며 사회정치적 발전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도와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더해서 국제관계의 정치적,경제적,군사적,사회적 측면 등도 고려해야 한다.
부유한 나라가 국제관계의 역학을 도외시한 채 대외원조를 거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국의 이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규범 및 요청에 상응하는 경제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는 당장 여러 가지 가시적,비가시적 보상을 얻게 되거나,당장은 아닐지라도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에는 예전의 투자를 크게 상회하는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실용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부유한 국가의 경제원조는 빈곤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자국에도 이익이 된다.
<제시문 4>
아프리카의 예를 들어보자.아프리카를 빈곤에서 구해내기 위해서는 해마다 약 300억달러의 원조가 필요하다.
우리가 필요한 원조를 실제로 제공한다면 과연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인가?
과거의 예에 비추어 본다면 아프리카는 교육 수준이 너무 낮아 다른 곳에서는 성공했던 원조 방식조차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아프리카는 부패가 만연해 있고 권위주의에 물들어 있다.
아프리카에는 경제적 성장에 필요한 자유시장 제도와 근대적 가치가 결여되어 있다.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서는 도덕이 심각하게 붕괴되어 AIDS가 거의 통제불능 상태에 다다랐다.
설령 우리의 원조로 아프리카 아이들을 구한다고 가정해 보자.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인구폭발이 일어나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직면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물고기 한 마리를 던져준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들을 진정으로 돕는 일은 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필요한 비용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날 것이다.
<제시문 5>
강연을 하러 가는 길가에는 얕은 연못이 있고,내가 그 옆을 지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 나는 한 어린아이가 연못에 빠지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익사할 위험에 처했음을 알아차린다.
나라면 쉽게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신발과 바지는 흙탕물에 젖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집에 가서 신을 바꿔 신어야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할 것이다.
강연은 당연히 연기되거나 취소될 것이며,또 내 신발은 원래의 모양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의 가치보다 그런 작은 사정들을 중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추악한 일이 될 것이다.
어린아이를 구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어린아이를 못 본 체하고 강연을 하러간다면,나는 뭔가 심각한 잘못을 범한 것이다.
대다수의 부유한 사람들은 하찮은 물건이나 사치품을 사는 일에 돈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신발이 젖고 흙탕물에 바지가 더러워지는 것만큼이나 사소한 일이다.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갈 위험에 처해 있고,또 우리의 기부금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생명을 구하는 단체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가 앞에서와 같이 하찮은 일에 돈을 다 써버린다면 연못에 빠진 아이를 보고도 그냥 지나친 사람보다 우리 자신이 과연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제시문 6>
세계를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로 나누면,그중 3분의 2는 절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이고 단지 3분의 1만이 부자 나라에 해당된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부자 나라들은 부유한 사람들을 태우고 있는 하나의 구명정(lifeboat)이다.
이 구명정에 탄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구명정에 올라타려고 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부자나라로부터 도움을 구하려고 허우적대는 사람들이다.
구명정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명정에 태울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탄 구명정에 50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이 구명정에 10명을 더 태울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구명정 주변에는 100명의 사람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자신들도 구명정에 태워달라거나 최소한 자신들의 손이라도 붙잡아달라고 애원한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형제를 돌보라"는 기독교의 이상이나 "개인의 필요를 채워주라"는 막스의 이상에 따라서 그 사람들을 구한다고 생각해 보자.
물에 빠진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바가 모두 동일하고,그들 모두가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100명 모두를 구명정에 태워야 한다.
그럴 경우 결국 60명을 태울 수 있는 구명정에 150명이 올라타게 된다.
구명정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는다.
이것은 완전한 정의처럼 보이지만,사실은 완전한 재앙에 다름 아니다.
성균관대의 이 논술 문제는 학생들이 상당히 어려워했던 문제 중 하나이다.
간단히 풀어보면 제시문들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을 찬성하는 입장'이 제시문 1,3,5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 제시문 2,4,6이다.
여기까지는 모두 잘 파악한다.
하지만 이 다음이 쉽지 않다.
그냥 평면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입장에는 찬성과 반대 두 가지 입장이 있다.
찬성하는 입장은 제시문 1,3,5이고 반대하는 입장은 제시문 2,4,6이다.
우선 찬성하는 입장을 살펴보면 ….
무턱대고 이렇게 먼저 제시문 1,3,5의 내용을 나열하고,이어서 제시문 2,4,6의 내용을 나열한다면 이 요약은 십중팔구 어지러운 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쓸 내용은 이미 정해져 있다.
파악도 끝났다.
그러나 그대로 쓰자니 자신이 파악한 바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 같지 않다.
왜 그런가?
예를 들어 보자.신이와 준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두 사람의 특성을 서로 비교하는데 철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이는 머리가 길고,준이는 장난감을 판다.
' 다시 말해보자.'신이는 키가 크고,준이는 키가 작다.
' 위의 대비와 지금 것 중 어느 것이 효과적인 대비라고 생각하는가? 후자다.
그 이유는 처음은 두 사람의 다른 점을 기준 없이 대비한 경우이고,아래 것은 '키'라는 기준을 정하고 대비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교를 서술할 때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이 나온다.
'기준을 정하라'이다.
'기준'을 중심으로 서술하면 효과적인 비교를 할 수 있다.
때문에 위의 문제도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에 대한 입장 차이'라는 큰 틀 속에서 세부 기준을 중심으로 글을 쓰면 효과적인 대비를 할 수 있다.
우선 <제시문 1>을 살펴보자.<제시문 1>의 지은이는 오늘날 각국이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나뉜 이유가 우연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때문에 '우연히' 잘 살게 된 나라들이 '우연히'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 것은 도덕적 의무라고 말하고 있다.
<제시문 2>의 지은이는 인간은 소극적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무도 소극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가난한 국가나 사람들을 돕는 것은 의무사항이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두 제시문의 기준은 '부유한 국가가 빈곤한 국가를 도울 의무가 있는가?'로 삼을 수 있다.
이 기준을 중심으로 각각 주장과 근거를 요약하면 될 것이다.
<제시문 3>의 지은이는 가난한 나라들이 부유한 나라들의 부를 이루는 희생양이 되었다고 본다.
때문에 가난한 나라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본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를 돕는 것이 부유한 나라들 입장에서도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시문 4>의 지은이는 아프리카가 가난한 이유를 아프리카의 탓으로 돌린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아프리카를 단순히 원조해 주는 일은 선진국들에도 심각한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두 제시문의 기준은 '가난한 나라들이 가난한 이유와 이들에게 원조를 해 줄 경우 선진국들이 얻는 대가'가 된다.
역시 이 기준을 중심으로 주장과 근거를 요약하면 된다.
<제시문 5>와 <제시문 6>은 여러분이 한번 해보길 바란다.
어떤가? 전술한 '비교한 내용을 서술할 경우에는 기준을 중심으로 서술하라'가 여러분이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주었는가? 실제 이 기술을 가지고 '비교하라'는 문제를 풀면 생각도 훨씬 쉽게 되고 내용도 더욱 풍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어려운 제시문과 쉬운 제시문을 비교할 경우 쉬운 제시문 속에서 기준을 찾아서 어려운 제시문에 적용을 하면 독해도 쉬워지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쓰는 기술이 생각을 끌어내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밖에도 쓰는 기술은 다양하다.
지면의 한계로 다 보여주지 못하기에 대표적인 경우 하나를 예로 들었을 뿐이다.
실제 강의를 할 때 나는 이렇게 쓰는 기술을 중심으로 많이 강의한다.
가령 '서술원칙 10계명' 등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전수(傳授)를 하면,전날까지 헤매던 아이들도 생각을 정리해서 논제의 답을 도출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서술하는 것이 쉬우니 생각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생각도 결국 머릿속에서 서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내용이 머릿속에서 쉽게 서술되니,다른 내용들도 쉽게 나오는 이치다.
이어령 교수의 다음 말은 참조할 만하다.
"창조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라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창조적 발상의 근원은 '무엇을 끄집어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끄집어 낼 것인가'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내 경험을 놓고 말하자면,서울 올림픽 개회식 때 굴렁쇠 퍼포먼스를 생각해 낸 것이 그렇다.
동양의 회화적 특성이 여백의 미에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바로 그 여백의 사상을 텅 빈 운동장에서 굴렁쇠를 굴리는 소년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생각의 탄생'(에코의 서재) 추천사에서
2. 무엇을 쓸 것인가.
쓰는 기술의 향상이 사고의 발달을 가져온다는 점을 인지한다 하더라도,쓰는 기술이 만병 통치약은 아니다.
사고에는 쓰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대개 학생들을 가르칠 때,학생들이 사고할 수 있는 툴(tool)을 모르기 때문에 사고를 잘 못하는 경우를 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고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사고 자체가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이라고 생각하며 겁을 먹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해 본적이 없어서이다.
주입식 교육으로 답은 많이 외웠어도 생각하지 않은 습관들이 학생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생각을 하라는 요구는 많이 받았어도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고를 어려워하는 경우다.
때문에 생각하는 기술을 가르쳐주면 이 부분 역시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실제 올해 베스트셀러였던 '생각의 기술'을 보면 13가지 생각의 도구들이 나온다.
천재들과 일반인들의 차이는 이 도구를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달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논술도 마찬가지이다.
사고의 툴만 제대로 가지고 있다면 훨씬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비판적 사고의 9요소에 집중함으로써,순전히 연상적이고 미숙련된 사고로부터 개념적이고 조직화된 사고로 보다 용이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9요소들은 함께 작용하면서,사고를 모양짓고 또 이성을 사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논리를 제공한다.
이 요소들은 목적,문제,개념,전제,정보,결론(추론),관점,함축,맥락 등으로,학술적인 글읽기와 글쓰기에 필요한 사고력의 주요 핵심을 이룬다.
학술적인 글쓰기를 위해서 요구되는 비판적인 사고 능력이란 사고의 9요소들을 적절한 9 기준들에 맞춰 비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 기준들은 분명함,정확성,명료성,적절성,중요성,논리성,폭넓음,충분함,깊이 등으로,이 기준들이 사고의 요소들이 만족시켜야 할 보편적인 지적 기준이다."
- 김영정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철학과 교수,
'비판적 사고와 학술적 글쓰기' 중
현재 논술교육을 이끌고 있는 김영정 교수도 사고의 9가지 요소를 말하며 사고의 툴을 중요시하고 있다.
이 사고법 말고도 비교,대조 사고법,이미지 사고법,그리고 이미 너무 유명한 브레인 스토밍 등은 논술 실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사고법들이다.
사고법들이 실제 논술 문제에 어떠한 도움을 주는 가는 다음 주에 살펴보기로 하자.
기출문제를 사고법을 적용해 풀다보면 여러분도 사고의 도구를 계속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지상특강(상)을 마치면서 이 연재를 시작한 의도는 오프라인 강의로 진행하였던 '논술에 흐르는 원리'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논술 문제엔 원리가 있다.
이 원리만 제대로 파악하면 합격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학원들이 아직 주제 강의나 논제 분석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아직 이 원리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다.
많은 것을 배워도 그것을 꿸 수 있는 원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다.
쓰는 원리와 생각하는 원리를 각각의 문제에 적용해서 문제를 풀다보면 배경지식이 부족해도 놀라운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이유는 논술의 출제과정에 있다.
논술은 지극히 주관적인 시험이다.
따라서 채점하기도 어렵다.
대학들이 흔히 '답이 있는 논술'을 추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답'만을 물어보진 않는다.
그렇다면 서술형 주관식이나 차이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출제는 다음의 도식을 거친다.
우선 '주제'를 정한다.
그 다음에 그 주제와 연관해서 묻고자하는 내용을 정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제시문을 선택한다.
제시문에서 근거를 도출해 답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인데,근거를 도출하는 과정이 너무 쉬우면 변별력이 생기지 않는다.
또한 너무 어려워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교수들이 이용하는 것이 사고의 도구이다.
'이 방법으로 생각하면 문제의 답을 도출해 낼 수 있다''이러한 사고를 어떻게 문제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식으로 문제를 구성하다보면 당연히 실제로 묻는 것은 답에서 원하는 어떠한 특정 내용이 아니라 사고의 방법이 되고 만다.
그 사고법을 알고 있으면 문제가 풀리고,모르면 못 풀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어려워도 변별력이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사고법은 만국 공통의 언어이니까.
논술 공부를 많이 해도 실력이 잘 늘지 않는 이유는 사고법 중심으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쓰기다.
묻고자 하는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쓸 수 없는 것을 묻는다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문제를 구성할 때는 쓰기를 반드시 염두에 두고 낸다.
즉,문제 구성의 과정은 교수가 스스로 답안지를 쓰면서 묻는 내용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다듬어지는 것이다.
이때도 쓰는 방식을 기준으로 문제를 다듬는다.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묻는 문제를 배제하는 과정이다.
이렇듯 문제 출제 과정이 사고법과 서술법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공부도 이 두 가지를 파악하는 과정 속에 있어야 한다.
또한 문제 형식 자체가 점차 표준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은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다음 주에는 논술 문제를 관통하는 원리를 중심으로 하여 기출문제들을 풀어보자. 자연히 논술 실력이 성장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권호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통합논술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