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18. 왜 자장면 곱배기는 있는데 군만두 곱배기는 없을까?
가격차별


식욕이 왕성한 고등학생이면 중국음식점에서 자장면을 곱배기로 주문할 것이다.

곱배기는 '보통'보다 500원 정도 비싸지만 양은 1.5배 이상 된다.

곱배기와 보통의 100g당 단위를 따져보면 곱배기가 더 싸다.

자장면 보통을 주문하면 손해라는 계산인데,그렇다고 무작정 곱배기를 시켜 남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반면 군만두는 한 접시에 10개가 나올 뿐 곱배기가 없다.

더 먹고 싶으면 한 접시 더 주문해야 한다.

중고생들은 극장에서 학생 할인으로 1000~1500원가량 싸게 영화를 볼 수 있다.

또한 비행기 이코노미클래스는 똑같은 자리여도 구입 방법에 따라 요금이 몇 배씩 차이가 난다.

주변에 보면 이렇듯 무수한 차별이 존재한다.

왜 같은 재화·서비스에 대해 다른 가격을 책정하는 것일까? 그런데도 불평하는 소비자는 없다.

알수록 재미있는 '가격차별(price discrimination)'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 곱배기와 더블버거의 경제원리

자장면 곱배기에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가격차별의 원리가 숨어 있다.

사람마다 먹는 양이 달라,먹성 좋은 사람은 자장면 한 그릇으로는 양이 모자라고,두 그릇을 사먹기엔 돈이 모자라거나 아까울 것이다.

중국집 주인 입장에선 자장면 보통에 면과 자장을 얹어줘도 비용 증가는 미미하고,어차피 한 번만 서빙하면 된다.

그렇다면 대식가들이 만족할 곱배기 메뉴를 제공해 수익을 더 늘리는 게 이익이다.

하지만 모든 음식 메뉴가 이런 것은 아니다.

주로 자장면 냉면 같은 면류나 설렁탕 같은 탕류처럼 둘이 나눠먹기 힘든 음식에서만 곱배기가 존재한다.

햄버거 가게에도 일종의 곱배기인 더블버거가 있다.

가격은 싱글버거보다 조금 비싼 수준이지만 고기 패티가 두 장 들어간다.

그런데 더블버거의 빵은 네 조각이 아니라 두 조각(빅맥은 중간에 하나 더 넣어서 세 조각)이다.

자장면을 나누기 힘들 듯 더블버거도 칼 없이는 나눠먹기 힘들도록 한 것이다.

손님들이 싱글버거 두 개를 사지 않고 더블버거 하나를 사서 나눠 먹을 테니까.

⊙ 할인쿠폰,학생할인,하드커버…

가격차별은 생산자(판매자)에겐 수익을 높여주는 동시에 일부 소비자에게도 이익이 된다.

신문 잡지에는 각종 상품의 할인쿠폰이 들어 있다.

할인쿠폰을 오려오는 사람에게는 정가에서 얼마를 깎아주므로 이 역시 가격차별의 일종이다.

할인쿠폰을 통해 생산자는 고객을 시간이 많은 사람과 바쁜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시간이 많은 사람은 대개 바쁜 사람보다 구매할 의사가 적거나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인 경우가 많다.

할인쿠폰을 챙겨오는 수고를 한 사람에게 에누리해 고객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이 같은 가격차별 전략은 영화나 출판에서도 나타난다.

극장들은 학생할인과 조조할인을 제공한다.

호주머니가 궁한 학생이나 싼 것을 좋아하는 부지런한 사람(early bird)을 끌어모아 빈 관람석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출판사들이 먼저 비싼 하드커버(hard cover)를 내고,한참 뒤에 값은 싸지만 품질은 다소 낮은 페이퍼백(paperback)을 판매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항공사들은 토요일 저녁(가족·연인과 보내야 할 텐데) 목적지에서 체류하는 조건의 항공요금은 싸게,금요일에 돌아오는 티켓은 비싸게 매기는 차별 전략을 쓴다.

이를 통해 비싼 요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바쁜 비즈니스맨과,시간 여유가 있어 싼 요금만 찾는 관광객을 구분해 티켓을 팔 수 있다.

심지어 1850년대 프랑스의 3등 열차에는 창문이 없어 승객들의 얼굴과 옷이 증기기관의 매연으로 까맣게 됐다고 한다.

⊙ 아무도 가격차별을 불평하지 않는다

과거엔 주로 독점적인 생산·판매자의 이익극대화 전략으로 가격차별이 활용됐다.

하지만 요즘엔 독점이 아닌 경쟁구도에서도 다양한 가격차별 전략이 구사되고 있다.

차별화된 가격은 생산자에게는 더 많은 이익을,소비자에겐 더 많은 소비 기회를 주므로 사회 전체적으로도 후생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가격을 차별해도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를 이론적으로 보면 소비자들의 '유보가격'(지불할 용의가 있는 가격 상한선)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유보가격이 높은 사람,즉 비싸도 꼭 사고 싶은 사람은 어떤 가격조건이든 산다.

반면 싸게 구매하려는 사람은 가격 대신 시간,노력 등 다른 비용을 치르고 낮은 품질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누구나 원하는 수준이 다르다는 점을 가격으로 충분히 가려낼 수 있다.

그래서 시장경제의 가격시스템은 어떤 경제 형태보다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공평은 똑같이 나누는 게 아니라 능력만큼,원하는 만큼 나누는 것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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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18. 왜 자장면 곱배기는 있는데 군만두 곱배기는 없을까?
'장애물'을 이용한 가격차별에도 등급이 있다


가격차별은 여러 기업이 경합하는 자유경쟁 시장에선 어렵다.

생산비가 동일한 제품에는 동일한 가격을 매긴다는 '일물일가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만약 비싼 가격을 지불할 소비자만 골라가며 팔았다간 같은 제품을 싼 값에 내놓은 경쟁자들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점이 있거나 장애물을 이용해 고객을 구분할 수 있을 땐 세 등급의 가격차별이 가능하다.

먼저,1급 가격차별은 모든 고객을 따로 취급해 다른 가격을 받는 것이다.

예컨대 첨단기술,첨단무기 생산자는 구매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어 가격협상의 칼자루를 쥘 수 있다.

퀄컴의 휴대폰칩은 국가별·메이커별로 로열티가 조금씩 다르다.

2급 가격차별은 고객은 세분화 할 수 없지만 구매량·사용량에 따라 가격을 달리 매기는 경우다.

많이 사면 깎아주는 재화들과,반대로 많이 쓸수록 단위당 요금이 커지는 전기,수도,가스가 여기에 해당된다.

전기,수도는 누구에게나 공급돼야 하지만 집집마다 계량기를 통해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어 가격차별이 가능해진다.

주위에서 가장 흔한 게 3급 가격차별이다.

이는 고객의 직업,취향,성별,나이나 시간·공간을 구분해 다른 가격을 매기는 것.에이즈 치료제를 선진국에선 비싸게,후진국에선 싸게 팔면 공간을 나눈 것이고,놀이공원에서 오후 5시 이후엔 반값에 입장시켜 주는 것은 시간을 세분화한 것이다.

이 밖에 학생할인과 조조할인,하드커버와 페이퍼백,할인쿠폰,비행기의 퍼스트·비즈니스·이코노미클래스 등이 3급 가격차별에 해당된다.

이런 가격차별을 하려면 고객을 세분화할 '장애물(hurdle)'이 필요하다.

장애물이란 그것을 넘는 소비자에겐 아무런 비용 부담을 시키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을 유보가격에 따라 완벽하게 분리하는 장치다.

즉,쿠폰 소지,학생이란 신분,아침 일찍 줄을 서는 것 등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려내는 장애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