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Money] 외환위기이후 10년 주가는…
상장기업 시가총액 60조서 1100조원으로 껑충


적대적 M&A·신규투자 위축등은 문제

1997년 11월21일은 지금도 국민들에게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된다.

바로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날이다.

이날 이후 IMF의 요구에 따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국민들은 그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길거리에 내몰리고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문호가 크게 개방되면서 외국 기업들은 앞다퉈 헐값에 나온 국내 기업들을 사들였다.

물론 그 혹독한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경제의 체력이 한층 탄탄해진 것도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의 변화는 실로 크다.

많은 개선이 있었던 반면 문제점도 적지 않았다.

이 과정을 가장 쉽고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마 주식시장일 것이다.

주가지수 변천사를 통해 나타난 지난 10년간의 변화를 짚어보자.

⊙ 환란과 함께 찾아온 주가 폭락

1996년 말 600포인트대에 머물던 종합주가지수(현 코스피지수)는 1997년 초 700선을 돌파하면서 신년에 대한 희망을 밝혔다.

주가는 6월 들어 799까지 치솟았다.

당시 상반기 경제성장률이 6%대로 순항했고 물가도 안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외환위기의 징후가 짙어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7월 기아가 부도를 맞은 것이 그 신호였다.

10월에는 S&P,무디스 등 해외 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과 국내 주요 기업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끌어내렸다.

이후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한국을 탈출하면서 주가는 미끄럼을 탔다.

10월 600선,500선이 차례로 무너졌고 구제금융을 신청한 다음날인 11월22일부터 주가는 9일간 25%나 붕괴됐다.

1997년의 지수 하락폭은 42.4%로 증권거래소가 생긴 1956년 이후 사상 최악이었다.

해가 바뀌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1998년에는 아시아 금융불안이 가중된 데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을 선언하자 투자 심리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이해 6월 주가지수는 277.37까지 주저앉았다.

⊙ 잇따른 버블,그리고 붕괴

위기에 빠진 증시를 회복시킨 것은 단연 '실적'이었다.

상장사들의 경영 실적은 1998년 크게 개선된 모습을 보였고 1999년에는 사상 최대 매출기록을 갈아치웠다.

원화가치가 떨어져(원·달러 환율이 올라) 수출 경쟁력이 커진 상황에서 세계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선 덕이다.

이후 세계적인 IT(정보기술) 붐은 달아오른 국내 증시에 기폭제로 작용했다.

1999년 7월에 증시는 1000선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불과 1년8개월 만이다.

상승세의 주역은 개인투자자였다.

당시 개인투자자들이 주도했던 코스닥 시장은 광풍(狂風)에 가까웠다.

2000년 연간 코스닥 지수 상승률은 305%.

당시 주가가 4550원이던 새롬기술이란 종목은 48일 만에 4900% 오른 23만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부풀어오른 풍선(주가 거품)은 2000년 4월 결국 터졌다.

미국 다우지수 폭락을 시작으로 전 세계 증시가 동반 내리막길을 걸은 것이다.

2000년 1월 1066이던 종합주가지수는 그해 10월 483까지 밀려났다.

이후 증시는 2002년 개인 대출 확대와 카드사들의 신용카드 남발이 빚은 내수 호황으로 다시 1000선을 노크하는 듯 했지만 이 역시 수많은 신용불량자만을 남긴채 이듬해 초 다시 513으로 밀려났다.

⊙ 증시 외형은 커졌지만…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증시는 2003년 하반기부터 중장기 오름세를 이어갔다.

2003년 말 800선에 다다른 증시는 2005년 초 다시 1000선을 돌파했다.

지난해 숨고르기를 거친 후 올 들어서는 사상 처음으로 2000선마저 돌파했다.

전 세계 경기 호황을 바탕으로 글로벌 증시가 동반 랠리(강세)를 보인 데다 펀드 열풍에 힘 입은 기관 자금이 대거 주식을 사들이며 증시를 끌어올렸다.

최근 주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에 따른 글로벌 신용경색 우려에도 1800선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외형만 보면 한국 증시는 외환위기의 참담함을 딛고 지난 10년간 비약적 성장을 했다.

당시 60조원이던 상장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최근 1100조원 수준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안전 지향주의,그리고 외국인 투자 확대와 함께 나타난 주주 중시 경영,적대적 M&A(인수합병) 위협 증가는 또 다른 문제점을 낳았다.

가장 큰 문제는 증시가 그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데 있다.

원래 주식시장은 기업들이 기업 운영 자금을 조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6년까지 국내 기업들이 주주를 위해 자사주를 취득하거나 배당을 하는데 쓴 돈이 69조원이다.

증시로부터 기업이 조달(기업공개,유상증자 등)한 자금 30조원의 두 배를 넘었다.

돈을 끌어쓰기보다는 오히려 주식시장(주주)에 돈을 푼 셈이다.

국내 기업 특유의 공격적인 신규 사업 투자도 과거와 달리 크게 위축됐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안정성'과 '기업의 투명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나타난 역효과다.

고경봉 한국경제신문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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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시가총액 순위에도 큰 변화 … 10년전 한전 1위, 지금은 삼성전자

지난 10년간 국내 기업들의 시가총액 순위도 상당한 변화를 보였다.

1997년 말 당시 국내 시가총액 1위 기업은 한국전력으로 9조8000억원이었다.

포항제철(현 포스코)은 4조3000억원,삼성전자는 3조7000억원이었다.

최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80조원,포스코는 50조원 수준이다.

그동안의 기업 성장을 감안하더라도 당시 한국기업들의 가격이 얼마나 헐값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외환위기 당시 시가총액 상위종목으로 위세를 과시했지만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업들도 적지 않다.

1997년 말 시가총액 8위였던 LG반도체는 현대전자산업(현 하이닉스)에 흡수됐고 17,18위였던 조흥은행과 장기신용은행도 각각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에 합병되면서 사라졌다.

또 7위였던 데이콤(현 LG데이콤)은 지금 100위권 수준에 머무는 형편이다.

1999년에는 IT 붐을 반영하듯 한국통신(현 KT)이 시가총액 1위 자리에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부터는 삼성전자가 줄곧 1위를 수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