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시장경제, 가장 정의롭고 효율적인 시스템
좋은 상품과 서비스가 곧 이타적 행동


'악한 자들이 끼칠 수 있는 해악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

시장경제에 대해 노벨 경제학상(1974년)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설명한 말이다.

하이에크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탄생해서 그렇지 누가 발명한 것이라면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찬사도 보냈다.

20세기 최대 실험이었던 공산주의(계획경제) 실험이 참담한 실패로 종말을 고하고,잠자던 중국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는 데서 그 효용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시장경제는 유사 이래 가장 정의로운 경제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는 매일 쓰는 제품을 어떤 인종,종교,문화를 가진 사람이 만들었는지 따져서 차별하지 않는다.

시장경제 탄생과정과 왜 시장경제가 정의로운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 근대의 산물,시장경제의 탄생

주경철 서울대 교수는 저서 「테이레시아스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인류는 평균적으로 계속 굶주려 왔다"고 지적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20세기 초까지도 흉년,재난,전쟁 등으로 식량 부족사태가 벌어지면 인육을 먹는 사례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수만년 동안 지속된 기아에서 인류를 해방시킨 것은 물질적 풍요를 가능케 한 시장경제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필요한 욕구(재화)를 충족시키는 방법은 경제의 발전사라고 할 수 있다.

선사시대엔 주로 채집 수렵,고대엔 전쟁 약탈이 주된 수단이었다.

실크로드,카라반,화폐의 역사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제한적이지만 '교환·교역'이 있었고 중세 들어 더 확대되기 시작했다.

초기단계의 시장이 존재했다는 얘기다.

근대 들어 지리상의 발견과 항해술이 발전하고 중상주의적 교역이 본격화되면서 시장다운 시장의 형성을 가능케 했다.

자본을 축적하게 된 시민계급의 등장으로 정치적·경제적 자유도 신장됐고,산업혁명을 토대로 '자발적이고 광범위한 교환'에 의한 시장경제가 본격 작동되기 시작했다.

즉 시장경제는 근대의 산물이란 이야기다.

⊙ 시장은 가장 자연스런 시스템

[Cover Story] 시장경제, 가장 정의롭고 효율적인 시스템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무시하거나,제도·체제·사상에 의해 개조할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설계주의적 사고는 인위적이라 할 수 있다.

소설가 복거일씨는 이를 "중력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반면 시장경제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을 바탕으로 서서히 형체를 갖춰온 '가장 자연스런' 시스템이다.

즉 개개인의 이기주의가 상호적 이타주의로 진화해온 과정이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는 본래 영국 글래스고 대학에서 도덕철학을 강의했다.

그는 「국부론」(1776)을 쓰기 16년 전 「도덕감정론」(1759)을 써서 인간 본성에 대해 철저히 탐구한 도덕철학자였다.

스미스의 결론은 인간이 이기적이지만 개개인의 이해(利害)가 궁극적으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사회생물학자들이 스미스의 결론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언론인이자 펜실베이니아대 객원교수인 로버트 라이트는 「도덕적 동물」(1994)에서 각 개체들의 '미시적 이기주의로부터 거시적인 조화가 발현되는 과정'을 게임이론의 '되갚기 전략(tit for tat)'을 토대로 설명하고 있다.

협조했을 때 협조를 기대하고,보복했을 때 보복의 두려움을 갖게 됨으로써 사회적 조화가 나온다는 이야기다.

이는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연상시키며 도덕,윤리의식,시장규율의 기초가 된다.

⊙ 시장경제는 가장 정의로운 제도

제대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자본·재화·서비스는 시민들이 분산 소유하게 된다.

이는 과거 고대,중세의 제정·왕정과 달리 권력 분산의 상징이다.

자본의 소유자가 많아질수록,즉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일수록 민주주의의 뿌리가 탄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빈곤층도 민주주의 하에선 투표를 통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길이 있다.

또한 시장경제에선 물건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남녀·인종·종교·장애 등 그 어떤 것도 선택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소비자들은 싸고 품질 좋으면 스스로 사서 쓴다.

이슬람교도가 만들었다고 기피하지 않고,흑인이 만들었다고 매장에서 치우지도 않는다.

인류 역사상 차별이 없는 경제시스템은 존재하지 못했다.

시장이 없어지면 계급과 차별이 되살아난다.

시장경제는 오늘날 개개인에게 마치 물,공기처럼 익숙하게 체화돼 그 장점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시장경제가 효율적이면서 정의롭다는 사실을 보통사람들이 정확히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개개인의 능력차,사회 문화적 차이 등으로 생기는 경제적 불평등을 빌미로 아직도 사회 일각에선 시장경제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하지만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두뇌로 생각해낸 인위적 체제가 아니라 자연스레 탄생한 시장경제 체제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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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시장경제, 가장 정의롭고 효율적인 시스템
로베스피에르가 우유값을 반으로 내렸더니…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로 엄청난 대가를 치른 대표적 사례가 로베스피에르(1758~1794)의 '반값 우유'이다.

로베스피에르는 1798년 자코뱅당 지도자로 프랑스혁명을 이끈 인물이지만 공포정치를 펴다 결국 자신이 만든 단두대에 목이 잘린 인물이다.

프랑스혁명기에 시민들은 생필품 가격이 오르자 불평이 많았다.

로베스피에르는 대중의 인기를 인기를 끌기 위해 "우유값을 반으로 내리라"고 명령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단두대로 보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정부가 우유값을 원가 이하로 동결해 버리자 농민들은 젖소 사육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유 공급량이 줄어 암시장에서 우유값은 더욱 뛰게 됐다.

로베스피에르가 우유 공급이 줄어든 이유를 묻자 농민들은 건초값이 비싸 수지를 못 맞춘다고 변명했다.

그러자 로베스피에르는 이번에는 건초값을 내리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건초재배 농민들은 건초생산을 중단하거나 줄이고 토지를 다른 용도로 전환해 이번에는 건초값이 폭등했다.

결국 건초 공급도 줄고,젖소 공급도 줄어 반값으로 내린 우유값은 예전 가격의 10배로 폭등했다.

가격규제 이전에 어린이까진 먹일 수 있었던 우유가 이제는 갓난아이에게도 먹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대중의 인기를 상실한 그는 반대파들에 의해 단두대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루소의 계몽사상 숭배자인 로베스피에르 자신은 검소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며 오로지 혁명에 헌신한 인물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이면서 시장경제 원리를 몰라 불행을 자초했다.

"선한 의도가 오히려 나쁜 결과를 빚고,천사가 지옥을 만든다"는 경구를 떠올리게 하는 일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