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높다'는 표현은 엄밀히 말해 의미 상으로 모순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인 듯합니다.

'표준 국어대사전'에서는 그러한 쓰임을 수용하여 '○○'의 의미로 이 말이 사용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묻고 답하기'에 올라 있는 한 구절이다.

요지인즉 문제가 되는 이 말이 의미 상으로는 모순이 있지만 사람들이 워낙 많이 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표준 국어대사전에서도 이를 단어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 말의 정체는 '난이도(難易度)'이다.

뒤에서는 이 말이 '난도(難度)'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고3 수험생과 가족들을 울리기도 하고 웃게도 하는 말이 '난이도'이다.

지난주에는 2008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이 있었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난이도가 비교적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말 중에 두 가지 점에서 특이한 단어다.

하나는 의미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표현('난이도가 높다' 즉 '어렵고 쉬운 정도가 높다'란 표현)을 만드는 이 말이 당당히 단어로 사전에 올라 있다는 점이고,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표현의 문제점을 최근에 와서야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난이도'는 1999년 국립국어원에서 간행한 표준 국어대사전에는 물론 그보다 훨씬 전인 1991년 한글학회나 금성출판사에서 펴낸 '우리말 큰사전''국어대사전' 등에 이미 단어로 처리돼 올라 있다.

1990년대 훨씬 이전부터 우리가 많이 써 온,익숙한 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단어가 만드는 표현이 안고 있는 의미구조 상의 문제점은 비교적 최근 들어 제기된 것 같다.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의 '묻고 답하기' 코너를 통해 보면 이 난이도의 쓰임새에 대한 질문이 2005년부터 올라와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시험 문제의 난이도를 조정하다' 식으로 쓰이는 이 말은 때로는 '난이도가 높다/낮다'에서부터 심지어 '난이도 있는 문제''난이도가 어렵다/쉽다'로까지 쓰이기도 한다.

'난이도 있는 문제'라고 하면 무슨 뜻으로 쓴 것일까.

아마도 이는 고난도 문제,즉 어려운 문제를 가리키는 말로 쓴 표현인 듯하다.

'인지도,청렴도,기여도,완성도,성취도….

' 우리말에는 이처럼 '도(度)'와 결합하는 말이 많다.

이때의 '도'는 '어떠한 정도나 한도'를 뜻하는 명사로 앞말과 어울려 합성어를 만든다.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에 이들은 서술어로 '높다/낮다'가 가장 잘 어울린다.

그런데 '난이도'는 이들 구조와는 좀 다르다.

난이도는 대립하는 말끼리의 병렬 구조에 '도'가 결합한 형태이다.

가령 좋음과 싫음을 나타내는 말은 '호오(好惡)'인데 그렇다고 '좋음과 싫음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로 '호오도'라고는 하지 않는다.

'호감도'라고 할 것이다.

따뜻한 기운과 찬 기운을 아울러 이르는 말은 '온냉'이다.

이때도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를 가리켜 '온냉도'라고 하지 않고 그냥 '온도'란 말을 쓴다.

마찬가지로 '난이'란 말이 있지만 여기에 '도'가 붙을 때는 '난이도'가 아니라 고도,습도,온도,속도,진도라고 하듯이 '난도'라는 말을 쓰는 게 자연스럽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