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회창을 지지하는가?

'보수의 대 분열','창 꽂힌 대선','대선 불확실성 속으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를 다루는 신문기사의 제목들이다.

민주주의의 기준에서 보면 변칙이 분명한 그가 여권 후보를 단번에 제치고 지지율 20% 초반의 단독 2위로 올라섰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비록 1위 이명박 후보의 40%에는 근접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의 지지자 상당수가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과 겹친다는 점 때문에 언론은 그를 대선의 가장 강력한 변수로 평가한다.

국민들의 의견도 다양하다.

언론은 일반 시민들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했다.

신문에 인용된 유권자들 세 명을 골라 상상력을 동원해 더 자세하게 서술해 보았다.

△박미숙(가명·28세·회사원·미혼·대전 거주)=인터넷은 매일 회사에서 이용하며 정치 기사보다는 연예인 기사를 많이 클릭한다.

평소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최근 주변 친구들의 취직문제로 경제상황에 관심이 많다.

이번 12월에는 별일이 없으면 대통령 투표에 참여할 계획이다.

그러나 추운 날씨에 동사무소 앞에서 길게 줄을 서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김철우(가명·39세·전문직·기혼·서울 거주)=시간이 없어도 정치면 기사는 꼭 챙겨본다.

가장 중요한 정치현안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시절 몇 차례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투표를 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병석(가명·48세·상인·기혼·대구 거주)=뉴스는 신문보다는 TV로 보고 듣는다.

인터넷은 사용하지 않는다.

손님들과 정치문제를 놓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장 중요한 현안은 안보라고 생각한다.

가게를 비울 수 없어 매번 투표에 참여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투표에는 가게를 닫고서라도 참여할 예정이다.

이들 세 명의 유권자 중에서 이명박 후보보다 이회창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대구의 이병석 씨를 꼽았다면 다수의 생각과 비슷한 선택을 한 셈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하면 셋 중에서는 박미숙씨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대구지역에서 이회창씨 지지는 높지만 이명박 후보와 지지율과 격차가 크다(이회창 29%,이명박 47%).

이회창씨와 이명박씨의 지지율 격차가 가장 미미한 지역은 대전·충남이다(각각 28%,30%).

연령대별 지지율에서는 30대에서 이회창씨의 지지율이 유난히 낮은 것(15%)을 빼곤 전 연령에서 비슷했다(22~24%).

20대라고 해서 덜 지지하지도 40,50대라서 더 지지하지도 않는다.

서울에 살며 30대인 김철우씨가 이회창 후보보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셋 중에서는 가장 크다('2007년 대선관련 17차 여론조사' 동아일보,KRC).

⊙전형(典型)의 함정

왜 사람들은 대구에 사는 이병석씨가 이명박 후보보다 이회창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짐작할까?

언론이 묘사하는 전형적인 인물에 이병석씨는 가깝고 박미숙씨는 멀기 때문이다.

언론은 대구,경북에 거주하며 안보에 관심이 많은 중년 이상이 이회창씨를 지지하는 보수성향의 유권자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만 보면 언론의 추정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의외로 20대와 50대에서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율 격차는 미미하다.

이회창 후보에 대해 강력한 선호를 보이는 그룹은 차라리 대전과 충청의 유권자들이라고 평가하는 게 타당하다.

수도권의 30대에서 반(反) 이회창 기류도 뚜렷하다.

위의 질문은 사실 좀 짖궂다.

이미 거주 지역과 연령별로 지지여부에 대한 통계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바탕이 되는 통계(기저율 혹은 사전확률)를 무시하고 전형만을 따져 습관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대표성(representativeness)의 오류'라고 한다.

예를 들면 남자 선생님은 5분,여자선생님은 40분이라는 사전 정보가 주어졌어도 주말에 등산을 한다든가,4륜 구동 지프차를 몬다든가,수학이 담당 과목이라든가 하는 전형적인 특징을 나열하면 사람들은 통계수치에 구애받지 않고 남자 선생님에 대한 묘사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이면서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카네만과 트발스키의 연구에 의하면 '대표성의 오류'는 일반인뿐만이 아니라 통계를 공부한 대학원생이나 오류가 때로 치명적일 수 있는 의사들에게서도 쉽게 발견된다고 한다.

새벽 두시에 한 청년이 응급실로 호송된다.

면도도 하지 않았고 옷도 낡았다.

시내 미술관 앞 계단에서 정신을 잃고 앉아 있는 채 발견되었다.

분주한 응급실을 지키는 레지던트는 이 청년이 술이나 마약에 절었고 아침이면 깨어나 제 발로 걸어 나가리라 예측한다.

스스로를 지키지 않는 이런 구제불능을 위해 귀중한 시간을 투입하기 어렵다고 판단할지 모르지만 그는 당뇨성 혼수상태에 빠진 유망한 화가지망생일 수도 있다.

(제롬 그루프먼,'닥터스 싱킹')

대부분의 시간을 정치에 관한 정보에 쏟아 붇고 있는 정치부 기자들이 통계수치와 다른 말을 마음껏 지어낸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마중물논술] (30) 정말 나이 드신 분들이 이회창을 지지하는가?
⊙자폐 천재

스티븐은 네 살이 되어도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주변 환경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자폐아다.

그러나 스티븐의 유일한 활동인 낙서는 놀라웠다.

도저히 일곱 살짜리의 그림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세부묘사가 치밀했기 때문이다.

특이한 재능 덕택에 14살의 나이에 영국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직접 관찰한 것을 그리기보다 주로 2차적으로 본 상징이나 영상을 그린다.

하지만 스티븐 윌트셔는 이와 다르게 조금의 가감도 없이 보이는 그대로를 그린다.

" 스티븐이 14살 때 펴낸 '그림(Drawings)'이라는 작품집 추천의 글에 나오는 말이다.

[그림1]은 스티븐이 14살 때 처음 방문한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요청받아 그린 그림이다.

한번 지나쳤을 뿐인 풍경에 대한 세부 묘사가 뛰어나지만 굴뚝은 없는 것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그림2]은 그로부터 2년 뒤 스티븐이 기억을 더듬어 그린 그림이다.

그림은 바뀌었다.

상상 속의 굴뚝은 여전했지만 현관의 기둥이 없어졌고 계단이 강조되었다.

무엇보다 큰 깃대에 달린 성조기가 추가되었다.

(올리버 색스,'화성의 인류학자')

스티븐의 시각은 사진처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그러나 스티븐이 있지도 않은 깃대를 그려 넣은 사실은 시간을 견뎌내는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의미라는 것을 암시한다.

의미나 맥락이 일반인의 지각활동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추론하는 데 도움을 준다.

스티븐과 같은 특출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정상아동들이 스티븐과 같이 본 그대로 옮겨 그리지 못하는 것은 짧은 기억조차도 의미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전형을 동원하지 않고는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도 유치원에서 집을 그리게 하면 뾰족한 지붕이 있는 집의 전형을 그린다.

⊙전형은 능력이자 곧 한계

사물은 모두 제각각 다르지만 인간은 나무나 꽃,곤충으로 묶는다.

공통된 속성을 뽑아낸 뒤 일반화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한 지성에게 일반화는 필요 없다.

전능한 신은 세포하나,분자 하나,원자 하나까지도 개별적인 실체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탁월하다는 언어능력의 또 다른 진실이다.

일반화는 인간의 지각이 모자라기에 필요하다.

참새 한 마리 한 마리를 자연이 창조한 대로 각각의 이름을 따로 부르며 구별할 수 있다면 참새라는 단어는 필요 없다.

언어처럼 사물을 일반화하는 능력은 사람에게 사물을 통찰하고 지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 능력이 없다면 사람은 신처럼 되기보다는 지능이 낮은 동물에 가깝기 쉽다.

그러나 일반화의 한계를 늘 명심해야 한다.

사물을 한 묶음의 집합으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개개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을 포기하는 셈이며 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큰 재앙을 몰고 오는 오판의 원인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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