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와 공공선택
[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16. 단체회식 때는 왜 음식을 과도하게 시킬까?
A씨의 가족은 주말 저녁 삼겹살로 외식을 했다.

네 식구가 4인분을 시켜 남김없이 알뜰히 먹었다.

며칠 뒤 A씨는 고교 동창모임에 나갔다.

메뉴는 역시 삼겹살.30명이 모였는데 나중에 불판마다 한결같이 먹다 남은 삼겹살이 수북했다.

계산서를 보니 총 50인분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가족끼리는 음식을 남기지 않았는데,단체 회식자리에선 다 못 먹고 남길 것을 왜 이리 많이 주문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뷔페에서 모일 걸….

이런 현상은 일군의 공공선택학파 경제학자들에게 좋은 연구 재료가 됐다.

공공의 선택(의사결정)은 선출된 정치가들에 의한 투표(정치 과정)를 통해 이뤄지는데,수많은 비효율의 원천이 되는 게 현실이다.

현실에서 공공선택이 어떤 문제점을 갖는지 살펴보자.수많은 사회문제를 분석·이해하고 설명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나 혼자 낸다면 아꼈을텐데

A씨 가족의 외식비는 당연히 A씨가 냈다.

너무 많이 주문해 먹고 남기면 그만큼 손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하지만 단체 회식에선 전체 식비를 n(사람수)으로 나눠,각자 1/n씩 부담한다.

A씨가 먹성이 좋아 3인분쯤 해치웠더라도 추가되는 비용 역시 A씨가 아니라 '추가비용×1/n' 만큼만 늘어날 뿐이다.

그러니 막말로 '먹는 게 남는 장사'가 된다.

대부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30명이 60인분,90인분을 시킬 수도 있다.

사람의 머리 속에는 이런 비용과 편익에 대해 '칼 같이' 계산할 수 있는 계산기가 들어 있다.

머릿속 계산기에서 자신에게 (+)라고 생각하니 단체 회식에선 과도한 음식 주문,음식 낭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수는 항상 옳은가

오늘날 대다수 국가는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 근간은 투표다.

투표는 개인의 선호를 사회적 선호로 합치는 과정이며,주로 과반수 투표(majority voting) 또는 다수결 투표(plurality voting)가 이용된다.

과반수 투표는 '다수의 지지'라는 도덕적 근거를 갖지만 다수의 횡포(포퓰리즘)의 문제를 낳기도 한다.

지지자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수가 이익을 보는 것 같지만 소수에겐 엄청난 손해를 안기는 포퓰리즘적 정책 사례가 많다.

예컨대 종합부동산세는 그동안 허술했던 재산세를 과세 강화 측면에서 이해할 부분이 없지 않지만,소수(특히 강남사람들)의 부담을 다수가 즐기게 만들었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헌법에선 다수결에 의해 피해가 미칠 수 있는 개인의 인권,재산권 등 본질적인 문제를 규정하고 있다.

다수결 투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처럼 다수의 후보(대안) 가운데 가장 선호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 역시 과반수가 안 되는 후보가 선택될 경우 그를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가 절반을 넘는 문제가 생긴다.

⊙사람들은 왜 정부에 불만을 가질까

다수결 투표로 결정되는 정치 과정은 대개 중간의 선호를 가진 투표자의 선택으로 결정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A,B,C가 나란히 사는 동네에 가로등 위치를 정하는 투표를 하면 중간인 B의 집 위치가 어디든(A나 C의 바로 옆에 살더라도) 동네 한복판이 아닌 B의 집앞으로 결정된다는 얘기다.

이를 '중간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라고 부른다.

이렇게 다수결 투표 결과는 대개 중간값(median:평균치와는 다름)에서 결정되므로 투표로 결정되는 정치적 결정에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은 중간 투표자뿐이다.

이는 왜 많은 국민이 정부(정치)에 불만을 갖는지,많은 정당들이 왜 '중도' 노선을 표방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통나무굴리기와 투표의 역설

투표의 맹점을 지적하는 개념으로 우선 '통나무굴리기'(logrolling) 또는 '투표거래'를 들 수 있다.

가령 X당은 반값 아파트,Y당은 반값 등록금을 관철시키려 한다면 X당은 반값 등록금에 찬성표를 던지는 조건으로 Y당은 반값 아파트를 찬성하게끔 표를 거래하는 것이다.

돌아가며 봐주기라고 보면 된다.

'투표의 역설'(paradox of voting) 또는 순환적 다수결 현상은 다수의 대안 중 어떤 두 가지를 먼저 비교하느냐에 따라 투표자들의 선호가 바뀌는 현상이다.

안건 심의순서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일관성 없는 결정이 나올 수 있다.

투표자 A는 안건을 ①-②-③,B는 ②-③-①,C는 ③-①-② 순으로 각각 선호한다고 가정해보자.먼저 ①,②안을 투표에 부치면 A,C가 ①안을 찬성해 ②안은 배제되고,다시 ①,③안을 놓고 투표하면 ③안이 선택된다.

반면 ②,③안을 먼저 투표하면 ②안(A,B가 찬성)이 선택되고,다시 ①,②안을 놓고 투표하면 ①안으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만장일치제가 좋을 것 같지만 이 역시 막대한 합의비용에다 모든 유권자에게 거부권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상상해 보라)다.

그래서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를 "최악의 정부 형태지만,그나마 다른 정부 형태보다는 나은 것"이라고 정의했다.

무능·무지한 의원들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통나무굴리기 등의 유인이 있어 종종 비효율을 낳는다는 이야기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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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16. 단체회식 때는 왜 음식을 과도하게 시킬까?
'철의 삼각형' VS 유권자의 '합리적 무시'


정치인,관료,이익집단은 얼핏보면 서로 연관이 없는 듯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강한 결속력을 과시한다.

사안별로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연계해 정책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한다.

이를 '철의 삼각형(iron triangle)'이라고 한다.

실제로 의약분업이나 변호사 수 등의 문제에 대한 정치인,관료,이익집단들의 행태를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정 지역구나 직업군에 유리한 정책으로 인해 사회 전체 비용이 편익을 초과하더라도 철의 삼각형 구조에서 선택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비효율적 행태가 바로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다.

반면 유권자들은 효율적인 정책을 지지할 동기가 크지 않다.

특정 이익집단에 큰 이익이 되는 정책은 대개 다수의 국민에겐 피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피해는 국민 개개인에겐 미미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500억원의 세금 손실을 가져올 정책이라도 4800만 국민 개개인에겐 1000원 남짓한 수준이다.

반면 국회를 감시하려면 시간,노력에다 돈도 많이 든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찾아가려면 한번 왕복 버스비만도 2000원을 넘을 것이다.

그러니 대다수 유권자들은 웬만하면 무시해버리는 게 합리적인 행동이 된다.

이처럼 정치적 선택의 결과에 대해 유권자들이 관심이 없는 경향을 경제학자들은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라고 부른다.

산만하고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다수 대중(유권자)보다 한줌 소수인 이익집단이 훨씬 강력하다.

공공선택학파인 맨커 올슨은 "특수 이익집단으로 가득찬 사회란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레슬링 선수들로 가득찬 유리그릇 상점과도 같다.

가져가는 것보다 깨지는 것이 훨씬 많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