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국어운동 단체인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이하 겨레모임)은 한글날을 앞두고 청와대 비서실을 '우리말 헤살꾼' 후보로 올리겠다고 경고했다.

참여정부 들어 로드맵이니 코드니 하는 외래어들을 아무 의식 없이 무분별하게 써오던 청와대가 급기야 비서실 안에 정책프로세스니 국정과제태스크포스니 하는 하위조직을 설치하자,겨레모임에서 이를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화들짝 놀란 청와대는 결국 조직 명칭을 업무과정개선,국정과제담당 식으로 고쳤다.

○…2004년.겨레모임은 그해 우리말을 망치는 '으뜸 헤살꾼'에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을 뽑았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각종 정책·업무에 'Hi Seoul 시민''Green 청계천' 같은 영문 혼용 선전문을 배포하고 미디어팀,마케팅팀이란 이름의 직제를 만들었다는 게 이유였다.

○…2007년.참여정부 내내 '튀는' 언사로 시비의 대상이 돼 왔던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화제의 초점이 됐다.

이번에는 "깜도 안 된다"란 말로 기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지난 몇 달간 뜨겁게 지면을 달군 신정아·변양균 사건을 두고 초기에 노 대통령이 던진 말이다.

기자들이 난감했던 건 막상 이 말을 지면에 옮기려다 보니 우리말에 '깜'이란 단어가 없는 것이었다.

정황상으로는 '거론하거나 왈가왈부할 만한 내용이 없다''얘깃거리도 안 된다'는 뜻으로 이 말이 나온 것으로 해석됐다.

그렇다면 그에 해당하는 말은 '감'인 것이다.

이 '감'은 순우리말로서,명사 뒤에 붙어서 '대상이 되는 도구,사물,사람,재료'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구경감,놀림감,양념감,안줏감' 식으로 쓰인다.

이런 합성어들에서는 뒤에 오는 '감'이 자연스럽게 [깜]으로 소리 나는데,이를 단독으로 사용하면서 그대로 된소리로 발음한 것이다.

이에 따라 처음에는 신문들이 일부 "감도 안 된다"라고 쓰기도 했지만 그래서는 도저히 말맛을 살릴 수 없었다.

결국 '웃음거리,이야깃거리,반찬거리' 등에 쓰인 '거리'와 비슷하게 쓰이는 '감'도 단독으로 발음할 때는 [꺼리] [깜]이라 하듯이 표기에서도 '깜'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는 대선 후보들의 국어 실력이 들통났다.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각각 국립현충원에 가서 방명록에 적은 문구가 알려지면서 이들이 우리말 적기도 제대로 못한다고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것.

이 후보의 경우는 이미 6월에 있었던 것인데 작가 이외수 씨가 지난 한글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새삼 화제가 됐다.

'당신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읍니다.

번영된 조국,평화통일을 이루는데 모든것을 받치겠읍니다.

' 짧은 두 문장에서 띄어쓰기야 눈감아 주더라도 '않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를 틀리게 쓴 것은 좀 심하다는 지적이었다.

정 후보의 쓰기 실력 역시 오십보백보이긴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을 한단계 더 엎그레이드시켜 영령들께 보답하겠습니다.

''한단계→한 단계''엎그레이드→업그레이드'에서 띄어쓰기와 외래어표기가 틀린 것이다.

'-습니다'는 과거에는 '-읍니다'와 '-습니다'를 구별해 받침에 'ㅅ'이 있으면 '했읍니다,먹었읍니다' 식으로 '읍니다'를,그 밖의 경우에는 '같습니다,많습니다'와 같이 '습니다'를 써 왔다.

하지만 현행 맞춤법에서는 이를 '-습니다' 한 가지로 통일했다.

따라서 지금은 어떤 경우에도 '읍니다'를 쓰지 않는다.

upgrade를 한글로 적을 때는 엎그레이드라 하지 않고 '업그레이드'라고 한다.

이는 가령 book을 '부+ㅋ'이라 하지 않고 '북'으로 적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우리가 book에 조사를 붙여 읽을 때 [부키,부클]이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부기,부글]이라고 읽는 것처럼 외래어에서는 대표음으로 소리내는 게 관습이다.

upgrade에서도 마찬가지로 음가를 글자에 반영해 표기하면 '엎'이지만 어차피 발음으로 구별되는 게 아니므로 대표음 표기인 '업'으로 적는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