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권 지폐 인물 김구·신사임당 선정…적정성 논란

10만원권엔 ‘동그라미 5개’ …화폐단위 절하 여론 고개들 듯

[Focus] 고액권 발행되면 용돈·세뱃돈도 인상될까?
새 고액권 지폐에 들어갈 초상인물로 10만원권에는 백범 김구,5만원권에는 신사임당이 선정됐다.

"백범 김구는 독립애국지사,신사임당은 여성이자 문화예술인으로서의 대표적 상징성을 갖는다"는 게 화폐초상 인물을 선정한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이로써 국내 화폐의 초상인물은 '조선시대 이(李)씨 남성' 일변도에서 벗어나 독립운동가와 여성계로 폭을 넓히게 됐다.

한은은 올해 안에 화폐 디자인을 확정짓고 내년부터 인쇄준비 준비작업에 들어가 2009년 상반기 새 지폐를 발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번 초상인물 선정이 적절한가 하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영(0)이 5개나 들어가는 10만원권 지폐가 통용되는 시점에 화폐단위 절하(리디노미네이션)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 전망이다.

⊙조선시대 이(李)씨 남성 일변도 벗어나

현재 우리나라 지폐와 동전에는 모두 조선시대 이(李)씨 성을 가진 남성뿐이다.

세종대왕(1만원권),율곡 이이(5000원권),퇴계 이황(1000원권),충무공 이순신(100원 동전)의 초상이,나머지 동전에는 학,벼이삭,다보탑 등이 들어갔다.

이 때문에 화폐 초상인물이 너무 편향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은은 이에 따라 새로 발행하는 고액권에는 새 인물을 담기로 하고 그동안 화폐도안자문위원회를 주축으로 일반인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백범 김구와 신사임당을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한은은 인물 선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백범 김구를 10만원권 초상인물로 선정함으로써 독립애국지사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통일의 길을 모색한 지도자로서 미래의 바람직한 인물상을 제시하는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또 신사임당에 대해서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여류예술가이며 어진 아내의 소임을 다하고 영재교육에 남다른 성과를 보여준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나라 화폐에 여성이 선정된 것은 1962년 5월16일 발행된 100환권 지폐에 그려진 한복입은 어머니와 아들 그림 이후 47년 만이다.

⊙인물선정과 절차 적절했나 논란

백범이나 신사임당이 모두 훌륭한 위인이긴 하지만 꼭 이들을 선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많다.

자문위원회 내부에서도 논란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자문위원은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가로서는 문제가 없지만 대한민국 건국과정에서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등 해방 이후 행보에 대해선 논쟁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아직 정리가 덜된 현대사의 인물을 국민 전체가 사용하는 지폐의 초상인물로 선정한 게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5만원권의 신사임당에 대한 논란은 좀 더 구체적이다.

진보 성향의 여성단체들은 "신사임당은 가부장적 사회가 만들어낸 현모양처형 여성상의 전형으로 우리나라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5000원권의 율곡 이이와 함께 모자가 동시에 화폐에 등장하는 것이 전례가 없고,사임당이란 이름도 모화(慕華)사상에서 유래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초상인물 선정과정에서도 한은 측이 자문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공청회 등 공개적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아 '밀실 선정'이란 비난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한은은 "공청회를 열 경우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과 각 사회단체의 선호도에 따라 각기 다양한 인물들이 주장돼 여론 분열만 증폭시킬 수 있어 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화폐단위 절하 논란 재연될 듯

한은은 앞으로 5만원,10만원권 앞뒷면에 들어갈 보조소재 선정,화폐 디자인과 위변조 방지작업을 거쳐 2009년 상반기에 새 고액권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5만원권은 보조소재 선정이 간단치 않다.

이미 5000원권 앞면에 오죽헌,뒷면엔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草蟲圖)가 들어있어 다른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

10만원권은 숫자 '100000'을 앞뒤 네 곳에 넣어야 하는데 이 숫자의 가로 길이가 5cm에 육박(1만원권 '10000'은 가로 4cm)해 미관상 좋지 않다.

10만원권 가로 크기 15.4cm 중 거의 3분의 1이 숫자로 채워지는 꼴이다.

이와 함께 10만원권이 통용되는 시점에 화폐단위 절하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가장 단위가 큰 화폐는 헝가리의 2만포린트짜리인데,우리나라의 10만원권과 5만원권이 발행되면 곧바로 최고 액면단위 1,2위가 된다.

그럼에도 달러로 환산한 10만원권의 실질가치는 OECD 회원국 평균(우리돈 37만원)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한은 금융망을 통한 연간 화폐 결재액 규모가 경(京)에 이를 정도로 통계 작성에도 여러움이 있다.

이에 따라 10원이나 100원을 새로운 화폐단위인 '1환'으로 바꾸는 등 화폐단위를 다시 정할 필요가 제기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성완 한국경제신문 기자 ps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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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적 효과는…수표 비용 절감하지만 뇌물 단위 커질수도

고액권 발행으로 어떤 경제·사회적 효과가 있을까? 연간 5000억원 이상의 비용 절감,국민 편익 증진 등 장점이 많다.

하지만 물가를 자극하고 음성거래 단위가 커지는 등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한국은행은 고액권이 발행되면 10만원권 자기앞수표 취급비용 절감 등 각종 유·무형의 혜택이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선 연간 10억장에 이르는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 발행·취급 비용(연간 2800억원)과 1만원권 수요 감소로 인한 절감효과(400억원) 등 3200억원가량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한국은행은 고액권 발행으로 얻는 운용수익(지급준비금 증가에 따른 통안증권 발행 감축 등)에서 발행·유통비용을 뺀 주조차익으로 1700억원을 얻게 된다.

이 밖에도 국민들이 수표결제 과정에서 신분을 노출시키는 이서를 할 필요가 없고 상거래에서 다량의 1만원권을 번거롭게 세고 결제해야 하는 불편을 더는 등 무형의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고액권 발행이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있는 데다,특히 '검은 거래'의 단위가 커지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 음성적 거래,돈세탁이나 뇌물수수가 근절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적 비용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청렴위원회도 고액권 발행이 반부패 정책에 역행할 수 있다며,고액 현금거래 보고 제도 강화,뇌물 및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대한 적발·처벌 강화 등의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은은 검은 거래에 대해선 법적 처벌과 감시를 강화하는 쪽으로 대처해야지,이로 인해 고액권 발행을 막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란 태도다.

우리나라 경제규모나,국민 소득,물가 수준에 견줘 최고 액면인 1만원권의 가치가 너무 낮아 경제적 비용과 국민 불편이 큰 점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