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의 수몰

[오태민의 마중물논술] 29. 사진의 말에 주의하라
[사진 1]이 실린 타임지(誌)의 커버스토리는 그야말로 매우 걱정스러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Time,2006년 4월,'Be worried,Be very worried')

지구온난화 특집판인 이 기사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린 온난화가 몰고올 여러 가지 불행들을 소개했다.

홍수,태풍,가뭄,더위,한발과 같은 지구적인 재앙과 함께 열사병,천식,말라리아를 비롯한 각종 질병이 인류에게 커다란 시련이 되리라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사진에 딸린 이야기는 매우 가슴 아프다.

빙하가 녹아서 북극곰들이 익사하기 시작했으며 언젠가는 멸종될 것이라고 한다.

사진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얼음을 찾는 곰의 시선이 처량하다.

곰 가까이에서 그의 체중을 지탱해 줄 만한 듬직한 얼음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추억의 사진첩

2005년 12월은 황우석 교수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진실에 대한 공방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주요 언론들도 일반인들보다 나은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다.

그렇지만 속보성이라는 언론의 중요한 기능을 외면할 수도 없어 정확한 진실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매 시각 전달해야만 했다.

주요 신문의 논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었다.

새롭게 등장하는 증거와 증언,약속과 입장에 따라 언론은 춤을 췄고 덩달아 국민 다수의 마음도 요동쳤다.

당시 언론에 등장했던 황우석 교수 사진첩에는 언론과 국민이 함께 추었던 요란한 춤사위가 담겨 있다.

[사진 2]는 아직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찍혔다.

굳이 따지자면 노성일 원장의 폭로로 황 교수가 많이 몰렸다.

사진의 진실은 무엇인가? 벙거지 모자를 쓴 황우석 교수가 연구실로 보이는 실내에서 자신에게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기자를 힐끗 보고 있다.

이 진실이 중요한가? 사진은 어떻게 읽히는가? 뭔가를 숨기는 초조한 황 교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눈빛에는 그만이 알고 있는 많은 진실이 숨겨진 것 같다.

사진에 딸린 글에서 '옆문'을 통해 출근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기자는 사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굳히고 있다.

⊙인식이 사진을 주문한다

보통의 사진기자들은 연속촬영으로 사진을 얻는다.

짧은 순간에 메시지에 걸맞은 사진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몇 초간 이 사진의 앞뒤 영상도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사진들은 이와 매우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다.

예를 들면 눈빛이 이와 같지 않을지 모른다.

눈동자는 매우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보통사람의 표정에서도 불안한 눈빛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눈빛이 해맑은 사진이 있었다 한들 대중은 그 사진을 접하지 못했으리라.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3]은 황우석 교수에게나 우리 국민에게나 좋은 추억이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논문을 발표하고 귀국하는 황우석 교수.기자들은 몇 시간 전부터 인천공항 입국장에 자리잡는다.

사진기자들은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리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좋은 자리를 잡지 못한 한 기자가 우연히 공항의 광고판을 발견한다.

'Pride of Korea' 너무 절묘한 광고 문구를 보고 다른 기자들에게 제안한다.

황 교수가 귀국하면 이 광고판 앞에서 포즈를 취해 달라고 요청하고 같이 사진을 찍자는 아이디어다.

그래서 황 교수와 전혀 관계 없던 광고판은 황 교수만을 위한 배경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문구는 당시 황 교수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사진은 다른 많은 경쟁 사진들을 제치고 오랫동안 살아남아 널리 유포될 수 있었다.

⊙사진이라는 탁월한 언어

[사진 4]는 미국 작가 마틴 파의 '삶의 비용' 시리즈의 한 장이다.

배 위에서 열린 정치 후원 파티에서 담은 순간이라고 한다.

정치 후원 모임은 행세께나 하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지경을 넓히기 위해 경주하는 곳이다.

다른 건 몰라도 편하게 놀고 마시는 공간은 절대로 아니다.

교양을 갖추고 만면에 웃음을 띠고 어느 누구를 만나도 오랜 친구처럼 다정하게 대할 것이 약속되어 있다.

이런 노력은 삶의 일상이지만 놀이를 가장한 노동은,때로 노동 그 자체보다 더 처연하고 모진 구석이 있다.

일과 이후의 일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 피로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는 모양이다.

얼굴을 마주할 때는 만면에 환하게 보이던 웃음이 서로의 볼에 입 맞추기 위해 시선이 어긋나기 무섭게 사라진다.

되레 얼굴의 근육은 경직되고 그날의 짜증까지 섞여 나온다.

'벌써 이 사람이 몇 번째 키스야,얼마나 더 해야 되는 거야.정말 지겨워'라는 표정이 절절히 읽힌다.

아니,어떤 언어로 이 사진 한 장에 담긴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단 말인가? 사진은 또 하나의 언어가 분명하다.

그것도 매우 보편적이라 문화나 시대를 초월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사진이라는 거짓말

사진은 사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진의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능력이 없다.

보는 행위에서 눈은 어디까지나 뇌의 보조기구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맥락이 없으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사진 5]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볼까? 대부분은 코브라를 쉽게 연상한다.

그 다음 사진에서 강아지가 등장하면 대부분 웃는다는 것이 그 증거다.

왜 웃어야 할까? 아니 이제 막 달나라에서 도착한 외계인이라면 사진을 보고 웃을 수 있을까?

시력은 지구인과 다를 바 없겠지만 시크교도의 피리,항아리,코브라라는 문맥을 공유하지 못한 그는 이 사진을 보고 웃지 못한다.

차라리 그 외계인의 눈으로 사진을 볼 때 보이는 사물들이 사진에 담겨 있다는 사실에 가깝다.

문맥 없이 내동댕이쳐진 빛깔의 덩어리들 말이다.

사진이 언어인 이상 사진은 진실만을 말하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사진이 진실일 거라 굳게 믿기 때문에 오히려 사진은 과장되고 왜곡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가장 편리한 도구이기도 하다.

사진을 잘 활용하면 증명할 수 없는 메시지를 증명할 필요 없는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다.

그것이 영상의 가장 편리한 점이다.

황 교수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런 말을 해서 굳이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없다.

상황이 바뀌어도 나중에 책임질 필요도 없다.

⊙북극곰의 진실

북극곰의 개체수 감소를 경고하는 연구단체들조차 최근 북극곰의 감소는 제한된 지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오히려 전 지구적으로는 개체수가 최근 수십 년간 크게 늘었다.

1960년대의 5000마리가 오늘날에는 2만5000마리에 달한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북극곰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지역은 오히려 추워지고 있는 지역이라는 것.따뜻해지고 있는 곳에서는 북극곰의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다.

북극곰도 추우면 살기 각박해지는 모양이다.

캐나다 정부의 한 북극곰 학자는 25년 내에 북극곰이 멸종한다는 주장은 미디어 히스테리가 만들어낸 바보 같은 헛소리라고 단언한다.

(Bjorn Lomborg,'Cool it')

사진은 진실이 아닐까라는 좋은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진실을 좇는 자에게 사진은 가장 유용한 도구지만,동시에 진실을 위장하는 자들에게도 그렇다.

왜냐고? 이제 이 물음에는 스스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slowforest@ed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