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15. 왜 나에겐 이익인데 전체에게는 손해인 경우가 생길까?
구성의 오류와 무임승차

세상에는 개인에게 이익인데 전체에게는 손해를 끼치는 일들이 참 많다.

예컨대 한 사람이 극장에서 잘 안 보인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면 뒷사람들은 연쇄적으로 엉덩이를 들어야 한다.

허리를 곧추 세운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효율적인 행동을 했지만 결국 전체에 불이익이 돌아가는 상황이다.

마찬가지로,파티장에서 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면 다른 사람들은 줄줄이 목이 아파진다.

나중에는 거의 고함치듯 소리를 높여야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논리학 용어로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고 하는데,이는 경제학의 개념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흔히 국방 치안 등 공공재를 누리는 데 드는 집단의 공동 비용은 외면하고 자신의 편익만 챙기려는 경향을 일컫는 '무임승차'(free ride) 문제가 바로 구성의 오류와 같은 관점이다.

오늘은 개인에겐 효율적인데 전체에는 낭비를 초래하는 행태들에 대해 살펴보자.

⊙미인들의 얼굴을 합성하면?

흔히 구성의 오류를 설명할 때 자주 드는 예가 컴퓨터를 통해 가상의 최고 미인을 합성하는 실험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미인을 찾기 위해 눈은 김태희,코는 이영애,입은 김혜수,얼굴형은 고소영,머리결은 전지현…,식으로 합성해보면 어떤 얼굴이 나올까? 이런 실험이 국내외에서 몇차례 있었지만 매번 각각의 연예인 그 누구보다도 예쁘다고 할 수 없는 얼굴이 나왔다.

각각은 최선인데 전체는 결코 최선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전체에게 이익(공익)이 되는 행동에 대해 잘 안다.

예를 들어 사고·범죄가 잦은 마을 어귀에 가로등과 CC-TV를 다는 문제를 생각해보자.그만큼 안전해진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면서도,거기에 드는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우리 집은 건장한 남자들밖에 없어 필요없다""우리 집은 귀가시간이 일러 괜찮다"식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분명히 생긴다.

가능한 한 돈은 안 내고,편익은 누리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이런 무임승차 때문에 가로등과 같은 공공재는 단순히 시장의 수요·공급에 의해 누릴 수 없게 된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없으니 아예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그 대안은 정부가 세금을 거둬 달아주는 것이다.

⊙나는 만족 vs 전체는 불만

쉬는 시간 교실에서 반 친구들 한두 명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엔 소근소근 얘기를 해도 잘 들리지만,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곧이어 수업시간에 교실문을 들어서는 선생님 귀에는 마치 웅성거리는 거대한 소음처럼 들리게 마련이다.

파티장에서도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목소리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

같은 톤으로 말하면 잘 안 들려 목소리를 높이다보면 파티 끝무렵엔 목이 아프고 귀가 얼얼해진다.

나도 만족하고,너도 만족하는데 왜 전체는 만족할 수 없을까? 이는 개인의 만족과 사회의 만족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고전경제학에선 개개인은 이기적·효율적·합리적이라고 전제했지만,이 때문에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할 수 없는 문제가 현대 공공경제학의 주된 과제다.

그만큼 개개인의 미시적 동기가 국가경제의 바람직한 거시적 지향점에 역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얘기다.

부동산 투기도 개인에게는 이익 극대화를 위한 행동이지만 사회 전체로는 과다한 비용을 유발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개인의 이기심을 비난하는 것만으론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자연의 진화도 구성의 오류?

'개체에 효율,전체엔 낭비'인 현상은 동물의 진화과정에서도 종종 확인된다.

지난주 이 코너에서 사례로 든 엘크의 경우를 좀 더 들여다 보자.일부다처제인 엘크는 수컷 한 마리가 암컷들을 모두 차지하는데,수컷 간의 싸움은 뿔이 클수록 유리하다.

뿔이 큰 놈들이 암컷을 독차지함에 따라 뿔이 큰 엘크의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하지만 큰 뿔은 거추장스럽다.

나무가지에 잘 걸리고 천적의 눈에도 잘 띌 테니까.

큰 뿔은 특정 수컷에게는 최적이겠지만 엘크 집단 전체에는 오히려 생존에 불리한 조건이다.

이렇듯 사람들도 늘상 개인의 사적 이익과 집단의 사회적 이익 사이에서 갈등할 때가 많다.

일찍이 아담 스미스는 모든 가격 정보를 아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완전경쟁 상태라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과잉 진료,의료비가 면제되는 1종 수급자의 의료쇼핑 행위 같은 도덕적 해이,보험이나 중고차시장에서 악화(레몬)가 양화(복숭아)를 구축하는 역선택,대기업의 일방적 납품단가 인하 등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지 않는 현실세계도 너무 많다.

하나하나 따로 놓고 보면 다 개인들이 사적 이익에 충실한 행동을 했는데 결과는 전체의 손실·낭비·비효율로 귀결되는 구성의 오류이다.

그래서 세상 사는 것이 쉽지 않은가 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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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버려 두면 아무도 부담하지 않는 공공재

[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15. 왜 나에겐 이익인데 전체에게는 손해인 경우가 생길까?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지만 비용을 부담하라면 기피하는 재화가 있다.

바로 공공재(public goods)다.

일반재,사유재 등으로 불리는 보통 재화는 내가 쓰면 남이 덜 쓰게 되는 경합성과,내가 샀으면 다른 사람은 살 수 없는 배제성이란 특징을 갖는다.

예컨대 내가 빵을 샀으면 그 빵은 남이 먹을 수 없고 그만큼 세상의 빵 수량도 줄어든다.

하지만 공공재는 내가 쓰는 것을 남도 쓸 수 있고(비경합성),돈을 내지 않은 사람이 쓰지 못하게 할 수도 없는(비배제성) 성격을 갖는다.

예컨대 서울의 야경,설악산 단풍을 상상해보라.사람들이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가격을 매겨 돈 안 낸 사람을 못보게 할 수도 없다.

공공재에는 국방·치안·소방서비스를 비롯해 국·공립 공원,가로등,등대,막히지 않는 도로(꽉막힌 도로는 타인의 소비를 제한) 같은 것들이 속한다.

TV 방송은 종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공중파 TV는 시청료를 내든 안 내든 다른 사람을 못보게 할 수 없으니 공공재에 속한다.

반면,케이블TV나 위성DMB는 누구나 볼 수 있어 공공재 같은 비경합성이 있지만,돈을 내지 않은 사람은 볼 수 없어 일반재처럼 배제성도 있다.

이런 독특한 재화를 집단재라고 부른다.

공공재는 사회에 상당히 유용한 것들임에도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려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비용을 부담한 사람만 골라서 공공재를 제공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공공재는 필연적으로 '무임승차'의 문제가 생긴다.

무임승차란 차비를 안내고 버스를 타는 것이다.

'차비를 안 내고 탄 사람'을 일일이 가려내야 하는데,등대나 가로등 밑을 지나는 사람에게 돈을 받을 수도 없다.

공공재는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에 시장에 맡겨둬선 공급자가 생겨나지 않는다.

따라서 공공재는 이름 그대로 공공에 의해 운영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공공재의 대가 또는 비용으로 간주되는 것이 '세금'이다.

하지만 세금을 한 푼 안내는 사람에게도 공공재는 똑같이 공급된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