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등 대기업, 말하기시험으로 평가

영어 교육시장 대변화 예고

[Focus] 토익점수만 높은 영어벙어리 설땅 없어진다
"토익 성적 높은 임원들도 영어 회화를 시켜 보면 영 실력이 없는 경우가 허다해요.

이래서 어디 해외 사업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영어 이야기가 화두에 오르자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영어 교육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성토했다.

신입사원을 채용해 보면 영어시험 고득점자는 수두룩하지만 실제로 영어로 해외 사업을 능수능란하게 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토익 성적만 좋은 '영어벙어리'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삼성그룹 등에서 대졸 신입사원 채용시 어학 능력의 반영 기준을 토익(TOEIC)이나 텝스(TEPS)와 같은 지필고사(시험지를 통해 보는 시험) 대신 영어 말하기 시험으로 대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채용에 영어 말하기 시험을 도입한 것은 삼성그룹이 처음이 아니다.

CJ그룹은 올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부터 영어 말하기 시험인 'OPIc(Oral Proficiency Interview-Computer)'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CJ그룹 관계자는 "기존의 토익 성적만으로는 영어 능력을 평가하기 어려운 데다 글로벌 사업이 늘어남에 따라 회화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어 말하기 시험을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비용 들여 '영어 벙어리' 양산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영어 교육에 들이는 사교육 비용은 연간 15조원에 이른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약 10년간 학생 한 명이 영어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은 총 1만5548시간이다.

영어유치원 등 조기교육을 포함하면 영어에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은 훨씬 늘어난다.

하지만 한국인의 영어 실력은 '평균 이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2004~2005년 사이 토플시험을 치른 응시자는 세계적으로 55만4942명.이 가운데 한국인은 전체 응시생의 18.5%를 차지한 10만2340명에 달했다.

한국인의 평균 토플 성적은 300점 만점에 215점으로 전 세계 147개국 중 93위에 머물렀다.

정치경제위험컨설팅(PERC)이 아시아 12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외국인과 영어 소통이 가장 힘든 나라'로 한국이 지목되기도 했다.

⊙기업들,"영어 벙어리 우리가 가려낸다"

삼성그룹은 이르면 내년부터 OPIc을 신입사원 시험에 도입한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서류전형 합격자를 대상으로 최종 면접을 실시하기 전 OPIc테스트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체 매출의 80%가량을 해외에서 일으키는 계열사들의 현실을 감안할 때 지필고사 성적만 높은 '영어 벙어리'는 회사 경쟁력 저하와 연결된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은 내부 임직원 인사고과에 OPIc 시험을 이미 반영하고 있다.

해외 파견자들의 경우 영어 말하기 시험은 '필수'항목이 된 지 오래다.

삼성이 영어 능력 측정 기준을 바꾸기로 하면서 다른 대기업들도 영어 지필고사 성적을 제출하는 채용시스템 점검에 들어갔다.

SK텔레콤과 오뚜기,동부화재,신라호텔도 올해 임직원 내부 승진 평가용으로 OPIc 시험을 도입했다.

⊙영어 교육시장 대변혁 불가피

영어 교육 시장 변화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영어를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국가 가운데 덴마크,스웨덴처럼 영어교육이 뛰어난 국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6년간 영어교육을 시작하는 덴마크는 놀이와 노래 등을 활용한 영어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러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교사 관리 문제도 제기됐다.

덴마크는 영어권에서 2년간 영어 교육을 받은 뒤 총 영어 학습 기간이 9~10년이 될 정도의 영어 능력을 교사에게 요구하고 있어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영어체험 마을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무료 영어 교육을 강화해 실용 영어 체험 기회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영어 교육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의 영어 말하기 시험 도입을 시작으로 영어 교육시장에 대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현예 한국경제신문 기자 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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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도입하는 OPIc 시험은…

OPIc(Oral Proficiency Interview-Computer)은 말 그대로 컴퓨터를 이용해 치르는 영어 말하기 시험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수험자의 정보와 대답이 모두 전산 처리돼 평가에 반영된다.

기존 영어능력 평가시험이 문법이나 단어 발음 등을 평가하는 데 치중했다면 이 시험은 종합적인 영어 구사능력을 판단한다.

즉 △과제(Task)처리 능력 △의미 전달과 단어 구성 능력(Text Type) △주제 표현(Contents) 능력 ▷의사전달(Comprehensibility) 능력 ▷문법 등 언어(Language Control) 능력 등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시험이다.

응시생은 질문마다 2번의 청취 기회가 있으며 응답 시간에 제한이 없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자유로운 대답이 가능해 응시생별로 시험 시간이 다르다.

시험을 마치는 데에는 평균 30~50여분이 소요된다.

시험 주관은 삼성그룹 계열사인 크레듀가 최근 인수한 미국 LTI사가 맡고 있다.

토익 등이 문제은행 방식으로 문제가 출제되는 반면 OPIc은 첫 질문에 대한 응시생의 수준에 따라 다음 질문의 난이도가 결정되는 방식으로 시험이 진행된다.

답변이 끝나면 응시생의 정보가 컴퓨터에서 바로 미국 LTI사로 전송돼 전문 평가사들의 종합 평가 과정을 거친다.

LTI는 사내 공인평가자들의 검토를 거쳐 점수를 매기게 되는데,△초급 각 3단계 △중급 각 3단계 △고급 등 총 7단계로 응시생의 성적이 평가된다.

'초급'은 간단한 어구나 문장을 통해 최소한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중급'은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에서 무리없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을 뜻한다.

'고급'은 모든 비즈니스 업무를 거의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정도를 뜻한다.

크레듀는 OPIc테스트를 올초부터 국내에서 시행하고 있다.

전국 32개 고사장에서 매일 치러진다.

현재까지 이 시험을 치른 응시생은 모두 1만7000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