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에 투자하라"-워런 버핏
[Make Money]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
'가치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미국의 워런 버핏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지난달 25일 신문 방송들은 일제히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대서특필했고,그의 한마디에 주가가 들썩거렸다.

최근 조정 분위기가 완연하던 지수도 그의 방문을 계기로 급반등세로 돌아섰다.

물론 급반등 시점에 그가 온 것인지,아니면 그의 방문이 증시반등을 이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버핏이 한국을 찾은 것을 계기로 그의 대명사처럼 통하는 '가치투자'(value investment)라는 개념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가치투자란 무엇이고,투자방식은 어떤지,또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기로 하자.

⊙주식 그 자체를 보는 가치투자

간단히 말하면 가치 대비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가치가 드러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어찌보면 아주 간단하고도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사실 하나하나 따져보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우선 가치를 측정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으며,주가가 가치 대비 얼마나 낮아야 저평가됐다고 보는 것인지도 보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제각각일 수 있다.

또 주가가 어느 정도 올라야 가치가 실현됐다고 보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천차만별이다.

개인별로 기대수익률이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수익률 10%이면 감지덕지지만 수익률이 100%가 돼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가치투자는 주식의 본질가치를 다른 어떤 외부 요인보다 중시한다는 점에서 본질가치보다 주변 재료 등에 의해 주식에 접근하는 모멘텀투자와 상반된 개념으로 통한다.

가치투자자의 원조는 주식투자자들 사이에 고전으로 널리 읽혀지는 「현명한 투자자」의 저자 벤자민 그레이엄이다.

워런 버핏은 그의 제자다.

국내 증권가에서도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밸류자산운용의 이채원 전무나 신영투신운용의 허남권 상무,가치투자자문의 박정구 대표,VIP투자자문의 최준철 김민국 공동대표,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강방천 회장 등이 대표주자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투자철학을 책으로 엮어내 일반인한테도 제법 알려져 있다.

⊙가치는 어떻게 측정할까

허남권 신영투신운용 상무는 "누구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대동소이하지만 가치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중시하느냐에 따라 종목 선택이나 시각이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허 상무의 언급 가운데 먼저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대동소이하다'는 말부터 살펴보자.

흔히 가치투자자들이 특정 주식의 가치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지표로는 PER(주가수익비율)나 PBR(주가순자산비율)가 가장 일반적이다.

PER는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익가치에 비해 주가가 어느 수준인지를,PBR는 회사의 자산가치에 비해 주가가 어느 수준인지를 각각 나타내는 지표다.

이 밖에도 가치투자자들이 중시하는 지표로는 배당수익률이나 이익의 안정성 지표,시장 지배력 수준,자산가치 등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가치투자자들이라 할지라도 좋아하는 종목은 천차만별일 수 있는데,실제 국내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펀드업계의 쌍벽을 이루는 밸류자산운용과 신영투신운용은 포트폴리오(구성종목)에서 겹치는 종목이 거의 없다.

이는 두 운용사의 가치 판단 기준 차이라기보다 '가치를 구성하는 요소 중 어느 것을 더 중시하는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즉 밸류자산운용은 자산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데 비해 신영투신운용은 배당가치를 더 중시한다.

⊙가치주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대표적 가치의 측정지표인 PER와 PBR는 주가 상승에 비례한다.

다시 말해 PER(주가/주당순이익)가 10배이던 종목의 주가가 두 배 올랐다면(이익은 그대로라고 가정했을 경우) PER도 20배로 두 배가 된다.

과거에는 PER가 10배 미만이거나 PBR가 1배 미만이면서 정상적인 이익을 내고 있는 종목이면 대부분 가치주로 여겼다.

하지만 최근 3∼4년 간 주가가 큰 폭 오르면서 이런 기준의 가치주들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예컨대 과거 가치투자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신세계,농심 등 전통적인 가치주조차 PER가 20배 수준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증시에 가치주는 더 이상 없는 것일까?

이채원 밸류자산운용 전무는 "PER나 PBR 기준의 가치주는 상당히 많이 사라졌지만 재무제표에는 드러나지 않는 숨은 자산가치 대비 저평가된 가치주나 시장 지배력이 뛰어나 PER가 높아지는 게 의미가 없는 가치주들이 새로운 가치주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가치주도 주가의 흐름에 따라 변천한다는 얘기다.

물론 최근 3∼4년 간의 대세 상승장에서 소외돼 여전히 PER가 10배 미만인 대형 가치주들도 남아있긴 하다.

KT와 한국전력이 대표적이다.

⊙가치투자의 성과

박정구 가치투자자문 사장은 "가치투자가 좋은 줄은 누구나 다 안다.

다만 누구나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몹시도 지루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치투자 승부의 관건은 '누가 더 오래 버틸 자신이 있느냐'다.

한마디로 인내력 싸움이다"고 말했다.

가치투자자들은 보통 한 종목에 투자하면 최소 2∼3년은 버틴다.

5년이 지났으나 가치가 실현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보유하는 종목도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선 투자한 지 불과 6개월도 안 돼 예기치 않은 호재가 발생해 가치가 실현되는 사례도 있다.

가치투자는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라는 속담처럼 오래 기다린 만큼 성과도 매우 우수하다.

이는 가치투자펀드들의 실제 수익률 성과로 나타난다.

박정구 사장이 운용하는 가치주 펀드인 'V펀드'는 2003년 나온 이후 누적 수익률이 한때 800%를 넘을 정도였다.

이채원 전무와 허남권 상무가 운용하는 펀드들의 수익률도 주식형 펀드 중 최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정종태 한국경제신문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