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가 급락에 한국도 한때 휘청

[Make Money] 증시의 우울한 월요일 블랙 먼데이 20주년…
지난 10월20일(토).주말을 편히 쉬고 있던 국내 주식 투자자들은 미국 뉴욕 증시가 밤사이 366포인트(2.64%)나 폭락했다는 소식에 아연실색했다.

미국 증시의 주가 폭락은 주말을 넘어 월요일(22일) 국내 증시가 개장되자마자 코스피지수를 90포인트 이상 끌어내리는 위력을 발휘했다.

이후 추락 분위기를 추스리며 지수 하락폭을 줄였지만 국내 주식시장은 하루 종일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국내 주식시장 뿐만 아니다.

일본 닛케이지수과 중국 상하이 종합지수가 이날 2% 이상 떨어지는 등 전세계 증시가 동반 추락을 보였다.

이 같은 공포심리가 전세계에 확산된 것은 다우지수가 폭락한 19일(금)이 때마침 1987년 기록적인 주가폭락일인 '블랙 먼데이'(Black Monday)로부터 꼭 20년이 되는 날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안그래도 블랙 먼데이 20주년이 다가오면서 '당시와 시장 상황이 비슷하다'는 얘기가 나오던 터라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

20년 전 블랙 먼데이가 여전히 시장에 식지 않은 영향력을 보여준 셈이다.

실제로 20년 전 블랙먼데이 이후 국내외 언론에서는 주가가 급락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블랙'에 해당 요일을 붙여 기사 제목을 달곤 했다.

주식투자자들에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작용해왔던 블랙 먼데이.그 역사와 의미를 들여다보자.

(영어 표현에서 'black'은 좋지 않은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고 대문자로 'Black Friday'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날을 뜻한다.

black에서 유래된 관용 표현에 대해선 생글생글 114,115호 22면 '김기훈의 백그라운드 잉글리시' 참조)

⊙20년 전의 악몽

다우지수가 기록적인 급락세를 기록한 사례는 대공황과 9·11 사태 등을 거치면서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1987년 10월19일(월)은 그야말로 기록적인 수준이었다.

당시 5년이 넘게 상승장을 이어가던 다우지수는 계속되는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우려감이 겹치면서 결국 폭발했다.

다우지수가 이날 하루에만 무려 22.6%나 폭락하며 투자자들을 경악시켰다.

매도 물량이 속출하면서 매매가 마비될 지경이었으며 이로 인해 목숨을 끊는 투자자까지 잇따랐을 정도였다.

문자 그대로 블랙 먼데이였다.

사실 블랙 먼데이라는 용어가 나온 것은 그 이전이다.

'원조'는 대공황기였던 192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9년 10월28일(월) 뉴욕증시가 12.6% 하락하자 전세계 주요 통신사와 신문들이 '블랙 먼데이'라는 용어로 타전하면서 처음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한동안 주로 공황이나 경기급랭을 주로 표현하는 용어로만 쓰였다.

1987년 10월의 대사건 후에 비로소 지수 폭락일을 나타내는 보통명사가 됐다.

하루 사이 주가가 7.2%나 밀렸던 1997년 10월과 9·11사태로 7.1% 폭락했던 2001년 9월에도 이 용어가 사용됐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는 1987년 블랙 먼데이와 비교하면 하락폭이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한국에서의 블랙 먼데이

한국에서 주가가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날은 뉴욕에서 9·11 테러가 일어난 다음 날인 2001년 9월12일이다.

이날 종합주가지수(현재 코스피지수)는 12.02% 떨어졌다.

하한가 종목이 621개에 이를 정도였다.

코스닥지수도 11.59% 하락했다.

당시 코스닥시장의 하루 가격변동 제한폭이 12%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거의 전 종목이 하한가로 추락한 셈이다.

두번째로 낙폭이 컸던 시기는 벤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던 2000년 4월17일이다.

이날 역시 월요일이었다.

종합주가지수의 하락률은 11.63%에 달했다.

또 외환위기가 다가오던 1998년 6월12일에는 8.10% 떨어졌으며 올해 8월16일에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불거진데 따른 우려감으로 6.93% 폭락했다.

⊙블랙 먼데이 또 올까

1987년의 기록은 과연 깨질 수 있을까? 그러나 전문가들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제도적인 방어망이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서킷 브레이커(주가가 갑자기 10% 이상 급등락할 때 일시적으로 주식매매를 중단시키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서킷 브레이커는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 이후 주가 급변을 인위적으로 막아 보자는 취지에서 뉴욕증권거래소가 처음 도입한 제도다.

2년 뒤인 1989년 10월 뉴욕 증시가 다시 폭락했을 때 이 제도의 효과가 발휘되면서 각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12월 국내주식 가격제한폭이 상하 15%로 확대되면서 도입됐다.

중앙은행의 강도높은 시장개입도 주가 하락을 막는 역할을 한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주가가 급락해 투자심리가 악화되면 기준금리와 재할인율 등을 인하해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한다.

물론 보호장치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금융위기나 전쟁과 같은 초비상사태의 경우 이 같은 폭락세가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가와 요일의 상관관계

과연 주가와 요일은 상관이 있을까.

과거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가장 폭락이 잦았던 날은 역시 블랙 먼데이라는 용어에 걸맞게 월요일이다.

증권선물거래소가 2000년부터 최근까지 코스피지수 흐름을 조사한 결과 전날 대비 3% 이상 급락한 날이 모두 85일이며,이 가운데 3분의 1 이상인 29일(34.1%)이 월요일이었다.

이어 수요일이 18일(21.2%),목요일이 16일(18.8%)이었으며,금요일이 13일(15.3%)로 뒤를 이었다.

미국에서도 2000년 이후 하락률이 컸던 2000년 4월17일(-11.63%)과 9월18일(-8.06%)은 모두 월요일이었다.

2000년 이전에 1987년 '블랙 먼데이'를 제외하고 가장 큰 하락률을 기록한 1981년 1월5일(-8.39%) 역시 월요일이었다.

반대로 화요일은 폭락 경험이 가장 적은 요일이다.

오히려 월요일이 충격에 흔들렸다면 화요일은 이를 추스리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미국 증시의 급락으로 월요일인 22일 전세계 증시가 동반 하락했을 때도 다음 날인 23일에는 대부분 증시가 동반 강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월요일에 폭락 사례가 많은 이유에 대해 "딱히 근거를 제시하기 힘들며 다분히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풀이하고 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에는 다소 신중을 기하려는 심리가 강한 데다 증시가 휴장하는 주말 이틀간 악재가 터졌을 경우 월요일에 한꺼번에 반영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고경봉 한국경제신문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