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가 열렬히 환영한 사진 한 장

[오태민의 마중물논술] 27. 바람직한 이론의 비극적 결말
(사진1)의 주인공들은 일란성 쌍둥이다.

일란성 쌍둥이임에도 성(性)이 다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원래는 남자 형제였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이들 형제가 생후 7개월 즈음 포경수술을 받다가 그만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의사의 실수로 부르스의 성기가 타버렸다.

아들이 성장해서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전율하고 있던 쌍둥이 부모에게 '복음'이 들려왔다.

당시 세계적인 성전문가(sexologist)로 알려진 존스홉킨스 대학의 존 머니 박사(사진2)는 쌍둥이 부모에게 성전환 수술을 강권했다.

그는 성은 타고난다기보다는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인형과 총'이 성을 결정한다면 브루스와 같이 불의의 사고로 성기를 잃게 된 사내아이의 경우 조기에 성 전환 수술만 받으면 임신만 하지 못할 뿐 정상적인 여성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머니 박사의 확신에 의지해 브루스의 성기 흔적은 제거되었다.

남성 호르몬을 생산할 고환도 떼어 냈다.

이름도 브렌다라고 바꿨다.

생후 19개월 때의 일이었다.

머니 박사는 6년을 기다려 1972년에 이 사례를 사진과 함께 학계에 알린다.

'조안과 존(Joan/John)'으로 알려진 이 사진은 성 정체성이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결정된다는 이론의 승리를 알리는 상징이 되었다.

환경결정론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남성이나 여성으로 태어난 아이가 반대 성으로 양육되어 성공했다는 사례가 필요했다.

일란성 쌍둥이 아들로 태어나 하나는 딸로,하나는 아들로 키워진다니! 이보다 완벽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페미니스트 이론서의 고전이 된 케이트 밀레트의 '성의 정치학'에도 인용되었다.

성을 결정하는 것이 본성보다는 양육이라는 이론이 여성에게 보다 바람직하다는 것이 당시 여성학의 입장이었다.

쌍둥이 사례는 여성학이 기대하던 바로 그 이론을 뒷받침해 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열렬히 환영받았다.

⊙불행한 결말

현실은 학자들의 바람과 많이 달랐다.

자신이 원래 사내아이였는지도,또 자신이 학문적으로 그토록 중요한 존재인지도 알 턱이 없는 브렌다는 여성이 되기를 거부했다.

두 살 때 자신의 예쁜 드레스를 찢어버렸다.

인형은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늘 동생의 장난감 차와 총에 관심이 많았다.

이 때문에 쌍둥이는 자주 싸웠고 이기는 쪽은 대체로 누나 브렌다였다.

머니 박사의 엄격한 다짐 때문에 브렌다의 부모나 소아과 의사들은 브렌다에게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지만 브렌다는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치원에서도 학교에서도 남자아이들은 깡패 같은 브렌다를 놀렸고 여자 아이들은 아예 끼워주지도 않았다.

그녀는 철저한 외톨이로 성장해야 했다.

학교를 자주 옮겨야 했고 언제나 성적은 최하위였다.

심지어 유치원 교사들은 초등학교 입학을 유보하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브렌다의 어려움은 단지 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부모는 이혼의 위기를 맞았다.

엄마의 우울증과 아빠의 알코올중독이 반복되었다.

그의 동생 브라이언도 부모의 관심이 온통 누나에게만 가 있다며 엇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머니 박사를 제외한 브렌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때에야 부모는 실험의 실패를 받아들인다.

브렌다는 아버지로부터 포경수술 사고와 성 전환 수술 이야기를 듣게 된다.

브렌다가 14세 때의 일이다.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무엇보다 '안도감'을 느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난 돌연변이도 정신병자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고.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 브렌다는 지체하지 않고 본래 자신의 성 정체성을 회복한다.

이름도 바꾸었다.

골리앗이라는 거인과 싸우는 다윗(데이비드·David)을 택했다(사진3).

지속적으로 복용한 여성호르몬의 영향으로 생성된 유방도 절제하고 인공성기도 달았다.

20대에는 제인이라는 여인과 결혼도 했다.

제인은 당시 아이가 셋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정상적으로 키우고 싶던 데이비드의 소망이 이루어졌다.

(존 콜라핀토,'타고난 성,만들어진 성·여자로 길러진 남자 이야기')

⊙보고싶은 대로,듣고 싶은 대로

브렌다의 불행과 부적응은 머니 박사에 의해 무시된다.

게다가 브렌다의 엄마는 브렌다가 엄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가끔 보여준 여자 행세만을 골라 머니 박사에게 보고한다.

장난감 총을 두고 동생과 싸우는 모습보다는 인형을 유심히 바라보는 모습만을 기억하고 싶어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돌이킬 수도 없지 않은가!

공범들이 더 있다.

브렌다와 지속적으로 상담하고 그의 상태를 체크하는 일은 캐나다 소아과 의사들의 몫이었다.

이미 브렌다의 성 전환이 '다윈 이후 최고의 생물학적 업적'이라는 평가를 학계로부터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브렌다의 상태가 학계에 보고된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침묵이었다.

왜냐하면 학계에서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진 이론을 반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야말로 동료 사회로부터의 왕따를 가장 두려워 하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평판이 동료 전문가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브렌다를 진료한 전문가 모두를 겁쟁이라고 몰아붙일 수도 없다.

어린 브렌다가 상담을 일찍 끝내기 위해 원하는 대답을 할 경우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호한 현상이 연출된다.

이 모호한 상황을 이론에 부합한다고 읽을 것인지 어긋난다고 읽을 것인지,그 기준 역시 애매하다.

이론을 섭렵한 전문가는 당시 지배적인 이론이 가리키는 대로 현상을 읽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동물원에서 새끼 원숭이를 보고 있는 브렌다에게 머니 박사는 저 새끼가 나중에 커서 남자 원숭이가 되면 좋겠는지 여자 원숭이가 되면 좋겠는지 물었다.

보통 여자아이의 경우는 암컷을,남자아이는 수컷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질문에 대한 브렌다의 대답을 녹음한 테이프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걸(girl)과 비슷한 소리가 들리자 머니는 브렌다가 여자 원숭이를 희망한다고 기록했다.

성인이 된 데이비드의 기억은 상당히 다르다.

대답이 구체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상담으로 심보가 뒤틀린 아이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녹음테이프는 걸(girl)보다는 고릴라(gorilla)에 가깝게 들린다.

⊙산은 산,물은 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성철 스님의 의미심장한 법어(法語)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산이 산으로,물이 물로 보이지 않았지만 공부를 더하니 다시 산이 산으로 물이 물로 보였다는 설명이다.

과학은 산을 산만으로 물을 물만으로 보지 않으면서 시작했다.

잡다한 세상만사를 꿰는 단순한 모형을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론은 현상을 통합하고 단순화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론이 현실만큼 복잡하고 유연하면 이미 이론으로서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이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만 보았다면 과학뿐 아니라 오늘날과 같은 수준 높은 문명은 가능하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그 대가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는 어렵게 된 것도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현상 너머의 근원적인 무엇인가를 끄집어내서 현상을 설명하려 하기 때문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아무래도 자꾸 어떤 틀을 통해서 보려고 한다.

학문은 세상을 설명하는 모형을 제시하는 것이 본업이지만 학문이 때로 위험한 폭력이 되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정상적인 삶을 향해서 노력했지만 끝내 죽음을 선택한다.

2004년 그의 나이 서른여덟 때의 일이다.

그보다 2년 전 그의 쌍둥이 남동생이 약물 과다로 사망한다.

자신의 문제로 가정이 내내 불행했고 그 여파로 엇나간 동생이 죽고 말았다고 자책하던 그였기 때문에 때 이른 그의 죽음은 그의 비정상적인 과거와 그 과거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떼어내서 생각하기 어렵다.

머니 박사를 믿고 쌍둥이 사례를 전파한 타임지는 24년이 지나 이 실험이 실패했다고 정정했다.

그러나 성공이라고 포장된 실험이 뒷받침했던 머니 박사의 이론에 따라 수십 년 동안 수천 건의 조기 성 전환 수술이 과감하게 시행되었고 이들 중 상당수가 부적응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slowforest@ed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