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그루작물가을,날치기참호대사격,고정판동시물에뛰여들기,뜨락또르,따쥐끼스딴'

우리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은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듯 말 듯하다.

암호 같은 이 말들은 북한의 초등 교과서나 로동신문 등에서 실제로 쓰고 있는,북에서는 일상적인 단어들이다.

그렇다고 남한 사람들에게도 전혀 낯선 말은 아니다.

다만 일부 외래어 표기를 제외하곤 잘 쓰이지 않기에 우리에겐 멀어진 것들일 뿐이다.

'앞그루'는 그루갈이를 할 때 먼저 재배하는 농작물을 뜻한다.

한자어로는 '전작(前作)'이다.

'그루갈이'란 뭘까.

이는 '한 해에 같은 땅에서 두 번 농사짓는 일,또는 그렇게 지은 농사'를 말한다.

한자어로 하면 이모작(二毛作)이다.

그러니 앞그루작물이란 이모작에서 먼저 짓는 작물 즉 전작물이다.

그러면 '앞그루작물가을'은? '가을'은 벼나 보리 따위의 농작물을 거둬들이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계절로서의 가을이 아니다.

우리에겐 사전적으로만 남아있고 실생활에서는 거의 사라져 가는 말이지만 북한에서는 살려 쓰고 있는 말이다.

우리는 '수확'이라고 해야 금방 알아듣는다.

따라서 앞그루작물가을이란 '이모작에서 먼저 지은 작물을 수확하는 것'을 말한다.

중요한 점은 북에서 쓰는 이런 말들이 남한에서 역시 특이한 단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한에서도 어엿한 단어로 존재하며 사전에도 다 올라 있다.

다만 오랫동안 우리가 잘 안 써서 낯설게 보일 뿐이다.

날치기참호대사격은 사격의 한 종목으로 우리는 클레이 트랩이라고 부른다.

고정판동시물에뛰여들기는 수영의 플랫폼 싱크로나이즈드를 가리킨다.

뜨락또르나 따쥐끼스딴은 얼추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다.

각각 트랙터, 타지키스탄의 북한식 표기다. 우리는 영어 발음을 기준으로 해 적지만 북한에선 러시아말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학령전녀자아이들이 흔히 입는 달린옷의 한가지.

이 나이 아이들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하여 가슴아래부분이 몸에 붙지 않고 허리선이 없게 만든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 나오는 이 풀이를 남한 사람들이 본다면 얼마나 이해할까.

짧은 두 문장으로 돼 있는 이 풀이에는 남한 말과 다른 북한 말의 몇 가지 특징이 잘 담겨 있다.

우선 '학령전녀자아이들''신체적특성' 등에서 보이는 띄어쓰기 방식이다.

남한식으로 다시 쓰면 '학령 전 여자아이들''신체적 특성'이다.

남한에서는 단어를 기준으로 해 띄어쓰기를 적용하는 반면 북한에선 원칙은 같지만 우리보다 붙여 쓰는 경우가 훨씬 많다.

명사가 나열되거나 관형어의 수식을 받는 꼴이더라도 의미상 한 덩어리로 묶을 수 있다면 모두 붙여 쓰기 때문이다.

'달린옷'은 원피스를 다듬은 말이다.

북한에선 광복 이후 궁극적으로 한자 폐지를 염두에 두고 한자어의 우리말 순화작업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외래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러 차례 소위 '다듬은 말'을 내놓으면서 손질을 더해 1986년 최종적인 다듬은 말 2만5000여개를 공포해 써오고 있다.

달린옷도 그 중의 하나다.

그러면 전체 풀이가 나타내는 단어는 무엇일까. 답은 '나리옷'이다.

이 역시 다듬은 말인데 우리의 '드레스'에 해당한다.

북한말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전투'이다.

<조선말대사전>은 '전투'란 말의 풀이를 '혁명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혁명적으로 벌이는 활동'으로 올리고 있다.

따라서 가령 철도사업이나 건설사업 등은 하위 전투단위가 되고 여기에 소속된 근로자들은 모두 '전투원'이다.

또 '전투적'이라 하면 '씩씩한 기백이 차고 넘치는(것)'이란 뜻으로 쓰인다.

북한 체제의 특수성이 담긴 이런 말들이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쓰여 북한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단어로 자리잡았다.

북한이 병영사회라는 것을 언어적으로 보여주는 이런 쓰임새는 남한의 그것과는 매우 이질적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리고 간과하면 안 될 것은 남한에 소개되는 북한의 이질적이고 특이한 말들의 대부분은 대표적인 사례를 '뽑은'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말에 스며든 이데올로기적 왜곡 등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큰 틀에서는 우리 고유어를 살려 쓰는 등 남한에서 본받아야 할 점들도 많다.

북한말을 단순히 호기심으로만 볼 때는 지났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