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패러독스

[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13.왜 북극곰을 살리기 위해 사냥을 허용할까?
지난 4월 외신에 희한한 기사가 보도됐다.

러시아 정부가 멸종 위기에 처한 북극곰을 보호하기 위해 올해 안에 북극곰 사냥을 일부 허용할 방침이란 것이다.

사냥을 허용하는 것이 왜 북극곰을 보호하는 방법일까?

스페인의 투우도 동물보호단체들에 의해 동물 학대라는 맹비난을 받고 있지만 실상은 투우가 투우용 소를 살리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경제·사회 현상을 살펴보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북극곰이나 투우용 소를 보호하려면 죽이지 말아야 할 텐데….

하지만 거꾸로 '죽여야 살릴 수 있다'는 패러독스(역설)가 진실인 게 세상사이다.

그래서 경제학적 상상력은 창의력의 보고(寶庫)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학의 패러독스 세계로 들어가보자.

⊙귀할수록 지키기 어렵다

러시아 정부는 무분별한 사냥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북극곰을 살리기 위해 1956년 이래 추코트가 등 시베리아 원주민에 허용된 쿼터를 제외하고는 사냥을 전면 금지해 왔다.

그러자 밀렵이 성행해 오히려 북극곰에 대한 위협이 커졌고,설상가상 기온 상승으로 빙하가 녹으면서 먹이감이 줄어든 북극곰들이 자주 민가에 출몰해 골칫거리가 됐다.

이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해법은 부분적으로 사냥을 허용하는 사냥쿼터제다.

사냥 쿼터제는 '일정 수준 사냥 허용→북극곰 가족·고기 공급 증가→북극곰 가치 하락→밀렵 유인 감소'라는 연쇄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해마다 40마리 북극곰 사냥을 허용하는 것을 벤치마킹했다.

북극곰 수요가 존재하는 한 사냥금지 일변도의 정책으론 한계가 있는 만큼,북극곰 멸종도 막고 민가 피해도 줄이는 해법을 경제학적 원리에서 찾은 것이다.

이는 아프리카 검정코뿔소의 멸종을 막기 위해 코뿔소를 밀렵하던 주변 부족에 코뿔소를 사유화해 해법을 찾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생글생글 106호 14면 참조)

⊙"살리기 위해 죽여라"

이 같은 사례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투우를 동물 학대라고 여겨 당장 중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투우용 소는 덩치가 크고 성질이 사납고 육질도 거칠어 투우 외에는 쓸모가 없다.

투우를 중단하면 이런 소를 키울 이유가 없다는 게 투우 사육농가들의 이야기다.

따라서 투우용 소를 살리는 것은 투우를 권장하는 것이란 역설이 성립한다.

유럽연합(EU)의 유럽 와인 살리기 정책도 죽이는 데서 출발한다.

미국 호주 칠레 등 저렴한 '신대륙 와인'의 등장으로 유럽 와인의 시장점유율은 1990년대 75%에 최근 6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이에 대해 EU는 360만ha의 포도밭 중 6%가량을 갈아엎고 와인 농가에 주던 보조금도 앞으론 포도 재배면적을 줄이는 농가에만 지원하기로 했다.

와인 농가들이 팔리지도 않는 와인을 계속 생산하는 이유가 보조금 때문이고,와인 생산량이 줄어야 유럽 와인의 명성이 유지된다고 본 것이다.

⊙아동 성폭행범을 사형에 처한다면

반면 죽여야 마땅한데 오히려 살리는 게 더 나은 경우도 있다.

미국 텍사스주 의회는 최근 14세 이하 아동 성폭행 재범자를 사형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텍사스를 아이들에게 좀 더 안전한 곳으로,범죄자들에게는 더 위험한 곳으로"라는 슬로건이 먹힌 것이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반대 여론이 들끓었고,특히 아동 성폭행 피해자 쪽에서 예상외로 반대가 많았다.

반대자들은 성폭행범들이 잡히면 사형당한다는 생각에 피해자를 살해할 우려가 더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유일한 목격자이기 때문이다.

범죄자를 엄단하는 것은 당장은 범죄를 줄이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상황을 더 악화시킬 소지도 훨씬 커지는 것이다.

그만큼 세상사는 단순하지 않다.

⊙스리쿠션 돌리듯 사고(思考)하라

당구에서 '묘기,예술'로도 불리는 스리쿠션(three-cushion)은 물리·공간추리까지 가미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당구 큐를 들고 직접 공을 맞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두 공을 다 맞추기 전에 당구대 벽면을 세 번 이상 닿아야 한다.

그래서 공과는 반대 방향으로 벽면부터 치는 역발상이 필수다.

목표는 다양한 경로 중에서 최적을 선택하는 것임에는 변함없다.

논술에서 요구하는 논리적,창의적 사고과정도 스리쿠션과 비슷하다.

'A는 A이다'라는 단순하고 맹목적 사고가 아니라 전제와 결론,원인과 결과,상관관계 등을 종합적·유기적으로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경제원리와 패러독스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논술의 첩경인 셈이다.

대개 진실은 '저 너머'에 감춰져 있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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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그 자체가 패러독스

경제학은 그 자체가 패러독스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을 거스르는 판단을 해야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직관보다는 얼핏보기에 틀린 것 같고 이상한 판단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일찍이 아담 스미스는 물을 예로 들어,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 재화이지만 물 자체를 돈 받고 팔 수 없다고 지적했다(물론 요즘에는 생수도 상품화됐지만).

가장 효용이 높은 재화가 가장 가치가 없는 패러독스인 셈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각종 정책·현상·판단에서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예컨대 예전의 광고는 제품의 장점만 줄줄이 나열하는 식이었지만 요즘은 무엇을 선전하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쇼(Show)'나 '선영아 사랑해' 같은 광고는 한동안 어떤 기업이 무슨 제품(서비스)을 광고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광고가 역설적으로 소비자들에 더 잘 먹혀든다.

은행원 채용도 패러독스적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학력,나이를 철폐하고 누구나 원서를 낼 수 있게 했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고졸자들이 더더욱 발 붙이기 어렵게 됐다.

고졸 학력이면 창구직원 모집에 대졸자는 물론 석·박사까지 대거 몰린다.

전반적인 학력이 높아지고 취업은 어려워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학력 차별 철폐라는 당초 목표를 상기한다면 차라리 9급 공무원,은행 창구직 등에는 고졸만 응시할 수 있도록 역차별을 두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채용시장의 패러독스인 것이다.

경제학에서 흔히 사례로 드는 임대료 규제는 가난한 세입자,영세상인 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하지만 대개 결과는 이들을 더 힘들게 만든다.

이렇듯 경제학의 패러독스는 '천사가 지옥을 만든다'는 영국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인류 역사에서 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만들겠다고 나설 때마다 최악의 체제가 등장했던 사실과도 통한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