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공정위는 왜 가격규제를 하려 할까?
공정위 "독과점 사업자 폭리 용납못해"


규개위 "그렇지만 가격 규제는 곤란"

경제학에서 가격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공급자가 '시장가격'보다 높은 값에 물건을 내놓으면 팔리지 않을 것이고 시장가격보다 싸게 물건을 사려는 수요자의 시도는 대부분 좌절을 맛볼 것이란 게 경제학의 가르침이다.

물론 이것은 완전경쟁시장을 가정했을 때만 그러하다.

만약 시장을 독점 또는 과점하는 사업자가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시장가격은 왜곡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경제를 하나의 동태적 과정(dynamic mechanism)으로 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특정 시장을 누군가 독점해 짭짤한 이익을 내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어느 새 경쟁자가 수도 없이 몰려 들어 독점 이윤을 적정 이윤으로 되돌려 놓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서로 더 좋은 제품을 내놓으려 힘쓰면서 소비자의 후생은 더욱 나아지게 된다.

⊙공정위 가격규제 신설 '논란'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이 같은 시장의 메커니즘에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는 내용의 가격 규제를 신설하겠다고 해 논란을 빚었다.

공정위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독과점 사업자)의 가격남용 행위(상품의 가격이나 용역의 대가를 부당하게 결정·유지·변경하는 행위) 금지와 관련된 규제를 한층 강화하기로 하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놨다.

문제가 된 것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가격과 관련해 하면 안 되는 일을 더욱 늘린 부분이다.

지금까지는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수급의 변동이나 공급에 필요한 비용의 변동에 비해 가격을 너무 많이 올렸거나,더 많이 내려야 하는 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만 처벌받았다.

이 같은 규제 대상으로는 설탕과 밀가루 가격이 대표적이다.

제당·제분 산업은 각각 대규모의 시설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녹록지 않다.

따라서 2~3개 기업이 각각 시장을 적당히 나눠가지고 있다.

만약 세계적으로 사탕수수나 밀의 가격이 5% 정도 올랐는데 이들 회사가 소비자 가격을 20% 일제히 올렸다면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공정위가 이 같은 가격남용 행위의 유형에 몇 가지를 보태는 방안을 추진했다.

'가격이 공급에 필요한 비용에 비하여 현저하게 높고 유사 업종의 통상적인 수준에 비해 높은 경우'를 추가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원가의 '변동'에 따른 가격의 '변화'만을 규제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원가를 분석해 과도한 이윤을 붙였다면 가격 설정 행위 그 자체를 규제하겠다는 얘기다.

이는 가격에 대한 행정당국의 직접적인 규제를 규정하고 있어 시장경제원리에 배치된다.

또한 기업 활동의 가장 큰 동기인 '이윤 추구' 그 자체를 죄악시한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반발도 피할 수 없다.

결국 규제개혁위원회에 의해 공정위의 가격 규제방침은 제동이 걸렸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시장 효율성 떨어뜨리는 조치

공정위가 추진했던 가격 규제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창출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가 우선 명확하지 않다.

최근에는 투자에 수반되는 '위험'이나 혁신과 창조적 노력이 담긴 '번뜩이는 아이디어',기업 고유의 '브랜드 가치' 등 칼로 무 자르듯 재단하기 힘든 유·무형의 비용 요소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단순히 어떤 제품을 만드는 데 원가가 얼마였냐를 놓고 가격 남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시장가격을 원가와 착각하고 있다는 본질적인 지적도 있다.

공정위식으로 하면 값비싼 명품 같은 제품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또한 이 같은 가격 규제가 과감한 도전과 위험을 무릅쓴 투자를 통해 커다란 이윤을 대가로 얻으려는 기업가 정신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훼손시키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성공가능성이 낮은 혁신적인 모험산업일수록 기업으로서는 성공한 한번의 투자를 통해 그동안 실패한 프로젝트에 들어간 비용을 회수해야 한다.

그런데 성공한 프로젝트 하나만을 보고 거기에 들어간 원가와 비교할 때 높은 가격을 매겼다는 이유만으로 제재를 가한다면 모험적인 투자에 나설 유인책이 없어지게 된다.

지금껏 그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을 개발해 한 몫 단단히 잡아야겠다는 한 개인의 '대박 심리'가 인류를 풍요롭게 한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근대 이후 신약 개발이나 최근 IT산업에서의 성취 등은 대부분 그 같은 이기심 때문에 소비자들이 큰 혜택을 봤다.

이 같은 비판이 일자 공정위는 '기술혁신 경영혁신 등을 통한 새로운 상품 개발,비용 절감으로 인해 이익이 발생하는 경우'는 가격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수정안을 내놨다.

그렇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규제의 몸통은 그대로 둔 채 적용 배제·예외 조항 등을 만드는 것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논법은 관료들이 권한을 늘리거나 한번 쥐고선 다시 놓지 않으려 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이다.

예외조항에 해당하는지 일차적 판단은 담당 관료들이 하는 것이기에,결국 그 규제는 그대로 남아 또다른 '권한'이 된다는 게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가격 규제…외국에선 어떻게

그렇다면 외국에서는 독과점 기업의 가격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구 선진국에서는 '가격은 시장에 맡겨 둔다'는 원칙에 따라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 문제에 전혀 개입하지 않거나,하더라도 다른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봉쇄하려는 수단으로 가격을 동원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즉,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상품을 공급해 후발사업자를 고사(枯死)시키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외에는 대부분 독점 기업의 높은 가격 부과가 결코 시장의 효율성 측면에서 나쁘지 않다는 기본 인식을 갖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단순한 독점력의 소유와 독점가격의 부과는 위법이 아닐 뿐 아니라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중요한 요소"라고까지 판시하고 있다.

독점 기업이 제멋대로 정하는 가격이 시장경제의 요소라니 이게 무슨 소릴까 싶기도 하지만 "독점가격을 부과할 수 있는 기회는 경영자에게 혁신과 경제성장을 위한 과감한 위험투자를 감행할 수 있게 하는 동기가 되고,독점 이윤이 있어야 경쟁자가 많이 몰려 들어 시장이 정상을 되찾는다"는 설명에 이르러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김영세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대도시를 초토화하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 둘 있는데 바로 융단폭격과 임대료 규제"라며 "정부의 인위적 가격규제가 소비자 권익 증대라는 당초 의도와는 반대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해 결국은 모두를 공멸케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경제학 격언을 공정위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