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대회에 반대하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이 시대의 폭력이다.
아름다움에 등급을 매기고 성을 상품화한다.
게다가 미인대회가 추구하는 미인의 선발 기준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비정상적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극히 소수의 여성만이 미인으로 불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미인대회의 아름다움이란 비정상적이며 부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가식적 이다.
그럼에도 상업적인 동기밖에 없는 매스미디어의 강력한 후원으로 이 비정상적 기준이 아름다움의 표준으로 자리잡는다.
결국 많은 여성은 비정상적 미의 표준으로 자신의 개성을 폄하하게 된다.
심지어는 이 비정상적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성형이라는 자기 육체에 대한 범죄를 서슴지 않는다.
미인대회는 아름다움을 발굴하고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비정상적 추함을 선발하고 하늘이 부여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폭력을 선동한다."
미스코리아는 아름다운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래도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아름답다고 대답한다.
물론 남학생들의 다수가 '그렇다'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학생들의 의견을 정리하면 대강 위와 같다.
미인대회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들의 주장도 학생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미인대회가 일종의 폭력이라고 한다.
미인대회가 추구하는 미의 표준이 비정상적일 뿐 아니라 결국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회라는 특성이 어떤 기준이나 표준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타당하지만 미의 표준이 자본주의와 매스미디어가 만나서 만들어낸 매우 현대적 현상이라는 주장은 오해를 유발한다.
미인대회 자체는 대중사회의 발달에 따라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현대적인 이벤트일지 모르지만 이들이 폭력이라고 주장하는 표준적 아름다움,정형화된 아름다움은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미스코리아의 미인들은 아름답다'라는 생각은 가장 오래되었고 일반적인 미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인류 최초의 미인대회(?)
고대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는 루치나 신전에 모실 헬레나의 그림을 그려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여신을 창조하기로 한 제욱시스는 고민에 빠졌다.
그림에 어울리는 모델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클로톤시(市) 평의회는 제욱시스를 위해 인류 최초의 미인대회를 개최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이 그림으로 옮겨져 불멸하기를 원하는 고대의 처녀들은 부끄러움도 잊은 채 오직 한 명의 화가에게 선택받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자연이 한 인간에게만 온전한 아름다움을 선사할 리 없다고 생각한 제욱시스는 이들 가운데 빼어나게 아름다운 처녀 다섯을 골랐다.
그리고 처녀들로부터 제각기 무엇이든 가장 칭찬받는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완전한 아름다움을 갖춘 한 여인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욱시스야말로 진정한 화가다.
"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예술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1404~1472)는 자신이 쓴 회화론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현대 화가들은 고대의 화가들에게서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을 배워야 한다.
완전한 아름다움이란 한 인체에서 온전히 실현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까닭에 여러 인체로부터 특히 칭찬받는 부분을 골라 모으는 것이 좋다."
알베르티가 살아서 오늘날 미인대회를 본다면 매우 흡족했으리라.성형수술이라도 받아 보다 완벽한 아름다움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들의 노고를 치하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인대회에 참가하는 이들은 제멋대로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극기에 가까운 절제와 규칙적인 운동을 감내해야만 했을 것이다.
자연스러움이 되는 대로 놔두는 것이라면 이들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과 정반대지만 제욱시스도 알베르티도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인류도 오랫동안 이들의 생각에 동조했었다.
⊙아름다움은 이상적이어야 한다
미스코리아의 몸짓과 표정,걸음걸이가 비정상이며 인위적이기 때문에 아름답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그리스 시대의 조각이나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품들을 보고 감동을 받기 어려워야 한다.
그리스 시대의 미술이나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주의는 이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들의 조각에 나타난 어떤 인체의 비례도 자연스럽지 않다.
비너스상 같은 여인도,프락시텔레스(Praxiteles,BC 4세기 그리스 조각가)의 조각에 보이는 남성도 실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을 창조한 거장들은 오직 완벽한 비례와 균형을 위해 신체를 잡아 늘리기도 하고 여러 사람의 얼굴로부터 추출한 선을 따라 그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대상을 그리거나 조각한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어떤 추상적인 비례와 균형에 따른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위대한 예술가 치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던 경우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에 의하면 대중은 예술가가 이상화한 틀을 통해서 새롭게 창조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접할 수 있을 뿐이다.
⊙과학적 가설도 미스코리아다
과학자들도 미스코리아와 같이 아름다운 모델을 만들고 사용한다.
과학자들이 만드는 모델을 가설이라고 한다.
가설이라는 모델을 통해 복잡한 세상을 설명한다.
하지만 세상을 설명한다는 과학자들의 모델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있을 법하지 않은 미의 기준을 강요한다는 이유로 미인대회가 비판받아야 한다면 과학자들의 가설도 그 운명을 피할 길이 없다.
과학자들은 고전주의 예술가들보다도 훨씬 과격한 이상화의 달인들이다.
그럼에도 현실을 깎고 덧붙여 단순한 기하학적 모형에 도달하려는 과학자들의 인위적 노력은 어느 때고 칭송받아왔다.
갈릴레이가 낙하하는 물체의 속도는 질량에 관계없고 시간의 함수일 뿐이라는 모델을 창안했을 때 그는 인류가 오랫동안 경험해온 현실과 그 기억을 송두리째 뒤엎은 셈이다.
사람들은 분명 무거운 돌멩이가 가벼운 솜뭉치보다 빨리 떨어지는 것을 수도 없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았던 한 천재는 여러 차례의 실험과 그 실험의 이상화를 통해 엄청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갈릴레오의 실험에서조차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보다 더 빠르게 낙하했지만 이성의 도움을 받아 이런 현실을 무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치하는 현실이 없는 이 모델이 어떤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이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초등학생들조차 무거운 것이 빨리 떨어지는 현실에 더 이상 속지 않게 되었다.
⊙가설을 대하는 태도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기본적으로 주관적이다.
이 전제를 지나치게 무시하면 정말 폭력이 된다.
그래서 이상화한 아름다움을 얼마든지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가설이 현실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정상적인 과학자는 자신의 모델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현실을 만나면 우선 당황한다.
그리고 뭔가 의도적인 실수가 개입하지 않았나 의심한다.
가설과 일치하는 현실은 매우 드물고 있더라도 우연일 뿐이다.
하나의 증거보다 여러 증거의 방향을 중시하는 것이 과학적 태도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과학적 가설은 어떤 현실과도 일치하지 않지만 어떤 현실보다도 현실적일 수 있다.
과학자들의 학설이 현실에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주장들 중에서 태반은 과학적 가설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마치 밀로의 비너스를 보고 고전시대의 여인들의 모습을 단정하려는 일 만큼이나 어리석다.
과학적 가설은 이상화의 산물이다.
현실로부터 추상(抽象)한 이상화는 예술과 학문을 포함한 인간의 지적활동 전반에 걸쳐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임을 기억하자.
slowforest@eduhankyung.com
"미스코리아 대회는 이 시대의 폭력이다.
아름다움에 등급을 매기고 성을 상품화한다.
게다가 미인대회가 추구하는 미인의 선발 기준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비정상적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극히 소수의 여성만이 미인으로 불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미인대회의 아름다움이란 비정상적이며 부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가식적 이다.
그럼에도 상업적인 동기밖에 없는 매스미디어의 강력한 후원으로 이 비정상적 기준이 아름다움의 표준으로 자리잡는다.
결국 많은 여성은 비정상적 미의 표준으로 자신의 개성을 폄하하게 된다.
심지어는 이 비정상적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성형이라는 자기 육체에 대한 범죄를 서슴지 않는다.
미인대회는 아름다움을 발굴하고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비정상적 추함을 선발하고 하늘이 부여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폭력을 선동한다."
미스코리아는 아름다운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래도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아름답다고 대답한다.
물론 남학생들의 다수가 '그렇다'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학생들의 의견을 정리하면 대강 위와 같다.
미인대회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들의 주장도 학생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미인대회가 일종의 폭력이라고 한다.
미인대회가 추구하는 미의 표준이 비정상적일 뿐 아니라 결국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회라는 특성이 어떤 기준이나 표준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타당하지만 미의 표준이 자본주의와 매스미디어가 만나서 만들어낸 매우 현대적 현상이라는 주장은 오해를 유발한다.
미인대회 자체는 대중사회의 발달에 따라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현대적인 이벤트일지 모르지만 이들이 폭력이라고 주장하는 표준적 아름다움,정형화된 아름다움은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미스코리아의 미인들은 아름답다'라는 생각은 가장 오래되었고 일반적인 미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인류 최초의 미인대회(?)
고대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는 루치나 신전에 모실 헬레나의 그림을 그려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여신을 창조하기로 한 제욱시스는 고민에 빠졌다.
그림에 어울리는 모델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클로톤시(市) 평의회는 제욱시스를 위해 인류 최초의 미인대회를 개최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이 그림으로 옮겨져 불멸하기를 원하는 고대의 처녀들은 부끄러움도 잊은 채 오직 한 명의 화가에게 선택받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자연이 한 인간에게만 온전한 아름다움을 선사할 리 없다고 생각한 제욱시스는 이들 가운데 빼어나게 아름다운 처녀 다섯을 골랐다.
그리고 처녀들로부터 제각기 무엇이든 가장 칭찬받는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완전한 아름다움을 갖춘 한 여인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욱시스야말로 진정한 화가다.
"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예술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1404~1472)는 자신이 쓴 회화론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현대 화가들은 고대의 화가들에게서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을 배워야 한다.
완전한 아름다움이란 한 인체에서 온전히 실현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까닭에 여러 인체로부터 특히 칭찬받는 부분을 골라 모으는 것이 좋다."
알베르티가 살아서 오늘날 미인대회를 본다면 매우 흡족했으리라.성형수술이라도 받아 보다 완벽한 아름다움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들의 노고를 치하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인대회에 참가하는 이들은 제멋대로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극기에 가까운 절제와 규칙적인 운동을 감내해야만 했을 것이다.
자연스러움이 되는 대로 놔두는 것이라면 이들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과 정반대지만 제욱시스도 알베르티도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인류도 오랫동안 이들의 생각에 동조했었다.
⊙아름다움은 이상적이어야 한다
미스코리아의 몸짓과 표정,걸음걸이가 비정상이며 인위적이기 때문에 아름답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그리스 시대의 조각이나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품들을 보고 감동을 받기 어려워야 한다.
그리스 시대의 미술이나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주의는 이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들의 조각에 나타난 어떤 인체의 비례도 자연스럽지 않다.
비너스상 같은 여인도,프락시텔레스(Praxiteles,BC 4세기 그리스 조각가)의 조각에 보이는 남성도 실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을 창조한 거장들은 오직 완벽한 비례와 균형을 위해 신체를 잡아 늘리기도 하고 여러 사람의 얼굴로부터 추출한 선을 따라 그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대상을 그리거나 조각한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어떤 추상적인 비례와 균형에 따른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위대한 예술가 치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던 경우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에 의하면 대중은 예술가가 이상화한 틀을 통해서 새롭게 창조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접할 수 있을 뿐이다.
⊙과학적 가설도 미스코리아다
과학자들도 미스코리아와 같이 아름다운 모델을 만들고 사용한다.
과학자들이 만드는 모델을 가설이라고 한다.
가설이라는 모델을 통해 복잡한 세상을 설명한다.
하지만 세상을 설명한다는 과학자들의 모델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있을 법하지 않은 미의 기준을 강요한다는 이유로 미인대회가 비판받아야 한다면 과학자들의 가설도 그 운명을 피할 길이 없다.
과학자들은 고전주의 예술가들보다도 훨씬 과격한 이상화의 달인들이다.
그럼에도 현실을 깎고 덧붙여 단순한 기하학적 모형에 도달하려는 과학자들의 인위적 노력은 어느 때고 칭송받아왔다.
갈릴레이가 낙하하는 물체의 속도는 질량에 관계없고 시간의 함수일 뿐이라는 모델을 창안했을 때 그는 인류가 오랫동안 경험해온 현실과 그 기억을 송두리째 뒤엎은 셈이다.
사람들은 분명 무거운 돌멩이가 가벼운 솜뭉치보다 빨리 떨어지는 것을 수도 없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았던 한 천재는 여러 차례의 실험과 그 실험의 이상화를 통해 엄청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갈릴레오의 실험에서조차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보다 더 빠르게 낙하했지만 이성의 도움을 받아 이런 현실을 무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치하는 현실이 없는 이 모델이 어떤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이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초등학생들조차 무거운 것이 빨리 떨어지는 현실에 더 이상 속지 않게 되었다.
⊙가설을 대하는 태도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기본적으로 주관적이다.
이 전제를 지나치게 무시하면 정말 폭력이 된다.
그래서 이상화한 아름다움을 얼마든지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가설이 현실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정상적인 과학자는 자신의 모델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현실을 만나면 우선 당황한다.
그리고 뭔가 의도적인 실수가 개입하지 않았나 의심한다.
가설과 일치하는 현실은 매우 드물고 있더라도 우연일 뿐이다.
하나의 증거보다 여러 증거의 방향을 중시하는 것이 과학적 태도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과학적 가설은 어떤 현실과도 일치하지 않지만 어떤 현실보다도 현실적일 수 있다.
과학자들의 학설이 현실에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주장들 중에서 태반은 과학적 가설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마치 밀로의 비너스를 보고 고전시대의 여인들의 모습을 단정하려는 일 만큼이나 어리석다.
과학적 가설은 이상화의 산물이다.
현실로부터 추상(抽象)한 이상화는 예술과 학문을 포함한 인간의 지적활동 전반에 걸쳐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임을 기억하자.
slowforest@ed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