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국가 경제복원은 국민들의 경제의욕 일깨우기부터
지난 10월4일 남북 정상은 북한지역 철도·도로 개보수 등 사회간접자본(SOC) 확충,해주공단 건설,개성공단 2단계 사업 추진 등 남북 간의 굵직한 경제협력 사업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이 같은 경제협력 사업에 필요한 비용은 연구기관에 따라 10조원에서 최대 60조원에 이를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정확히 얼마가 들 것인지 소요 재원을 산출해 보고 있는 중이라면서도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할 것이란 점에서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다만 경협에 투입되는 돈은 철저하게 '상업적 베이스' 위에서 투자 개념으로 지출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퍼주기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정한 선을 긋고 있는 모습이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최근 경제 5단체장에게 경협 합의 성과를 설명하면서 "SOC 등 인프라 확충에는 일정 부분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지만 공단이나 항구 조성 등은 처음부터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추진하거나 최소한 나중에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 투자 늘리면 북한 경제 살아나나
개성공단 사업처럼 남측의 자본과 기술을 북한의 값싼 토지,양질의 노동력 등과 결합시키는 방식의 협력은 남북이 함께 '윈-윈'할 수 있는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
이번에 정부가 경협 합의를 설명하면서 '지원'보다는 '투자'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개성공단의 경우 임가공에 국한된 얘기긴 해도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의 제조업체들에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투자 중심의 경협이 북한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느냐다.
남측의 투자가 효과를 보기에는 아직 북한 경제에 취약한 부분이 너무나 많다.
북한이 경제 침체를 겪는 이유는 사회주의 체제로 주민들이 경제활동을 하려는 의욕이 없어서다.
이 같은 체제가 바뀌지 않는 것은 김정일과 군부 등 북한 지도부가 그 체제를 바꿀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개혁·개방이란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가운데 자꾸 투자 명목으로 돈만 집어 넣으면 북한 경제에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왜 그럴까.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은 남측 기업들로부터 받는 임금의 극히 일부라도 자기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
개성공단 1단계 조성이 끝나면 이 같은 근로자가 10만명에 이른다는 전망이다.
10만명이 돈을 벌게 되면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마치 공기처럼 누리고 있는 시장경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자유롭게 재화를 생산하고 서비스를 창출해야만 이들이 벌어들인 돈이 그 쓸모를 얻는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이윤을 노린 경제활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암(暗)시장을 제외하고는 시장다운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개성공단에서 임가공으로 만들어진 상품은 남한으로 빠져나오고 북한에는 돈만 남는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학자들은 북한의 경제 상황을 만성적인 '부족의 경제(economy of shortage)'로 분석하고 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항상 모자란 초과 수요 상태라는 얘기다.
이 상태에서 투자,임금 등으로 돈이 풀려 통화량만 급격히 늘게 되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진다.
남측 공장에서 일한 대가로 북한 근로자들이 손에 쥔 몇 푼 안 되는 돈이 물가 상승으로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경협 투자로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쓸 수 있는 돈은 늘어났는데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경제활동은 없다 보니 결국 중국으로부터 각종 재화를 들여올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벌어들이고 중국에 쓰는 일을 반복하면서 근본적 성장 동력을 창출해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 남북경협이 통일 비용 줄일까
일부에서는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대북 투자와 지원을 미뤄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어차피 통일이 되면 치러야 할 비용을 앞당겨 지출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통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북한에 돈을 쏟아 붓기에 앞서 시장경제를 통해 스스로 번영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우선이다.
동독과 헝가리·체코의 차이가 이를 보여준다.
1989년 독일 통일 당시 서독은 세계 경제력 3위의 경제 대국이었다.
동독도 공산국가 중에선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통일 뒤 독일은 엄청난 통일비용을 치러야 했다.
독일 특별조사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동독의 경제 회생을 위해 통일 이후 14년간 1조2500억유로(약 1740조원)의 자금이 투입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특별조사위는 "동독 재건에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이는 동독 지역 경제에 내생적인 성장 동력을 창출해내지 못하고 돈만 쏟아부었기 때문이란 평가다.
든든한 서독의 지원이 오히려 옛 동독 주민들의 일할 의지와 경제 의욕을 꺾은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스스로 부를 창출하려는 의지를 심어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같은 공산권이면서 동독에 비해 경제력이 한참 뒤졌던 헝가리와 체코의 발전속도가 훨씬 빨랐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들 국가는 공산체제가 무너지자 곧바로 시장경제를 도입해 홀로서기에 들어갔다.
동독처럼 부유한 '형제'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더 개혁·개방에 애써 2년 남짓 경기 침체를 겪은 뒤에는 경제가 뚜렷한 회생국면에 접어들었다.
최근에는 연 4~6%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있고 유럽연합(EU) 가입도 성사시켰다.
이는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남북한의 통일비용은 연구기관마다 액수 차이가 크지만 엄청난 자금이 든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일치한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남북한이 통일했을 경우 북한을 남한 수준으로 높이려면 2000년 화폐가치를 기준으로 10년간 3200조원이 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통일 비용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북한에 사유 재산 제도를 도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국가가 주민들의 재산을 보호해주고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해주면 사람들은 스스로 일을 해서 재산을 만들어낸다.
이런 단순한 진리가 아직 통하지 않는 곳이 북한이다.
상업적 베이스에 기반한 경협 투자가 북한의 잘못된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한마디로 물고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