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KAIST 교수 정년보장 심사 대거 탈락 교수 사회 철밥통 깨지나?
"학생들은 세계적 수준인데 학교가 세계적 대학이 안되는 것은 교수 책임

교수 가운데 20%만 테뉴어를 받는 하버드대와 경쟁하려면 내부 개혁 절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테뉴어(tenuer ·정년 보장)' 심사 결과가 대학가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KAIST는 지난달 초 정년 보장 심사 신청자 38명 가운데 15명(39.5%)을 탈락시켰다.

'교수 임용=정년 보장'이라는 통념을 깨고 교수도 대학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탈락자가 대거 발생한 것은 지난해 7월 취임한 서남표 KAIST 총장이 올 들어 테뉴어 심사 기준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미국 MIT에서 36년간 교수로 지낸 바 있는 서 총장은 취임 후 인사규정의 정년 보장 심사 기준을 엄격하게 바꿨다.

서 총장은 "1~2년 남은 재계약 기간 안에 같은 분야의 국내외 학자들에게 연구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면 KAIST를 떠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학생들은 세계적 수준인데 학교가 세계적 대학이 안 되는 것은 교수 책임으로,교수 가운데 20%만 테뉴어를 받는 하버드대와 경쟁하려면 내부 개혁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테뉴어 심사는 교수 임용 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연구 성과 등을 점검해 통과하면 정년을 보장해주고,탈락하면 퇴출시키는 제도다.

KAIST는 1971년 개교 이후 테뉴어 제도를 시행했지만 이를 통해 퇴출된 교수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

현재 420여명의 교수 중 200여명은 예전 심사 기준을 통과해 이미 정년을 보장받은 상태다.

◎ KAIST,정년보장 심사 어떻게 하나

바뀐 심사 기준에 따르면 신임교수 임용 후부터 8년 이내에 무조건 정년보장 심사를 받게 된다.

전에는 정교수로 7년 이상 재직해야 정년 보장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40대가 넘어야 정년 보장이 가능했지만,규정이 바뀐 뒤부터는 30대에도 정년 보장 여부가 가려진다.

40대가 넘어서 퇴직을 하게 되면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힘든 현실을 감안해 젊고 유능할 때 KAIST에 계속 머물지 여부를 결정한다.

동료 평가를 강화한 것도 큰 변화다.

교수의 논문 숫자를 중심으로 정량적 평가를 해오던 평가 방식에서 논문의 임팩트 팩터를 중시하고,외국의 교수를 중심으로 한 '피어리뷰(peer review·동료평가)'를 도입했다.

이번 KAIST의 정년 보장 심사 강화 조치가 비록 '탈락'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질적 평가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에 교수사회는 동료 평가 방식이 확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 타 대학도 승진 심사 기준 강화 움직임

KAIST의 '개혁 실험'으로 수십년간 난공불락으로 여겨온 교수사회의 철밥통을 깨는 시도는 대학가로 확산될 조짐이다.

성균관대는 이미 2005년 9월부터 교수 승급제한 제도를 도입,정년 보장 교수가 되더라도 적정 수준 이상 논문이 나오지 않으면 호봉을 올려주지 않고 있다.

김준영 성균관대 부총장은 "2000년부터 엄격한 테뉴어 제도를 운영해 해마다 평균 30% 교수가 테뉴어 심사에서 탈락한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고려대 한국정보통신대 등 주요 대학도 논문 게재 건수를 강화하는 등 교수 승진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정보통신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계속 승진을 한 게 사실"이라며 "대학들이 교수 승진 등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다른 대학의 테뉴어 제도를 수집해 연구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 연구 지원,심사 균형 보완책 필요

하지만 이번 KAIST의 개혁 조치를 바라보는 교수들의 시각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먼저 KAIST는 교육인적자원부의 규제는 받는 대부분의 대학들과 달리 과학기술부의 규제를 받고 있다.

KAIST는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며,교수들의 책임 학점도 한 학기에 3학점인 연구중심 대학이어서 다른 일반 대학들과 동등한 비교는 무리라는 것이다.

이에 자칫 교육·연구 여건 조성과 지원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심사 기준과 책임만 강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또 대학에서 '정년 보장'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교수 정년 보장 제도는 대학교수의 경쟁을 부추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수의 직업 안정성을 보장해 '학문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교수 정년 보장 제도는 함양 미달의 교수를 '걸러서 쫓아내는' 제도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성선화 한국경제신문 기자 d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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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차등화 통해 학생들도 '채찍'

KIAST의 교육개혁은 학생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현재 KAIST 학생들은 평균 600만원 에 해당하는 등록금을 전혀 내지 않고 있다.

국가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신입생(07학번)부터 성적이 부진할 경우 학교에서 수업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올해 성적이 4.3 만점에 3.0 미만이면 수업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전체 학생의 약 30%가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평점 2.0 이하면 한 학기에 최고 75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거둔 수업료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쓸 예정이다.

서남표 총장은 "이번 사업은 KAIST 발전 계획 과제 중 하나로 추진되는 것이며 예산 확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책"이라고 강조했다.

고려대 경영대학도 등록금 차등화를 검토하고 있다.

2009학년도부터 성적이 하위 10~15%인 학생들의 등록금을 현재의 두 배로 올려 상위 33%의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같은 등록금 차등화 방안에 대해 찬반 논란이 거세다.

찬성하는 쪽에선 KAIST의 경우 국비 장학생의 도덕적 해이(어차피 장학금을 받으니 공부에 소홀한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불가피하고,고려대는 당근(장학금 확대)과 채찍(등록금 차등)을 통해 공부 안 하는 대학생들에게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서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대학이 되려면 교수뿐 아니라 학생들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란 평가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열심히 한 사람에게 장학금이란 실리와 명예를 주는 인센티브라면 바람직하지만,거꾸로 성적이 나쁜 학생에게 경제적 손실과 불명예를 주는 마이너스 인센티브는 결코 좋은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사관리를 강화하는 것으로 충분한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등록금 차등화는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KAIST와 고려대 경영대학의 실험은 당장 현재 고교생들에게 해당된다.

그 성과에 따라선 다른 대학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