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운명은 미국 주택 시장에 달려 있다."
미국의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최근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주택 경기가 심상치 않다. 관련 지표는 악화일로다.
집을 팔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은데 팔려 나가는 집은 거의 없다.
건설업체는 일감이 없어 난리다.
그러다 보니 관련 업종에서 쫓겨난 사람도 늘고 있다.
소비 심리가 둔화되는 조짐도 역력하다.
여기저기서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 폭락으로 세계 경제는 자칫하면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주택 경기 하락으로 미 경제가 침체(recession)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주택 경기가 회복될 기미를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전문가들은 주택 경기 침체가 내년이나 내후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집값이 얼마나 빠질지는 예측하기 힘든 상태다.
◎ 주택 관련 지표 일제히 하향
최근 미국엔 '집 팝니다(For Sale)'란 팻말을 뽑아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집이 팔려서가 아니다.
집 팔기를 포기해서다.
미국 주택 경기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이 기간 중 전국 평균 집값 상승률은 70% 정도. 2005년 여름을 정점으로 이후 집값은 약세로 반전됐다.
올초부터는 집값이 야금야금 내리더니 올 들어 벌써 평균 4%가량 하락했다.
매물은 쌓이고 매수세는 자취를 감췄다.
더욱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으로 가압류 주택이 매물로 쏟아져 어려움은 가중됐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주택을 파는 게 맘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최근 주택을 팔려던 많은 사람들은 고민 끝에 월세(rent)로 돌리고 '집 팝니다'라는 팻말을 뽑고 있는 것이다.
나쁜 주택 경기는 지표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8월 기존 주택 판매 실적은 5년 만에,신규 주택 판매 실적은 7년 만에 각각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매매 계약이 진행 중인 주택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8월 잠정주택지수도 6년 만에,주택 착공 실적도 12년 만에 각각 최저치로 하락했다. 모든 주택 관련 지표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이다.
◎ 신용 경색 위기보다 나쁜 상황
경제에서 신용 위기가 닥치면 돈이 돌지 않아 문제다.
하지만 단순한 신용 위기는 유동성(돈) 공급과 금리 인하 처방 등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
지난 8월 발생한 글로벌 신용 경색이 이후 미국 연준리(FRB)의 금리 인하로 비교적 단기간에 잠잠해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주택 경기는 다르다.
일단 침체에 빠지면 살려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더욱이 주택 경기는 소비 및 고용과 직결돼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홈 에쿼티 론(home equity loan)'이 유행한다. 집값이 오르는 만큼 한도가 늘어나는 대출이다.
따라서 집값이 내리면 문제다.
빚을 갚아야 한다.
당장 현찰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갚지 못하면 집을 압류당한다.
그런 집이 올해만 80만채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집 소유자들을 생각하면 주택경기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현재 미 주택의 자산가치는 23조달러에 달한다.
집값이 10%만 내려도 2조3000억달러가 날아간다.
다른 부분에서 충당되지 않는 한 소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들은 벌써 실적 둔화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소비가 둔화되면 경제에 치명적이다.
주택 경기 침체를 근거로 경제성장률 역시 뒷걸음질치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는 이유다.
이뿐만 아니다.
집이 팔리지 않으면 집을 짓지 않는다.
주택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 건 당연하다.
주택건설재료를 만드는 업종도 쉬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 관련 업종도 할 일이 없어진다. 이는 감원으로 이어져 고용 불안을 야기한다.
주택대출 관련 업종 종사자 중 이미 1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실업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
특히 미국 전체 일자리 8개 중 1개는 주택 업종과 관련돼 있다. 이러다 보니 주택 경기 침체로 줄잡아 1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주택 경기 악화가 신용 위기보다 더 무서운 이유다.
◎ 여전히 부정적 전망이 우세
주택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도 속도가 더디면 그나마 괜찮다.
아직은 양호한 기업 실적과 달러 약세에 따른 수출 호조 등을 감안하면 미국 경기가 침체로 빠지는 걸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체 속도가 빠르고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소비가 둔화되면 경제 대국 미국이라도 배겨날 재간이 없다.
불행히도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 전망이 많아지는 추세다.
그린스펀은 "집값 하락률이 두 자릿수를 넘어설 수도 있으며 경기 침체 가능성이 50%에 육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초부터 주택 경기 경계론을 펴고 있는 실러 교수는 "미국 집값은 내년에 10%가량 하락하고 3~4년 동안 20%가량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열쇠는 역시 FRB가 쥐고 있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많은 문제가 해소된다.
모기지 금리가 떨어져 소비 심리도 회복될 수 있다.
금리 인하라는 말만 나와도 시장이 열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9·11 테러 이후처럼 기준금리를 연 1.0%까지 인하해야(현재 연 4.75%)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디플레이션을 가장 경계하는 벤 버냉키 FRB 의장이 공격적인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다.
뉴욕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미 국민들 사이에서 경기에 대한 믿음은 커 보인다.
그렇지만 바람과 현실은 괴리가 있다.
주택 경기의 바닥이 과연 어디인지,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을 FRB가 막을 힘이 있는지 지금 세계 경제가 주목하고 있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기자 jran@hankyung.com
미국의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최근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주택 경기가 심상치 않다. 관련 지표는 악화일로다.
집을 팔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은데 팔려 나가는 집은 거의 없다.
건설업체는 일감이 없어 난리다.
그러다 보니 관련 업종에서 쫓겨난 사람도 늘고 있다.
소비 심리가 둔화되는 조짐도 역력하다.
여기저기서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 폭락으로 세계 경제는 자칫하면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주택 경기 하락으로 미 경제가 침체(recession)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주택 경기가 회복될 기미를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전문가들은 주택 경기 침체가 내년이나 내후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집값이 얼마나 빠질지는 예측하기 힘든 상태다.
◎ 주택 관련 지표 일제히 하향
최근 미국엔 '집 팝니다(For Sale)'란 팻말을 뽑아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집이 팔려서가 아니다.
집 팔기를 포기해서다.
미국 주택 경기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이 기간 중 전국 평균 집값 상승률은 70% 정도. 2005년 여름을 정점으로 이후 집값은 약세로 반전됐다.
올초부터는 집값이 야금야금 내리더니 올 들어 벌써 평균 4%가량 하락했다.
매물은 쌓이고 매수세는 자취를 감췄다.
더욱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으로 가압류 주택이 매물로 쏟아져 어려움은 가중됐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주택을 파는 게 맘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최근 주택을 팔려던 많은 사람들은 고민 끝에 월세(rent)로 돌리고 '집 팝니다'라는 팻말을 뽑고 있는 것이다.
나쁜 주택 경기는 지표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8월 기존 주택 판매 실적은 5년 만에,신규 주택 판매 실적은 7년 만에 각각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매매 계약이 진행 중인 주택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8월 잠정주택지수도 6년 만에,주택 착공 실적도 12년 만에 각각 최저치로 하락했다. 모든 주택 관련 지표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이다.
◎ 신용 경색 위기보다 나쁜 상황
경제에서 신용 위기가 닥치면 돈이 돌지 않아 문제다.
하지만 단순한 신용 위기는 유동성(돈) 공급과 금리 인하 처방 등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
지난 8월 발생한 글로벌 신용 경색이 이후 미국 연준리(FRB)의 금리 인하로 비교적 단기간에 잠잠해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주택 경기는 다르다.
일단 침체에 빠지면 살려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더욱이 주택 경기는 소비 및 고용과 직결돼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홈 에쿼티 론(home equity loan)'이 유행한다. 집값이 오르는 만큼 한도가 늘어나는 대출이다.
따라서 집값이 내리면 문제다.
빚을 갚아야 한다.
당장 현찰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갚지 못하면 집을 압류당한다.
그런 집이 올해만 80만채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집 소유자들을 생각하면 주택경기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현재 미 주택의 자산가치는 23조달러에 달한다.
집값이 10%만 내려도 2조3000억달러가 날아간다.
다른 부분에서 충당되지 않는 한 소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들은 벌써 실적 둔화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소비가 둔화되면 경제에 치명적이다.
주택 경기 침체를 근거로 경제성장률 역시 뒷걸음질치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는 이유다.
이뿐만 아니다.
집이 팔리지 않으면 집을 짓지 않는다.
주택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 건 당연하다.
주택건설재료를 만드는 업종도 쉬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 관련 업종도 할 일이 없어진다. 이는 감원으로 이어져 고용 불안을 야기한다.
주택대출 관련 업종 종사자 중 이미 1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실업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
특히 미국 전체 일자리 8개 중 1개는 주택 업종과 관련돼 있다. 이러다 보니 주택 경기 침체로 줄잡아 1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주택 경기 악화가 신용 위기보다 더 무서운 이유다.
◎ 여전히 부정적 전망이 우세
주택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도 속도가 더디면 그나마 괜찮다.
아직은 양호한 기업 실적과 달러 약세에 따른 수출 호조 등을 감안하면 미국 경기가 침체로 빠지는 걸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체 속도가 빠르고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소비가 둔화되면 경제 대국 미국이라도 배겨날 재간이 없다.
불행히도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 전망이 많아지는 추세다.
그린스펀은 "집값 하락률이 두 자릿수를 넘어설 수도 있으며 경기 침체 가능성이 50%에 육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초부터 주택 경기 경계론을 펴고 있는 실러 교수는 "미국 집값은 내년에 10%가량 하락하고 3~4년 동안 20%가량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열쇠는 역시 FRB가 쥐고 있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많은 문제가 해소된다.
모기지 금리가 떨어져 소비 심리도 회복될 수 있다.
금리 인하라는 말만 나와도 시장이 열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9·11 테러 이후처럼 기준금리를 연 1.0%까지 인하해야(현재 연 4.75%)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디플레이션을 가장 경계하는 벤 버냉키 FRB 의장이 공격적인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다.
뉴욕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미 국민들 사이에서 경기에 대한 믿음은 커 보인다.
그렇지만 바람과 현실은 괴리가 있다.
주택 경기의 바닥이 과연 어디인지,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을 FRB가 막을 힘이 있는지 지금 세계 경제가 주목하고 있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