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버드시절 "넘치는 열정과 지성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행복했던 기억"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밝힌 대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좋은 영어문장을 해석하며 영어 독해력을 기르고 사고력에도 도움이 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오늘과 다음 주 2회에 걸쳐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이 지난 6월7일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문의 일부를 싣는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 3학년 재학 도중 학교를 자퇴하고 소프트웨어 사업에 뛰어들어 세계 최고의 거부가 되었다.
학교 측은 올해 그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했고 빌 게이츠는 졸업생을 대표한 연설에서 세계의 불평등,특히 교육의 불평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처음에는 원문을 먼저 3회 가량 읽고 그 후에 해석과 비교하도록 하라.그런 다음에는 해석을 읽으며 거꾸로 영어로 옮기는 훈련을 해 보라.꾸준히 한다면 영작문과 회화 실력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resident Bok,former President Rudenstine,incoming President Faust,members of the Harvard Corporation and the Board of Overseers,members of the faculty,parents,and especially,the graduates;
I’ve been waiting more than 30 years to say this;“Dad,I always told you I’d come back and get my degree."
I want to thank Harvard for this timely honor.I’ll be changing my job next year (…) and it will be nice to finally have a college degree on my resume.
I applaud the graduates today for taking a much more direct route to your degrees.
For my part,I’m just happy that the Crimson has called me “Harvard’s most successful dropout.”
I guess that makes me valedictorian of my own special class (…) I did the best of everyone who failed.
But I also want to be recognized as the guy who got Steve Balmer to drop out of business school.
I’m a bad influence.That’s why I was invited to speak at your graduation.If I had spoken at your orientation,fewer of you might be here today.
Harvard was just a phenomenal experience for me.Academic life was fascinating.
I used to sit in on lots of classes I hadn’t even signed up for.And dorm life was terrific.
I lived up at Radcliffe,in Currier House.There were always lots of people in my dorm room late at night discussing things,because everyone knew I didn’t worry about getting up in the morning.
That’s how I came to be the leader of the anti-social group.We clung to each other as a way of validating our rejection of all those social people.
Radcliffe was a great place to live.There were more women up there,and most of the guys were science-math types.
That combination offered me the best odds,if you know what I mean.This is where I learned the sad lesson that improving your odds doesn’t guarantee success.
One of my biggest memories of Harvard came in January 1975,when I made a call from Currier House to a company in Albuquerque that had begun making the world’s first personal computers.
I offered to sell them software.
I worried that they would realize I was just a student in a dorm and hang up on me. Instead they said;
“We’re not quite ready,come see us in a month,” which was a good thing,because we hadn’t written the software yet.
From that moment,I worked day and night on this little extra credit project that marked the end of my college education and the beginning of a remarkable journey with Microsoft.
What I remember above all about Harvard was being in the midst of so much energy and intelligence.
It could be exhilarating, intimidating,sometimes even discouraging,but always challenging.
It was an amazing privilege- and though I left early,I was transformed by my years at Harvard,the friendships I made,and the ideas I worked on.(☞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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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Bok 총장님,Rudenstine 전 총장님,Faust 차기 총장님,하버드 법인과 감독위원회 위원 여러분,교수님들,학부모님들,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졸업생 여러분들,저는 다음의 말을 하기 위해 30년 이상을 기다려 왔습니다.
“아버지,제가 항상 학교에 다시 들어가서 학위를 받을 거라고 말씀드렸었잖아요.”
하버드에서 이렇게 적절한 때에 주신 명예에 대해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내년에는 저의 직업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저의 이력서에도 대학 학위를 기재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 저보다 훨씬 빠른 길로 학위를 취득한 졸업생 여러분들께 박수를 보내며 저에게 ‘Crimson’(하버드대 학보)이 하버드 중퇴자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칭한 것에 대해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칭찬이 저로 하여금 오늘 졸업생들을 대표해서 이렇게 졸업연설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중퇴자들 중에서 가장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Steve Balmer(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가 경영대학원을 중퇴하도록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악영향을 끼친 장본인입니다.
그것이 바로 왜 제가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초대되었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들의 입학식에 연설을 하러 왔다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의 숫자는 훨씬 적었을 것입니다.
하버드시절은 저에게 놀랄만한 경험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학교생활은 환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종종 제가 수강 신청도 하지 않은 많은 수업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기숙사 생활도 아주 멋졌습니다.
저는 Currie House의 Radcliffe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제 방에는 항상 밤늦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를 토의했는데 그 이유는 제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저는 반사회적 그룹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기존사회에 순응하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입증하기 위해 서로 밀착하였습니다.
Radcliffe는 생활하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많았고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과학·수학과 같은 이과생 타입이었습니다.
그러한 조합은 저에게 이성교제의 아주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도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또한 환경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슬픈 교훈을 배웠습니다.
하버드시절 가장 기억나는 사건 중의 하나는 1975년 1월에 일어났습니다.
그 때 저는 제 기숙사인 Currie House에서 앨버커키에 있는 한 회사에 전화를 걸었는데 그 회사는 세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생산하고 있던 기업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소프트웨어를 팔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제가 졸업도 하지 않은 학생임을 알고는 전화를 끊어버릴까 봐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으니 한 달 뒤에 찾아오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그들의 이런 반응은 어찌 보면 다행이었는데 이는 우리가 아직 그 소프트웨어를 완성시키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저는 주야로 그 학점과 관계없는 일에 매달리게 되었고 이것이 결국 대학생활을 접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중요한 여정을 시작하게끔 한 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하버드 시절에 대해 특히 기억하는 것은 넘치는 열정과 지성의 한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흥분되는 일일 수도 있고,위협적인 일일 수도,심지어 때로는 낙심되는 일일 수도 있었지만 항상 도전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놀랄만한 특권이었고,비록 저는 일찍 학교를 떠났지만 제가 보낸 하버드시절과 그 당시 쌓았던 우정 그리고 제가 작업했던 아이디어들은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밝힌 대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좋은 영어문장을 해석하며 영어 독해력을 기르고 사고력에도 도움이 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오늘과 다음 주 2회에 걸쳐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이 지난 6월7일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문의 일부를 싣는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 3학년 재학 도중 학교를 자퇴하고 소프트웨어 사업에 뛰어들어 세계 최고의 거부가 되었다.
학교 측은 올해 그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했고 빌 게이츠는 졸업생을 대표한 연설에서 세계의 불평등,특히 교육의 불평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처음에는 원문을 먼저 3회 가량 읽고 그 후에 해석과 비교하도록 하라.그런 다음에는 해석을 읽으며 거꾸로 영어로 옮기는 훈련을 해 보라.꾸준히 한다면 영작문과 회화 실력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resident Bok,former President Rudenstine,incoming President Faust,members of the Harvard Corporation and the Board of Overseers,members of the faculty,parents,and especially,the graduates;
I’ve been waiting more than 30 years to say this;“Dad,I always told you I’d come back and get my degree."
I want to thank Harvard for this timely honor.I’ll be changing my job next year (…) and it will be nice to finally have a college degree on my resume.
I applaud the graduates today for taking a much more direct route to your degrees.
For my part,I’m just happy that the Crimson has called me “Harvard’s most successful dropout.”
I guess that makes me valedictorian of my own special class (…) I did the best of everyone who failed.
But I also want to be recognized as the guy who got Steve Balmer to drop out of business school.
I’m a bad influence.That’s why I was invited to speak at your graduation.If I had spoken at your orientation,fewer of you might be here today.
Harvard was just a phenomenal experience for me.Academic life was fascinating.
I used to sit in on lots of classes I hadn’t even signed up for.And dorm life was terrific.
I lived up at Radcliffe,in Currier House.There were always lots of people in my dorm room late at night discussing things,because everyone knew I didn’t worry about getting up in the morning.
That’s how I came to be the leader of the anti-social group.We clung to each other as a way of validating our rejection of all those social people.
Radcliffe was a great place to live.There were more women up there,and most of the guys were science-math types.
That combination offered me the best odds,if you know what I mean.This is where I learned the sad lesson that improving your odds doesn’t guarantee success.
One of my biggest memories of Harvard came in January 1975,when I made a call from Currier House to a company in Albuquerque that had begun making the world’s first personal computers.
I offered to sell them software.
I worried that they would realize I was just a student in a dorm and hang up on me. Instead they said;
“We’re not quite ready,come see us in a month,” which was a good thing,because we hadn’t written the software yet.
From that moment,I worked day and night on this little extra credit project that marked the end of my college education and the beginning of a remarkable journey with Microsoft.
What I remember above all about Harvard was being in the midst of so much energy and intelligence.
It could be exhilarating, intimidating,sometimes even discouraging,but always challenging.
It was an amazing privilege- and though I left early,I was transformed by my years at Harvard,the friendships I made,and the ideas I worked on.(☞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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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Bok 총장님,Rudenstine 전 총장님,Faust 차기 총장님,하버드 법인과 감독위원회 위원 여러분,교수님들,학부모님들,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졸업생 여러분들,저는 다음의 말을 하기 위해 30년 이상을 기다려 왔습니다.
“아버지,제가 항상 학교에 다시 들어가서 학위를 받을 거라고 말씀드렸었잖아요.”
하버드에서 이렇게 적절한 때에 주신 명예에 대해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내년에는 저의 직업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저의 이력서에도 대학 학위를 기재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 저보다 훨씬 빠른 길로 학위를 취득한 졸업생 여러분들께 박수를 보내며 저에게 ‘Crimson’(하버드대 학보)이 하버드 중퇴자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칭한 것에 대해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칭찬이 저로 하여금 오늘 졸업생들을 대표해서 이렇게 졸업연설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중퇴자들 중에서 가장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Steve Balmer(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가 경영대학원을 중퇴하도록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악영향을 끼친 장본인입니다.
그것이 바로 왜 제가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초대되었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들의 입학식에 연설을 하러 왔다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의 숫자는 훨씬 적었을 것입니다.
하버드시절은 저에게 놀랄만한 경험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학교생활은 환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종종 제가 수강 신청도 하지 않은 많은 수업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기숙사 생활도 아주 멋졌습니다.
저는 Currie House의 Radcliffe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제 방에는 항상 밤늦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를 토의했는데 그 이유는 제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저는 반사회적 그룹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기존사회에 순응하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입증하기 위해 서로 밀착하였습니다.
Radcliffe는 생활하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많았고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과학·수학과 같은 이과생 타입이었습니다.
그러한 조합은 저에게 이성교제의 아주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도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또한 환경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슬픈 교훈을 배웠습니다.
하버드시절 가장 기억나는 사건 중의 하나는 1975년 1월에 일어났습니다.
그 때 저는 제 기숙사인 Currie House에서 앨버커키에 있는 한 회사에 전화를 걸었는데 그 회사는 세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생산하고 있던 기업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소프트웨어를 팔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제가 졸업도 하지 않은 학생임을 알고는 전화를 끊어버릴까 봐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으니 한 달 뒤에 찾아오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그들의 이런 반응은 어찌 보면 다행이었는데 이는 우리가 아직 그 소프트웨어를 완성시키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저는 주야로 그 학점과 관계없는 일에 매달리게 되었고 이것이 결국 대학생활을 접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중요한 여정을 시작하게끔 한 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하버드 시절에 대해 특히 기억하는 것은 넘치는 열정과 지성의 한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흥분되는 일일 수도 있고,위협적인 일일 수도,심지어 때로는 낙심되는 일일 수도 있었지만 항상 도전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놀랄만한 특권이었고,비록 저는 일찍 학교를 떠났지만 제가 보낸 하버드시절과 그 당시 쌓았던 우정 그리고 제가 작업했던 아이디어들은 저를 변화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