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버슨 아해들이 거미줄 테를 들고 개천으로 왕래하며/ 발가숭아 발가숭아,저리 가면 죽나니라 이리 오면 사나니라,부르나니 발가숭이로다/ 아마도 세상일이 다 이러한가 하노라."

김천택이 펴낸 <청구영언>(1728년)에 실려 있는 이 사설시조는 수사적 기법을 사용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풍자시조로 알려져 있다.

더위에 옷을 모두 벗은 시골 아이들이 잠자리채를 들고 개천가에서 잠자리 잡는 모습을 노래한 작품이다.

발가벗은 어린 아이들과 잠자리를 소재로 서로 믿지 못 하는 각박한 세태를 해학적으로 그려낸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 사용된 수사적 기법은 동음이의어법과 반어법이다.

동음이의어법이란 소리는 같지만 뜻이 다른 말을 사용해 표현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수법이다.

가령 '남(男)부럽지 않은 女변호사 전성시대'니,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비판하면서 '국사(國史)인가,국사(國死)인가'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시에선 '발가숭이'가 동음이의어법으로 사용됐다.

(김욱동 <수사학이란 무엇인가>) '발가숭이'는 발가벗은 아이들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초가을에 시골이나 물가에 떼 지어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를 뜻한다.

중장의 '저리 가면 죽나니라 이리 오면 사나니라'는 반어법이다.

개천 쪽으로 가야 살고 아이들 쪽으로 오면 오히려 죽게 될 터인데 이를 역설적으로 나타냄으로써 서로 속고 속이는 세태를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연상되는 단어는 '감언이설(甘言利說)'이다.

'발가숭이' 또는 '벌거숭이'는 제일 흔히 쓰이는 게 '옷을 죄다 벗은 알몸뚱이'란 뜻이지만,이외에도 '흙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풀도 없는 산,잎이 다 떨어져 가지가 다 드러나 보이는 나무,재산이나 돈 따위를 모두 잃거나 써 버려 가진 것이 없는 사람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그런데 벌거숭이는 여기에 또 하나의 뜻이 있는데,잠자리의 방언이기도 하다.

특히 가을 하늘을 수놓는 붉은 고추잠자리를 가리킨다.

시조에서 '발가숭이'가 동음이의어로 쓰일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이런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둥벌거숭이'란 본래 '천둥이 치는데도 두려운 줄 모르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이르는 말이다.

<금성판 뉴에이스 국어사전>에서는 여기서 유래해 '천둥벌거숭이'란 말이 '철모르고 함부로 덤벙거리는 사람,두려운 줄 모르고 철없이 날뛰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게 된 것으로 풀이한다.

북한에서는 '벌거숭이 잠자리'라는 말도 쓰는데,이 역시 '이것저것 가리지 못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천둥'은 사전적으로 '뇌성과 번개를 동반하는 대기 중의 방전 현상'을 가리킨다.

이 말은 본래 천동(天動)에서 왔다.

사전에선 한자 天動이 '텬동'을 거쳐 천둥으로 변한 것으로 풀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자어 개념은 없어지고 고유어화한 말이라는 것이다.

'천둥'에 해당하는 우리 고유어는 '우레'다.

우레와 같은 박수'(많은 사람이 치는 매우 큰 소리의 박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가 대표적인 관용어로의 쓰임새다.

이 말은 '울다(泣)'란 말에 접사 '-에'가 결합해 만들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문헌에 天動은 '천체의 운행'이란 뜻만 있고 우리말 '우레'의 뜻은 없다고 한다.

따라서 '천둥'이란 말은 비록 한자어에서 오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음도 변하고 뜻도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국어학자 김민수)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남에서는 우레를,북에서는 '우뢰'를 표준어(북한의 용어로는 문화어)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도 주변에서 흔히 우뢰로 알고 쓰는 경우가 많은데 남에서 우뢰는 '우레의 잘못'으로 처리돼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에 북에서는 우뢰만을 허용하고 천둥이란 의미로 쓰는 우레란 말은 없다.

천둥은 남과 북에서 동일하게 쓰인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hankyung.com